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프락치사건 北 97년 자인“성시백의 공작”
국회프락치사건 北 97년 자인“성시백의 공작”
  • 미래한국
  • 승인 2006.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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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氏 등 “이승만 정권의 조작”주장
소위 ‘통일혁명열사’ 성시백의 주요한 공작성과 중 한 가지는 1949년 국회프락치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1948년 5월10일 선거에 의해 구성된 국회에서 급진세력들이 남로당원들과 간첩의 사주를 받아 미군철수 등을 요구하며 국회를 장악하려했던 일이었다. 검찰은 1949년 5월부터 6월까지 소장파 국회의원들을 검거하여 그들을 남로당의 국회공작에 협조했다는 죄목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적용, 구속기소했다. 이 사건은 15회의 공판 끝에 1950년 3월14일 서울지방법원에서 피고인 모두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으나, 6*15남침으로 서용길 의원을 제외한 전원이 월북했다. 북한은 그간 국회프락치사건을 비롯한 남한 수사당국이 발표한 간첩사건들을 ‘고문조작사건’으로 일축해왔다. 이 같은 평가는 남한 운동권들도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아름다운재단 이사장 박원순 변호사는 역사비평 1989년 가을호에서 “국회프락치사건은 고문에 의해 날조, 조작된 것으로 국회 소장파 의원들이 이승만 정권과 국회 내의 반대세력인 한민당 세력의 합작에 의해 정치적으로 제거당했다”는 요지로 주장했다.그러나 북한은 1997년 5월26일자 로동신문에서 “성시백이 1948년 가을부터 남조선 괴뢰 ‘국회’공작에 힘을 넣었다”며 신문 한 면에 걸친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국회 안에서 민족적 감정과 반미의식을 가지고 있는 국회의원들로 진지를 구축하고 여기에 다른 국회의원들까지 포섭하여 국회부의장과 수 십 명의 국회의원들을 쟁취 포섭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외군철퇴요청안’과 ‘남북화평통일안’을 발표케 함으로써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들을 수세와 궁지에 몰아넣고 남조선인민들에게 필승의 신념을 안겨주었다”는 요지이다. 국회프락치사건 등이 김일성의 첩자인 성시백에 의한 비밀공작이었다는 사실을 북한이 공식 시인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고문조작으로 비판받고 있는 여타 공안사건들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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