[논단] 호남의 보수는 상징 조작과 싸워야 한다
[논단] 호남의 보수는 상징 조작과 싸워야 한다
  • 나연준 프리랜서 제3의 길 필진
  • 승인 2019.10.21 10: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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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수호 집회에 등장한 ‘광주가 조국이다’ 깃발
조국 수호 집회에 등장한 ‘광주가 조국이다’ 깃발

87체제는 제도적 민주주의와 양당체제라는 하드웨어, 그리고 지역주의라는 소프트웨어의 결합으로 시작되었다. 애초에 3김1노가 할거했던 지역주의는 점차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 지향으로 전환되어 가는 중이다. 정치팬덤은 전환의 과도기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정치아이돌은 특정 지역과 이념을 아우르는 재현자로 대접받는다.

앞으로 한국정치가 정치팬덤을 극복하여 이념과 노선 경쟁에 기반한 건전한 민주주의로 성장할지, 아니면 정치팬덤을 극단화하여 아이돌을 숭배하고 이적사냥에 몰두하는 ‘파시즘’으로 타락할지는 쉽게 예단할 수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요즘 후자의 징후가 보이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정치적 전환기에서 호남은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첫째 영남은 진보와 보수의 분열이 이뤄지고 있는 데 비해, 호남은 거의 이념 분화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 이것은 정치적 ‘지체’이다. 둘째 호남은 정치팬덤을 극단화하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 10월 5일 서초동 시위에서 ‘광주가 조국이다’는 깃발이 등장했다. 광주 지역 시민단체와 극렬 대깨문은 도시 하나를 범죄 혐의자 팬클럽으로 전락시켜버렸다.

민주당에 대한 묻지마 몰표, 정치팬덤에 앞장서는 호남을 보며, 누구는 안타까워했고 누구는 다시금 호남혐오를 흘려보냈다. 어쨌든 이것은 호남의 고립화로 귀결된다. 호남 출신인 나 역시 몰표와 팬덤에 경도되고 이를 제지하지 못하는 호남인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호남의 고립은 호남의 혐오에 기반해 있지만 동시에 호남인 스스로 만들어낸 측면도 있다.

그러나 호남인의 잘못을 지적한다며 이를 다시 혐오의 대상으로 각인시키는 것은, ‘호남 고립화’를 교착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보수세력의 호남 고립화는 보수의 필패 전략이다. 자의반 타의반 고립을 자초하는 호남을 지탄하기에 앞서 이것이 이뤄지는 메커니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호남지역 시민단체와 언론, 지식인들은 호남을 성역화하는 데 몰두한다. 5·18은 호남인 피해의식, 그리고 이 피해의식에 기반한 서사를 가장 격정적으로 소환하는 상징이다. 이들은 호남인이 억압받고 차별당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도덕적 우월감과 역사적 사명으로 바꿔치기한다.
 

진보세력은 어떻게 호남을 상징 조작하는가

이런 식의 서사를 한국 사회에 적용한 대표적 사례가 함석헌의 ‘고난사관’이다. 내가 1930년대 함석헌의 글을 다시금 끄집어내는 이유는, 그의 고난사관이 호남지역 시민단체가 호남을 상징 조작하는 방식과 놀랍도록 유사하기 때문이다. 1934년 함석헌은 <성서조선>에 이렇게 썼다.

“성경은 그 가운데서 진리를 보여주었다. 이 고난이야말로 조선이 쓰는 가시면류관이라고 했다. 그리고 세계의 역사는 요컨대 고난의 역사라고 깨달았을 때 이때껏 학대받는 婢女로만 알았던 것이 彼女야말로 가시면류관의 여주인공임을 알았다.”

예수의 가시면류관은 고난과 영광의 상징이다. ‘가시면류관’이라는 말처럼 양자는 뗄 수 없다. 고난이 깊을수록 영광은 드높아진다. 한국 진보세력은 이 가시면류관을 호남인에게 씌웠다. 5·18로 대표되는 아픈 역사를 지속적으로 자극하면서, 이 ‘고난’이야말로 호남인의 ‘위대한 역사적 성취’이고 ‘높은 민주주의 의식’의 발로이며 ‘순수한 공동체 정신’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일부 보수세력의 호남 혐오는 부질없는 것이다. 고난사관 류의 상징 조작 위에서 호남은 모욕당할수록 거룩해지고, 천대받을수록 고귀해지는 것이다. 혐오는 호남인의 고난을 ‘현재화’하고 따라서 영광도 ‘현재화’한다.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글 한 대목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왜 아직 5·18인가? 게다가 하필이면 왜 모욕당하는 방식으로 기억되어야 하는가? 간단히 그 까닭을 말하자면, 그것은 5·18이야말로 악령으로부터 선량한 사람들을 지키는 방패이고 대문의 빗장이기 때문이다.”

