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기억하라! 772명의 학도병을
[영화리뷰]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기억하라! 772명의 학도병을
  •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
  • 승인 2019.10.3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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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주선으로 10월 14일 서울 용산역사 건물 7층에 위치한 CGV 18관에서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을 관람했다. 곽경택 감독으로 김명민, 최민호, 김성칠, 김인권 등이 출연해 9월 25일 개봉한 103분짜리 전쟁영화다.

극장에 들어서면서 걸려 있는 포스터를 보니 배급영화사가 미국의 워너 브라더스로 되어 있어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 관람을 시작하면서 의아심은 곧 해소되었다.

이 영화 대본 작성에 2명의 미국인이 참여했고 출연진에도 한국전쟁 때 필명을 날린 세계적 종군 여기자 마가렛 히긴스 역할의 메간 폭스를 비롯해 여러 명의 미국 배우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외골수 한국 영화가 아니라 한미 양국의 공동 제작 영화였던 것이다.

사실은 필자의 경우 ‘장사리’라는 지명 자체가 생소했다. 하물며 ‘장사리 상륙’이라는 이름의 전투가 생소한 것은 당연했다. 인터넷을 뒤져 ‘장사리 상륙작전’이라는 것이 1950년 9월 15일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북한군의 주의를 분산시킬 목적의 작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에 대비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14일과 15일 양일에 걸쳐 인천과는 반대편인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해변에서 전개한 양동작전(陽動作戰)이었다는 정도를 개략적으로 이해한 상태에서 영화 관람을 시작했다. 그러나 영화 관람을 시작하기가 무섭게 필자는 놀라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전개되는 생동감 있는 다이내믹한 영화 장면과 함께 출연진의 연기력 그리고 전체적인 영화의 스토리 텔링이 몰입하게 했다.

영화 관람을 마친 뒤 귀가해 다시 인터넷의 세계로 들어가 ‘장사리 전투’의 실체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다. 이를 통해 문제의 ‘장사리 작전’에 관하여 많은 놀라운 사실을 발굴하게 되었다.
 

6·25 한국전쟁 당시 장사리에 상륙작전을 펼쳤던 2,700톤 문산호.
6·25 한국전쟁 당시 장사리에 상륙작전을 펼쳤던 2,700톤 문산호.

용기와 희생의 장사리 상륙작전

첫째, 이 작전은 국군 정훈장교였던 이명준 대위 지휘 하에 평균 나이 17세의 고등학생들을 중심으로 자기들끼리 모여 부대를 묶은 772명의 일종의 의병(義兵)들이었다. 불과 2주일 동안의 실탄 사격도 없는 훈련(?)을 받은 끝에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174호에 의거해 제1독립유격대대(명부대로 호칭)로 편성된 뒤 투입된 작전이었다.

둘째, 본래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양동작전으로서의 이 작전에 중요성을 부여해 미군 특전부대의 투입을 고려했지만 투입부대 전력 확보에 실패한 나머지 한국의 학도병 위주의 비정규 전력으로 급조된 문제의 명부대를 투입했다. 북한군 군복으로 위장한 이들에게 지급된 무기는 소련제 장총과 탄약, 보급품은 미숫가루 몇 봉지가 전부였다.

셋째, 명부대의 당초 임무는 14일 장사리에 상륙해 그 곳의 북한군 해안 진지를 파괴한 뒤 15일 철수하는 것이었지만 그들을 수송했던 ‘문산호’가 상륙작전 도중 북한군 포화로 파손돼 당초 계획에 따른 철수를 포기하고 19일까지 상륙지점을 고수하면서 인근 지역의 북한군에 대한 소탕작전을 수행해야 했다. 명부대는 17일부터 새로이 투입되는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 2개 연대의 공격을 받은 끝에 약 30명의 부대원을 육지에 남겨 둔 채 19일 도착한 유엔군 LST ‘조치원호’ 편으로 부산으로 철수했다. 명부대는 전체 상륙작전을 통해 도합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부상하는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이 작전에 대해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은 “제1유격대대가 인천 상류작전을 지원하여 수행한 작전은 최고의 찬사를 받을 만하며 대원들이 보여준 용기와 희생적 행동은 한국 젊은이들의 귀감(龜鑑)이 될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장사리 전투는 당시에도 인천상륙작전의 영광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했고 더구나 6·25 전쟁의 전화가 1953년 7월 27일 휴전 성립으로 정지된 뒤에는 모든 사람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6·25 전쟁 자체가 ‘잊혀진 전쟁’이 되어버리고 ‘6·25 남침’이 사실상 ‘6·25 북침’으로 변조되는 와중에 장사리 전투가 사람들의 기억에 살아남는다는 것은 턱도 없는 일이었다.

