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보는 눈] 성경이 말하는 정의(正義)
[시대를 보는 눈] 성경이 말하는 정의(正義)
  • 이종윤 미래한국 상임고문.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 승인 2019.11.08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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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출판해 인류보편적 가치인 ‘정의’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인의 화두가 되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친 정의를 실천하라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 우리 사회는 사리사욕(私利私慾)과 당리당략(黨利黨略)에 매몰되어 정의를 실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인류보편적 가치를 찾아 볼 수 없게 된 것처럼 보인다.

정의는 약자를 돌보는 것이다. 정의를 행하는 것과 인자를 사랑할 것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하신다.(미6:8) 인자(chesedth)란 하나님의 조건 없는 은혜와 동정을 가지라는 것이라면, 정의(mishpat)는 인자를 동기로 삼아 행동하라는 것이다.

구약에서 정의는 200회 이상 나온 말로서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는 것이다. 거류민이나 본토인이나 그 법을 동일하게 적용할 것을 요구한다.(레24:22) 사면하거나 형벌 때도 종족·신분 여하를 막론하고 동일하게 벌과 사면이 되는 것이다. 정의란 잘못된 행동에 대한 형벌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이종윤 미래한국 상임고문.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이종윤 미래한국 상임고문.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정의는 그들의 권리를 그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백성들의 수입의 일정분을 받아 생활하는 것이 정의 또는 권리라 한다. 가난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권리를 방어해 주는 것이다.(잠31:9) 벌을 받거나 보호를 받거나 돌봄을 받든지 그 권리를 백성에게 돌려주는 것이 정의다. 성경은 고아, 과부, 가난한 자, 나그네(이주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것을 정의라 한다.(슥7:10)

오늘날 난민, 외국인 노동자, 결손가정 자녀들, 장애인, 노약자들이 우리의 돌봄의 대상이다. 이런 이들을 돌보지 않는 것은 단순한 자비, 긍휼의 결여가 아니고 정의를 모독(파괴)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경제력과 사회적 힘없는 자들을 사랑하시고 방어하신다. 우리도 이를 행하는 것이 정의의 실천이다. 나라가 어려울 때 국민운동을 통해 돕는 것이 정의 실천도 된다.

정의는 하나님의 성품을 반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방어자)이시며’(시68:4, 5), 그러나 고대 사회에서의 신(神)들은 힘 있는 왕이나 장군들의 편이었지 힘없는 억울한 자의 하나님이 아닌 고로 고아, 과부, 나그네의 하나님은 불명예스런 정의(Scandalous Justice)의 하나님이라고 사람들은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 못하는 자, 고독한 자, 압박 당하는 이, 이방인들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압박 당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시고,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고 가르치신다.(렘22:3)

‘하나님은 맹인의 눈도 되고, 다리 저는 이의 발도 되고, 빈궁한 자의 아버지도 되며 내가 모르는 이의 송사를 도와 주었으며 불의한 자의 턱뼈를 부수고 노획한 물건을 그 잇새에서 빼내었느니라’(욥29:12-17)

정의는 너그러운 관용을 포함한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너그럽게 주는 것은 자비요 동정 또는 구제지, 정의는 아니라 생각한다. 구제는 좋은 것이나 강요할 수 없는 선택적 활동이다. 시간과 재원을 너그럽게 드려 부정, 폭력, 억압을 종식시키는 정의로운 행동을 실천하여 하늘이 주시는 음성인 정의, 공평, 자유가 있는 국가 사회가 되도록 함께 힘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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