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분석 ] 저항권, 누가 언제 어떻게 사용할 수 있나?
[전문가분석 ] 저항권, 누가 언제 어떻게 사용할 수 있나?
  • 이영조 미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 승인 2019.11.0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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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여당이 과거 야당이었던 시절, 특정 법안에 반대하면서 저항권을 언급한 적이 많았다. 그 우호세력도 시위 등에서 자주 저항권을 거론했다. 그런데 최근 다시 정치권과 군중집회에서 저항권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4월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과정에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국회점거가 저항권의 행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울러 지난 9월 10일 유승민 의원은 저항권을 발동해 현 정권을 끌어내려야 한다고 발언했다. 10월 3일과 9일 대규모 정부 규탄 시위의 안내 포스터에서도 저항권이 언급됐다. 이에 저항권의 의미와 유래, 한국에서의 인정 여부, 저항권 행사의 주체와 요건 등을 검토해 보기로 하자.

저항권은 일반적으로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통치권자나 국가권력 소유자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하여 다른 모든 합법적인 보호수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거나 그러한 보호수단을 행사하더라도 실효성을 예견할 수 없는 경우에 공개적으로 복종을 거부하거나(소극적 저항) 실력을 행사하여(적극적 저항) 저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그러한 저항권은 자연법을 근거로 불법한 국가권력에 대하여 실력으로써 대항할 수 있는 권리(인권으로서의 저항권)가 되었다가, 현대의 헌정국가에서는 헌법 내에 있는 여러 헌법수호를 위한 장치들이 작동하지 않거나 위협 받을 때 현행 법질서와 헌법질서를 유지하거나 재건하기 위한 긴급권(헌법수호수단으로서의 저항권)으로 이해된다.
 

조국 사태와 공수처 신설에 대해 우파시민단체 등은 저항권적 차원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조국 사태와 공수처 신설에 대해 우파시민단체 등은 저항권적 차원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저항권의 사상사적 연원

폭군과 폭정에 대한 저항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무수히 실재해 왔고 그 정당성은 결과에 의해 주로 인정되어 왔다. 동양에서는 대표적으로 인의를 해치는 폭군은 일개 필부에 지나지 않으니 처벌해도 무방하다는 맹자의 혁명론이 이를 정당화했고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 로마 때부터 폭군의 추방과 참살을 옹호하는 참주론이 존재했다.

중세에도 저항권은 중요한 신학적 논의의 대상이었다. 폭군은 늘 있기 마련인데, 하느님을 대리한 교회가 승인한 통치자에 대해 저항해도 되느냐의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중세 초기 신학은 통치자가 교회를 부정하거나 신정법이나 자연법을 위반하는 경우에는 저항권을 인정했는데 후에 살리스베리의 존(1115-1180)은 고대의 참주론을 원용하여 하느님의 계시와 자연법을 준수하지 않는 통치자에 대한 저항은 물론 심지어는 폭군 살해까지도 정당하다고 설파하기도 했다.

또 교부철학의 완성자라고 일컬어지는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신학대전>에서 “악한 군주에게 저항하는 것이 허용되는 것은 강도에게 저항하는 것이 허용되는 것과 같다”며 저항권을 옹호한 바 있다.

이러한 신학적 논의 과정에서 계약, 국민주권 등 매우 근대적인 개념들도 등장한다. 라우텐바하의 마네골트(1030~1103)는 통치권의 기초를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나 자연법적 원리가 아닌 법적.역사적으로 이해된 ‘복종계약’에서 찾았다. 복종계약으로부터 도출되는 통치자의 계약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통치자는 폭군이며, 그렇게 되면 신민은 복종의무에서 해방되어 폭군을 퇴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파두아의 마르실리우스(1290-1343)는 이 이론을 더 발전시켜 정치권력의 소지자는 ‘국민’(universitas civium)이며, 국민은 이 권력을 지배계약을 통하여 통치자에게 위탁한 것이라고 함으로써 국민주권 사상을 주창했다.16세기 후반 신.구교도 사이의 종교분쟁 시기 저항권은 중요한 논쟁 주제가 된다.

