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九를 포섭한 金日成의 스파이 성시백
金九를 포섭한 金日成의 스파이 성시백
  • 미래한국
  • 승인 2006.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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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영웅 1호 성시백을 아십니까?
“김구는 우익의 지도자인가?”이승만과 김구의 비교에서 흔히 거론되는 장면은 김구의 평양(平壤) 행이다. 좌파적 사가(史家)들은 이승만 박사는 1946년 6월‘정읍 단독정부 수립발언’으로 민족분열을 기도했다고 비판하면서, 김구는 1948년 4월 평양의 ‘남북諸정당연석회의’에 참석하는 등 민족통합을 시도했다고 칭송해왔다. 이 같은 시각은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나타나듯 “대한민국 역대 정권은 분열세력”이라는 편향된 역사관을 확산시켜왔다. 그러나 실제 김구의 평양행은 김일성의 첩자인 성시백이라는 인물의 공작으로 이뤄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성시백은 해방공간에서 1948년 김구, 김규식 등 임정요인들을 포섭해 남북諸정당연석회의에 참석케 했을 뿐 아니라 1949년 국회프락치사건의 배후인물로 암약하다 1950년 6월27일 남한당국에 의해 처형됐던 인물이었다. 북한은 성시백의 김구 포섭은 물론 국회프락치사건의 실체를 부정해왔으나, 1997년 5월26일자 북한 ‘로동신문’과 2002년 북한의 대남선전매체인 통일여명 편집국 특집보도(181호)에서 이를 스스로 인정했다. ‘민족의 영수를 받들어 용감하게 싸운 통일혁명열사’라는 제하의 로동신문 2면 톱기사에 실린 성시백의 김구 포섭 관련부분을 일부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이런 관계로 하여 성시백 동지는 김구선생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 생각에는 선생님은 우리 민족을 위해 한 생을 바쳐 오시는 분인데 김일성 장군님을 직접 만나 뵈옵는 것이 어떤가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이북에서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고 민족자주역량으로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대표자들의 련석회의를 개최할 데 대한 제의를 내었는데 이 거사가 성사되기만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우리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이 아니겠는가 하는 의견입니다.>>김구선생은 그의 이 말을 듣고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자네 말에는 반박할 여지가 하나도 없네, 그렇지만 공산주의자들이라면 무조건 경원시하며 적으로 규정한 이 김구를 북의 공산주의자들이라고 반가와 할 리야 없지 않은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때라고 생각한 성시백 동지는 <<바로 그것이 선생님의 고충이시겠는데 오늘 나라가 영영 둘로 갈라지느냐 아니면 통일이 되느냐 하는 시국에서 지나간 일을 두고 중상 시비할 것이 있습니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선생님이 결단을 내리시어 북행을 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미국사람들의 시녀노릇을 하는 리승만과 손을 잡겠습니까? 아니면 북에 들어가서 김일성장군과 마주 앉겠습니까>><<음 그러니 군은 김일성장군을 신봉하고 있군, 알겠네. 네 알아서 용단을 내리겠네>>...중략...<<우리 민족의 태양이시니 김일성장군님께서 백범선생에게 보내시는 남북련석회의 초청장입니다>>이 순간 과묵하고 고집스럽던 김구 선생의 얼굴이 흥분으로 붉어졌다. <<김일성 장군께서 그처럼 믿어주실 줄은 내 미처 몰랐습니다. 장군님께서 불러주시었으니 기어이 평양으로 가겠습니다. 내 이후로는 다시 일구이언하는 그런 추물이 되지 않겠습니다>>...중략...성시백동지는 4월 남북련석회의를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높으신 권위를 가지고 극단한 반공분자로 있던 김구 선생을 돌려세우는 사업에도 큰 힘을 넣었다.”김일성은 성시백에 대해 1992년 12월에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 때 성시백의 활동이 컸다고 하면서 아래와 같이 교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나는 앞으로 회고록을 쓸 때 해방 후 남북련석회의 대목에 성시백의 활동내용을 적어 넣으려고 합니다...성시백 동무는 나를 위해, 자기 당과 자기 수령을 위해 신념을 굽히지 않고 잘 싸운 충신입니다. 이 세상에 그렇게 충실한 사람은 없습니다...성시백을 남조선전체를 쥐고 흔들었는데 박헌영의 패가 밀고하였습니다.”북한의 과장된 표현이 엿보이지만 성시백이 김구를 포섭해 남북연석회의 참석을 이끌었으며, 성시백이 김일성이 스파이였다는 사실은 남한 측 사료(송남헌 해방3년사 등)에서도 부분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이다. 북한의 로동신문 등 성시백 관련 자료를 검토해 온 원광대 이주천 교수(사학)는 해방공간에서 시도됐던 김구의 행적에 대한 객관적 평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좌파 사학자들은 김구의 평양행으로 일편단심의 애국충정이나 평화통일에 대한 염원으로 높이 평가하면서 남북협상통일의 물꼬를 트는 효시로 높이 평가해왔죠. 6*15공동선언 이후 평양을 들락날락 하는 인물들은 김구의 행적을 통해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李 교수는 “이런 左편향 무드를 타고 이승만이 아니라 김구가 우익의 진정한 지도자로 재해석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그러나 이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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