-김상봉, <철학의 헌정>

김상봉의 인식은 호남지역 시민단체들과 다르지 않다. 이들은 이렇게 혐오를 영광으로 ‘번역’해주고, 호남인의 지지와 관심을 챙겨간다. 이러한 평상시 활동으로 지지를 적립하다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국면에서 알뜰하게 써먹는다. 결국 일부 보수세력의 호남 혐오는 호남지역 시민단체의 상징 조작의 재료로, 지지의 마일리지로 사용되는 것이다. 호남 혐오로 감정을 배설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지역 시민단체, 나아가 진보세력에게 놀아나는 꼴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진보세력의 상징 조작과 협잡

나는 호남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광주정신’ 등등 상징 조작을 어떻게 당파적으로 사용하는지 지적한 바 있다. 요약하자면 시민단체와 언론, 정치인들은 호남인의 ‘위대함’을 민주당에 대한 지지로 증명하기를 강요한다. 두 달 넘게 진보와 보수가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조국사태도 비슷한 궤적을 보여준다. 9월 26일 광주지역 시민단체와 교수들은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무려 8000여 명을 모아 시국선언을 하며 조국 구하기에 나섰다. 선언문에는 ‘논두렁 시계’, ‘승냥이 검찰’, ‘독재 시절 군부의 충견이었던 검찰’ 등 원색적 비난이 쏟아졌다. 여기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평소 5·18을 그렇게도 예찬하는 사람들이었다. 급기야 10월 5일 서초동 시위에서 ‘광주가 조국이다’는 깃발까지 등장했다.

나는 5·18을 성역화하는 시민단체의 활동에 동의하지 않는다. 수많은 민주화 운동 중에 5·18만을 특권화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입만 열면 ‘오월정신’, ‘광주정신’을 떠들던 자들이 ‘광주’를 참칭하면서, 조국 같은 범죄혐의자를 비호하는 꼴은 못 봐주겠다. 대한민국의 어느 지역 시민단체도 이 따위로 몰상식하지 않았다. 당신들이 그렇게 찬양해마지 않았던 ‘오월의 영령’들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단 말인가?

5·18 마지막 수배자였던 윤한봉이 미국에서 광주로 돌아왔을 때 지역 운동권은 그에게 안기부 프락치라는 둥, 청와대의 지원을 받았다는 둥하며 중상모략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쓰고 있다.

“운동의 탈을 쓰고 5월을 팔고 자신들의 주도권과 영향력과 명예와 권위가 훼손되었다고 판단되자마자 대뜸 그런 모함 중상을 시작한 것이다. … 나는 환멸을 느껴 5·18 기념행사장에는 귀국 후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도청 앞에도 망월동에도 행사 때는 가지 않았다. 또 중상을 한 모운동 세력들이 설쳐대는 행사장에도 가지 않았다.”-윤한봉, <망명>

지금 이러한 질책을 받아야 할 자들이 누구인가? 광주를 팔아 고작 조국 따위 구하기에 나선 지역 시민단체들이 아닌가? 이들이야말로 호남 혐오에 편승하여 상징 조작의 곡예를 부리며 호남인의 눈물과 땀을 뜯어먹는 하이에나들이요, 스스로 세운 성전에서 좌판을 벌이고 있는 ‘독사의 자식들’이다.

나는 5·18이 호남의 정치적 상징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발전적 계승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5·18이 호남 지역 시민단체들의 상징으로 독점되었을 때 앞서 지적한 수많은 문제들이 벌어지고 있다.
 

고려대 설립자 인촌 김성수는 전북 고창 출신으로 수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일제 말기 몇몇 행적으로 친일파로 낙인찍혔다. 이제 진보의 '친일파 사냥'에 정면으로 맞서 싸울 때다.(본문 중)
고려대 설립자 인촌 김성수는 전북 고창 출신으로 수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일제 말기 몇몇 행적으로 친일파로 낙인찍혔다. 이제 진보의 '친일파 사냥'에 정면으로 맞서 싸울 때다.(본문 중)

호남과 보수주의 전통

호남의 보수세력은 진보가 자행하는 5·18 상징 조작에 맞서, 호남의 보수주의적 전통을 전면화해야 한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건국과 성취를 긍정하고 근대적 가치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호남이 인촌 김성수의 삶과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중들은 <암살>, <청산리> 같은 영화를 보며 독립운동을 ‘이미지’로 기억한다. 그러나 독립운동은 ‘액션’이 아니다. 결국 독립은 근대국가를 세우는 일이며, 이는 오직 근대인만이 할 수 있다.