이 시기 저항권 논의의 백미는 1579년 발표된 <폭군에 대항할 자유의 변호>(Vindiciae contra tyrannos)이다. 이름을 감춘 위그노 저자가 쓴 이 팸플릿은 신학적 계약관(convent)과 법률적 계약관(contract)을 결합해 공익에 반하는 왕에 대한 저항은 법률의 관점에서도 정당화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권리로서의 저항이 체계적으로 확립된 것은 시민혁명기의 사상가들, 특히 사회계약론자들의 저술을 통해서이다. 이 가운데서 존 로크(1632-1704)는 저항권을 가장 분명한 용어로 주장, 이후 미국혁명(=미국독립전쟁)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다.

로크는 왕의 통치권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왕권신수설’에 맞서 왕의 통치권은 신민과의 계약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왕권계약설’을 주장했는데 인간의 관심은 생명, 자유, 재산의 보존이며 자연상태에서는 이를 위한 많은 것들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공동체를 결성하고(사회계약) 스스로를 정부의 지배 하에 둔다는 통치계약을 주장했다. 이 통치계약은 권리의 ‘신탁’으로 만약 정부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의 목적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일방적으로 복종 동의를 철회하고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항권에 대한 여러 사상가들의 주장은 1776년의 미국독립선언서, 버지니아 주 권리장전, 1789년의 프랑스인권선언, 1791년 프랑스헌법 등에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법치국가의 확립과 더불어 전제정과 폭군에 대한 비상권으로서의 저항권은 불필요하다고 여겨진 결과, 미국과 독일을 제외하면 저항권을 명문화한 선진 법치국가 헌법은 거의 없다."
 

통치권자와 국가의 불법적 행위에 대해 최종 수단으로서 시민저항권 행사는 역사에서 종종 있어 왔다.
통치권자와 국가의 불법적 행위에 대해 최종 수단으로서 시민저항권 행사는 역사에서 종종 있어 왔다.

우리 헌법 속 저항권의 모습은?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대한민국 헌법에는 저항권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다수의 헌법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저항권이 인정되고 있다고 본다. 첫째, 헌법전문에 저항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3·1운동과 4·19민주이념의 계승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둘째, 저항권은 본질적으로 제도화할 수 없는 권리로서 자연권성을 가지므로 헌법규정의 존부에 관계없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관련 판례를 보면 저항권의 인정 여부에 대해 대법원은 자연권으로서의 저항권은 인정하더라도 재판규범으로 채택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는 반면 헌법재판소는 저항권을 사실상 인정한다.

예를 들면 대법원의 경우 ‘민청학련’ 사건에서 “초법규적인 권리개념으로써 현행 실정법에 위배된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서도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며 저항권에 부정적인 입장인데 ‘김재규 박정희 시해사건’의 경우 “자연법에서 우러나온 자연권으로서의 소위 저항권이 헌법 기타 실정법에 규정되어 있든 없든 간에 엄존하는 권리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논지가 시인된다고 하더라도 그 저항권이 실정법에 근거를 두지 못하고 오직 자연법에만 근거하고 있는 한 법관은 이를 재판규범으로 원용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반면 헌법재판소는 ‘입법과정의 하자와 저항권 사건’과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심판 사건’에서 저항권 행사의 엄격한 조건을 들어 기각함으로써 저항권을 사실상 인정했다.

저항권을 행사하는 주체는 모든 국민이며 여기에는 단체와 정당도 포함된다. 다만 외국인은 저항권 행사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본다. 그러한 저항권 행사의 대상은 반헌법적인 국가권력과 사회세력이다.

전통적으로 저항권의 대상은 국가권력에 한정되어 왔다. 그러나 저항권의 보호법익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헌법적대적인 사회세력에 의해서도 침해될 수 있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따라서 국가권력에 의한 ‘위로부터의 정변’ 뿐만 아니라 사회의 혁명세력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정변’에 대해서도 저항권은 행사될 수 있다는 것이 최근의 학설이다. 사회의 혁명세력에 대한 저항권 행사는 그 세력이 국외 세력의 비호를 받는 경우 더 필요하게 된다. 저항권은 ‘비례의 원칙’을 지키는 한 폭력, 비폭력의 모든 수단이 사용 가능하다고 해석된다.

