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비평] 신의주 학생의거 74주년.... 북한인권의 날에 생각하는 자유투쟁
[역사비평] 신의주 학생의거 74주년.... 북한인권의 날에 생각하는 자유투쟁
  • 김태훈 미래한국 편집위원·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한변) 회장
  • 승인 2019.11.0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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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뉴욕에서는 74차 유엔총회 3위원회가 열려 예년과 마찬가지로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의 보고서를 중심으로 북한인권 개선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2014년 북한인권의 침해가 반인도범죄에 해당한다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획기적인 발표 이후 매년 유엔 총회(GA) 및 유엔 안보리(SC)에서는 북한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려는 노력이 이어져왔다.

하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 등의 방해로 매번 좌절되었고, 작년에는 미북회담에 몰두하고 있는 트럼프 미국 행정부 등의 소극적인 태도로 유엔 안보리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국내적으로는 더 참담하여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2016년 3월 제정된 북한인권법이 거의 사문화되어 북한인권재단은 3년이 넘도록 설립조차 되지 않고 있다. 중대한 헌법 위반 상황으로서 퀸타나 보고관이 이번 74차 유엔총회 보고서에서 지적할 정도에 이르렀으니 국제적으로도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와중에 오는 11월 23일 해방공간에서 한반도에 진주한 소련군과 공산당의 횡포에 항거한 신의주 학생의거가 74주년을 맞는다. 신의주 학생의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군 점령지에서 일어난 최초의 반공 시위로서 뒤이은 평양과 함흥 등 북한 지역 나아가 남한에서의 반공 운동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날이 신의주 학생의거 74주년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신의주 학생의거는 소련군이 맨주먹인 어린 학생들을 전투기까지 동원하며 무력 진압해 무수한 살상을 일으킨 한국 현대사의 참극인 날이기도 하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과 이를 등에 업은 공산당의 행패는 극심했다. 소련군은 여성들을 겁탈했고 공산당은 약탈 등 행패를 일삼았다.

격분한 신의주동중학교와 제일공립공업학교 등 6개 중학교가 주축이 된 지역 학생 3500여 명은 11월 23일 ‘공산당을 몰아내자’, ‘소련군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하지만 공산당과 소련군이 전투기와 탱크, 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을 동원해 덮치자 신의주 시가지는 참혹한 ‘킬링필드’로 변했다. 결국 24명이 목숨을 잃었고 700여 명은 크게 다쳤다. 살아남은 이들도 무사하지 못했다. 체포자는 2000여 명에 달했으며 이들 가운데 일부는 시베리아로 끌려가 생사가 묘연하다.
 

2018년 신의주 반공학생의거 기념식
2018년 신의주 반공학생의거 기념식

신의주 학생의거 역사 교육에 넣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중고교 역사 교과서에서 기록을 찾아볼 수 없음은 물론, 과거 발행된 교과서들을 살펴보더라도 일부 과목에서 역사상 여러 학생운동 가운데 하나로 신의주 학생의거를 잠깐 언급하고만 있을 뿐 사건 자체를 따로 소개하거나 평가한 기술은 전무하다.

일례로 1959년 당시 문교부에서 발행한 중학교 도덕II 교과서를 보면 150쪽 ‘역사상 찬란한 우리나라 학생운동’이라는 제목의 표에 신의주 학생의거가 딱 한 줄 언급돼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신의주 학생의거는 1960년 4·19 혁명에 비하더라도 역사적 의의는 결코 저평가될 수 없는 사건이다. 교과서 속 빈약한 기술과는 별개로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국가적으로는 매년 11월 23일이면 기념행사가 열릴 만큼 일반인들의 기억 속에 각인된 사건이었다.

1956년에는 11월 23일이 ‘반공 학생의 날’로 지정되고, 1968~69년에는 반공 학생의 날 기념우표가 발행될 정도였으나 1973년 각종 기념일이 통폐합되면서 반공 학생의 날도 없어졌다. 국가 차원에서 한때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조하기 위해 신의주 학생의거가 부각된 적도 있으나 그 시절에도 사건 자체에 집중해 진상 규명을 하려는 노력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태훈 미래한국 편집위원·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한변) 회장
김태훈 미래한국 편집위원·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한변) 회장

이제라도 관련 학계, 교육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신의주 학생의거에 대한 진상 규명뿐 아니라 교과서 기술 및 기념일 지정운동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날을 북한인권의 날로 지정하는 것도 생각해봄직하다.

북한인권법이 제정된 3월 3일 또는 시행된 9월 4일도 의미가 있지만 ‘자유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는 말도 있듯이 북한인권은 북한주민 스스로의 피와 땀으로 쟁취할 때 진정한 의미가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6·25 전쟁 이래 최대의 망국 위기에 빠져 있지만, 그 근본 원인도 인권 지옥에서 신음하는 2500만 북한주민의 인권을 도외시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북한 주민이 맨주먹 붉은 피로 공산 압제에 저항해 일어난 11월 23일을 북한인권의 날로 지정하여 한반도의 인권과 통일을 생각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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