장사리 상륙작전을 그린 영화 포스터
장사리 상륙작전을 그린 영화 포스터

1997년 어느 날 해병대가 장사리 해변에서 멀지않은 해역의 수중(水中)에 고철화(古鐵化)되어 방치되어 있는 문산호의 해골(骸骨)을 발견하고 이를 복원해 해변에 전시함으로써 그 때의 기억을 소생시키지 않았다면 장사리 전투는 영원히 실전(失傳)될 운명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문산호 복원을 계기로 경상북도는 2019년말 준공을 예정했던 공사가 완결되기에 이르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장사리 전투 승전 기념공원’ 건설을 진행시키고 있는데 이번에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이라는 영화가 제작되어 개봉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번 기회에 장사리 상륙작전의 존재를 새삼 터득하게 된 필자는 물론 장사리 전투 승전 기념공원 준공이 원만하게 이뤄지기를 바라지만 그에 앞서서 지금의 관심사는 제작진이 150억 원을 투입했다는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이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흥행 상의 성공을 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관련 보도에 의하면 손익분기점을 넘기려면 관객 수가 370만 명을 돌파해야 한다는 것인데 가장 최근의 집계로는 관객 수가 110만 명을 넘겼다고 하는 것 같다.

다행하게도 인터넷에 올려진 관객들의 관람 후기들은 거의 90%가 영화의 내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들의 긍정적인 반응들이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널리 전파되어 관객 수가 빠른 시일 안에 급격하게 늘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또 한 가지 희망 사항이 있다. 장사리 전투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빠른 시일 안에 심화되어 이 전투의 실체가 보다 정확하게 드러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록들은 당시 전투에 참전한 학도병 수를 772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투에는 대대장 이명흠 대위를 비롯한 기간 장병과 그밖에 문산호의 해군 장병들이 참전했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들의 신원은 물론 인원이 정확하게 파악되어 있는 것 같지 않다.
 

전쟁이 주는 교훈

어느 기록에 의하면 이 전투 참가한 인원은 총 786명으로 부대원이 718명, 선원 44명, 통신부대원 8명 및 작전 부대장 부관 등 직접 전투 참전 인원이 772명이며 그 밖에 통역 1명, 해군 헌병 5명, 박영선 고문 외 2명, 전성호 외 3명, 미군 안내원 1명 등 14명의 지원 인원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학도병이 정확하게 몇 명인지는 물론 그들의 신원이 명확하게 파악되어 있지도 않고 또 전사가 139명, 부상이 92명이라는 기록으로는 참전 인원이 786명이었다는데 생존자 수와 신원 그리고 그 밖에 파악된 행방불명자의 수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필자와 같이 6·25 전쟁을 직접 체험한 세대에게 전쟁영화는 영화 가운데서 매우 친숙하다. 필자는 8순의 고비를 넘긴 필자의 세대가 살아오면서 관람한 전쟁영화가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해 왔다고 생각한다.

‘전쟁’은 곧 ‘폭력’이다. ‘전쟁’=‘폭력’이라는 화석화(化石化)된 사고(思考)로부터 매우 왜곡되고 오도(誤導)된 사이비 ‘평화관(平和觀)’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예컨대, “전쟁이 없는 상황이 곧 평화”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관’이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

평화는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평화는 내용적으로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평화가 있고 결코 수용할 수 없는 평화가 있다. 이 원리에 관해서는 많은 선현들이 어록을 남겨놓고 있다. 예컨대 “원칙을 타협함으로써 이룩하는 평화는 오래 갈 수 없다”라든가, “양(羊)이 늑대와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든가, “오직 평화적 방법만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국가는 머지않아 다른 나라에게 먹혀 버릴 가능성이 많다”라는 말들이 그런 것들이다.

그래서 선현들은 “현명한 사람들은 평화 속에서 전쟁을 준비한다”라든가, “평화는 전쟁에 대비함으로써 확보되는 것”이라든가, “평화주의자는 그의 조국에 대해서는 배신자이고 인류에 대해서는 가장 악랄한 범죄자”라는 어록도 남겨 놓고 있다.

전쟁과 평화에 관한 대표적인 어록은 1939년 영국 총리가 되어 히틀러의 나치 독일에 대한 대결을 선언한 처칠의 다음과 같은 사자후(獅子吼)다. “우리는 무슨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영국이라는 우리의 섬나라를 지켜낼 것입니다.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이고, 상륙지점에서도 싸울 것이며, 들판에서도 싸우고 길거리에서 싸울 것이며 산꼭대기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확신하지만 설혹 이 섬 전체나 이 섬의 상당 부분이 정복되어 국민들이 기아선(饑餓線) 상에 헤매게 되더라도 영국 함대가 보호하는 대영제국은 끝내는 새로운 세계가 낡은 세계를 해방하여 구출해 낼 때까지 바다 건너에서 우리의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그 동안 제작 상영된 적지 않은 수의 전쟁영화 가운데 필자가 관람한 영화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들이 몇 편이 있다. 예컨대 <태극기 휘날리며>(2004), <웰컴 투 동막골>(2005), <포화 속으로>(2010), <고지전(高地戰)>(2011), <인천상륙작전>(2016) 같은 것들이다. 그 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포화 속으로>였다.

6·25 전쟁 기간 중 낙동강 교두보 시기 북한군의 마지막 공세가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어 교두보의 가장 동단(東端) 포항에서 일단(一團)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방어선을 사수하면서 옥쇄(玉碎)하는 과정을 영상에 담은 영화였다. 이번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도 그 주인공이 학도병들이다. 모쪼록 이 영화를 특히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보다 많이 관람함으로써 특히 ‘전쟁’과 ‘평화’에 관해 올바른 인식을 갖게 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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