통진당해산사건에 대한 헌재의 판결에도 나오듯이 “저항권은 공권력의 행사에 대한 ‘실력적’ 저항이어서 그 본질상 질서교란의 위험이 수반되므로” 저항권의 정당한 행사에는 엄격한 요건들이 적용됨을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저항권은 보통 최후 수단성, 명백성, 성공 가능성의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 비로소 정당하게 행사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첫째, 저항권은 헌법이나 법률에 규정된 일체의 법적 구제수단이 이미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없는 경우에 민주적·법치국가적 기본질서를 재건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행사가 가능하다.

둘째, 저항 대상의 헌법질서에 대한 공격이 명백하여야 한다. 단 헌법질서의 범위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헌재는 통진당사건 판결에서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전체적 질서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있거나 이를 파괴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고 했으나 헌법질서의 일부에 대한 침해로서 충분하다는 주장도 많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 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만 침해되어도 저항권은 행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저항권은 성공 가능성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행사될 수 있다고 한다. 저항권의 행사는 위헌적인 행사를 제거할 가망성이 전혀 없으면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러한 저항권의 행사요건을 전부 갖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최후수단성은 저항권의 행사 시기와 관련하여 너무 막연하며 연속되는 정치 상황의 전개 속에서 정상 상황과 저항 상황을 선명하게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 있다.
 

진화된 정치환경, 저항권 담론도 쇄신해야

오늘날의 인터넷 시대에는 댓글 조작이나 실검순위 조작에서 보듯이 명백성의 요건 또한 충족하기 쉽지 않다. 여기에 맞불집회 등도 명백성을 입증하기 어렵게 만든다. 성공 가능성의 요건은 더 충족되기 어렵다. 저항권의 행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헌법침해의 초기에 저항권이 행사되기 시작해야 하지만, 이 단계에서는 아직 최후수단성의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고, 반대로 최후수단성의 요건이 충족된 경우에는 이미 불법권력이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저항권을 미국의 시민불복종이론, 특히 존 롤즈의 시민불복종이론으로 설명하려는 견해도 있고, 저항권을 국가 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복종의 자세’로 이해하고 이를 ‘수시적이고 계속적인 현상’으로 이해하려는 입장도 있다. 여기에 저항권의 행사요건으로서 성공 가능성의 요건을 부정하거나 완화해야 한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 저항권 행사 가능한가?

현실적으로 보면 저항권의 행사요건이 매우 엄격하게 해석되기 때문에 모든 요건을 갖춰 저항권을 행사하기는 매우 힘들다고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저항권이 인정된다는 것은 헌법 수호와 기본권 보호의 최종적인 주체는 다름 아닌 국민 자신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의미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요건만 충족되어도 행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법정신과 현실에 부합한다.

성공 요건의 경우 법학자들 조차 무시해도 좋다는 의견을 내는 사람이 적지 않다. 현실적으로 성공 여부를 예단할 수도 없거니와 저항이 성공하여 법치국가적 질서가 회복되면 저항행위는 소급하여 적법한 것으로 인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후수단성과 관련해서는, 배가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구조를 미룰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 방치할 경우 자유민주적 헌법질서가 완전히 훼손될 것이 명백해 보이면 저항권의 시기는 앞당겨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회에서의 탄핵과 같이 헌법에 내장된 구호수단은 다 시도할 것이 요구된다. 탄핵이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탄핵 실패 자체가 최후수단성을 입증하는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영조 미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이영조 미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결국 저항권 행사의 관건은 헌법질서 침해의 명백성이다. 현재 한국의 헌법질서가 침해되고 있는 것은 거의 분명해 보인다. 다만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뿐이다.

지난 2~3년간 일을 압축해서 보면 ‘합리적 의심’의 수준을 넘어서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고 보인다. 굳이 ‘좌파 독재’라는 국외의 평가를 빌지 않더라도, 이 정권이 촛불정권임을 자인하는 이상 2016년 촛불시위에서 등장한 각종 구호와 요구 사항에서부터 ‘자유’를 삭제한 헌법 개정 시도, 국회 무시와 사법부 시녀화 같은 삼권분립의 훼손, 국가안보의 사실상 해체, 함박도 사건에서 보이는 영토 수호의 의무 방기 등을 종합하면 자유민주적 질서를 훼손한다는 충분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국회가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탄핵을 시도하고 정부 규탄의 초점이 단순한 법무부 장관 임명에 대한 불복에서 한 차원 높은 자유민주적 질서의 수호로 옮겨지면 저항권을 행사할 현실적인 요건들은 갖춰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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