식민지 시기 김성수만큼 근대인을 길러낸 지도자는 찾기 힘들다. 경성방식, 동아일보, 중앙학교, 보성전문 등에서 조선 청년은 그의 밥과 배움을 받아 근대인이 되었다. 김성수는 실천에서 동지를 높여주고 자신은 뒤로 물러나는 겸양의 지도자였지만, 삶 전체는 ‘근대’를 향해 돌진한 프런티어였다. 자랑할 만한 지도자이다. 김대중은 김성수를 이렇게 평가했다.

“인촌은 오늘의 중앙고와 고려대를 운영해서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여 일제 치하에서 이 나라를 이끌 고급 인력을 배출, 우리 민족의 내실 역량을 키웠다. 인촌은 또한 근대적 산업 규모의 경성방직을 만들어서 우리 민족도 능히 근대적 사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과시했다.”

한편 1944년 미 육군 정보당국은 조선 국내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에 대한 조사를 했다. 정보당국은 김성수를 능력, 신뢰도, 타인과의 협업능력, 사회적 지위 4개항에서 모두 ‘뛰어남(superior)’이라고 표기했다. 그리고 ‘신뢰할 만하고 신중하다’, ‘교육을 잘 받은 코스모폴리탄적인 지도자’라는 평가가 더해졌다. 정치체제에 대한 신조는 ‘민주주의’, 즉 자유민주주의였다.

‘신뢰’와 ‘신중’이라는 인간적 덕목, 코스모폴리탄적 세계인식, 교육을 통한 인재 육성, 근대 산업을 일으키는 능력 등은 모두 보수세력이 지향해야 할 가치이다. 그리고 이것은 5·18을 매개로 호남을 ‘신성화’하는 진보세력의 상징조작에 맞서는, ‘세속’의 빛나는 성취이자 지향이기도 하다.

5·18은 호남인 피해의식, 그리고 이 피해의식에 기반한 서사를 가장 격정적으로 소환하는 상징이다. 사진은 5·18 당시 계엄군과 광주 시민이 대치하고 있는 장면
5·18은 호남인 피해의식, 그리고 이 피해의식에 기반한 서사를 가장 격정적으로 소환하는 상징이다. 사진은 5·18 당시 계엄군과 광주 시민이 대치하고 있는 장면

그리고 호남인은 이러한 가치를 인정할 때, 자칭 진보세력이 억지로 씌운 가시면류관을 스스로 벗을 수 있다. 저들의 상징 조작에 더 이상 정신적으로 착취당하지 않을 수 있다. 호남인은 자각하기 위해서라도 김성수를 재평가해야 한다. 구름 위에서 핍박받지 말고, 땅을 딛고 성취하는 근대인으로 살자.

김성수는 수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말기 몇몇 행적 때문에 ‘친일파’로 낙인이 찍혀 있다. 진보세력의 ‘친일사냥’은 피해갈 것이 아니라 정면에서 맞붙어야 할 문제이다. 김성수를 ‘친일파’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때, 그의 삶은 노덕술과 동급이 되고 만다. 이 따위 무지막지한 역사 인식이 도대체 말이 되는가? 그 뿐이 아니다. 인촌로를 고려대로로 바꿨고, 김성수의 동상을 뽑아내려고 하며, 급기야 1962년 인촌에게 수여한 건국훈장까지 박탈했다. 이쯤 되면 ‘역사 바로세우기’가 아니라 ‘역사파괴운동’이다.

한국 보수세력은 건국의 주역에게 가해지고 있는 광기에 대응해야 한다. 김성수를 복권해야 송진우와 백관수, 나아가 이 지역 보수주의의 맥박이 다시 뛸 수 있다. 진보세력의 삿된 상징 조작을 호남의 위대한 보수주의 전통으로 타파하자. 긴 싸움이 되겠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싸움이다.

나연준 프리랜서 제3의 길 필진
나연준 프리랜서 제3의 길 필진

나연준

프리랜서 제3의 길 필진
목포가 고향인 아버지와 광주가 고향인 어머니로부터 서울에서 태어났다. 유치원과 초중고를 광주에서 다녔고 최근까지 중앙대에서 시간강사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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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욱 2019-10-22 00:08:25
멋진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