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저자세 황당 코미디 ‘평양 남북축구’
대북 저자세 황당 코미디 ‘평양 남북축구’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11.1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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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협회와 통일부, 어처구니없이 북한에 항의 한번 못해” 
관중도 중계도 없는 이상한 축구경기. / 사진 북한축구협회
관중도 중계도 없는 이상한 축구경기. / 사진 북한축구협회

지난 10월 15일 29년 만에 ‘평양 원정’에 나선 한국 축구대표팀은 북한과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3차전에서 득점 없이 비겼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이날 평양의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린 북한과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3차전 원정에서 접전 끝에 0-0 무승부를 거뒀다.

이날 경기는 비상식적 상황의 연속이었다. 평양 원정은 취재도 중계도 허락되지 않았고, 관중도 없는 ‘깜깜이 경기’였다. 선수단이 털어놓은 평양 체류기간 뒷얘기는 몰상식을 넘어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대표팀은 경기를 하루 앞둔 10월 14일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북한에 입국했다. 당초 대한축구협회는 선수들의 피로를 최소화하기 위해 육로와 전세기를 이용한 이동 등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지만 북한은 베이징을 경유한 입북만을 고수했다고 한다. 선수들은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에 일괄적으로 휴대전화를 맡긴 채 북한 땅을 밟았다.

또한 입국 전에는 트레이닝복과 양말 등 국내에서 가져가는 물품을 북한에 두고 와서는 안 된다는 당부도 받았다. 평양 순안공항에선 ‘소지품 종류와 수량까지 적어내라’는 요구를 받았다. 컨디션 유지가 필요한 선수들은 공항을 빠져나오는 데만 3시간이 걸렸고, 선수단 버스는 시속 50㎞ 안팎으로 저속주행하며 시간을 끌었다.

입북 후에도 통제는 계속됐다. 선수들은 경기나 훈련 등 공식 일정 외에는 숙소인 평양 고려호텔에만 머물렀다. 선수들을 위해 챙겨간 식자재도 사전 신고를 거치치 않았다는 이유로 모두 뺏겼고 호텔 내 음식으로만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경기 후 국내에서도 상식은 뒤집혔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10월 17일 국정감사에서 “(무관중 경기는) 북한 나름대로 공정성의 조치를 취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고 북한을 두둔했다. 야당 의원이 “북한의 태도를 비판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다그치자 김 장관은 그제야 마지못해 “(북한의 태도에) 매우 실망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유감 표명 조차 하지 않았고 “우리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먼 나라 얘기하듯 했다.

이에 앞서 손흥민 선수가 귀국 직후 “다치지 않고 돌아온 것만 해도 큰 수확”이라며 안도한 것을 두고 일부 친여 성향 네티즌들은 “남북평화에 기여는 못 할 망정”, “정치의식이 부족하다”고 비난한 일은 여론을 크게 악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주북한 스웨덴 대사가 10월 15일 자신의 SNS에 평양에서 열린 남북 축구 경기 일부 장면을 공개하면서 파장이 일었다. 공개된 장면에는 선수들이 충돌하는 모습도 있었다.

그는 “애들 앞에서 싸우지 마라”며 “아, 그런데 오늘은 (경기장에) 아무도 없네”라고 무관중 경기에 대한 씁쓸함을 표현했다. 영상에는 한국 축구대표팀 주장 손흥민이 북한 선수들 무리로 들어가 말리는 모습도 보인다.

관련 기사에는 “이런데도 문재인은 공동올림픽 하자구 사정사정 하니까 기막힌다”, “저들을 지옥 같은 곳에 보낸 정부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저런 깜깜이 경기 도중에 세계 37위 우리 축구와 147위 북한이 0:0 동점이라면~ 얼마나 많은 북한의 야만적 반칙과 카타르 주심의 공정치 못한 북한 위주의 심판이 있었는가는 안 봐도 비디오! 이것이 현재 북한의 민낯” 등의 비판 댓글 일색이었다.

이날 경기는 북한 측의 비협조로 전파를 타지 못했다. 이 때문에 한국 팬들은 경기 영상을 전혀 볼 수 없었다. 경기 상황은 협회가 아시아축구연맹(AFC) 경기 감독관으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을 국내 취재진에 전달하며 알려졌다.
 

손흥민선수(흰색)를 거칠게 마크하고 있는 북한선수(빨간색). 손흥민선수는 귀국직후 다치지 않고 온 것만해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 사진 북한축구협회
손흥민선수(흰색)를 거칠게 마크하고 있는 북한선수(빨간색). 손흥민선수는 귀국직후 다치지 않고 온 것만해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 사진 북한축구협회

돈 떼인 KBS는 꿀먹은 벙어리

KBS가 북한에 계약금만 지불하고 생중계는 물론, 녹화중계까지 무산된 것도 여론의 공분을 샀다. 이와 관련해 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양승동 KBS 사장을 향해 “계약금을 떼일 상황인 북한전은 무관중 무승부 무중계 3무(無) 경기였는데 (녹화중계가 무산되며) 여기에 무시청을 보태 4무 경기가 됐다”며 “북한에서까지 바가지가 새니 KBS가 적자 경영에 빠질 수밖에 없겠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번 중계에 대한 북한과의 계약금 17억원 아니냐”며 “통상 10~30% 보내는 선금의 20% 정도 적용했으면 3억 정도 떼일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양승동 사장은 “계약금은 밝힐 수 없지만, 통상 A매치 수준의 계약금·방송권료였고 지상파 3사가 계약금을 분담한다”고 답했다. 중계무산과 관련해 명확한 답변을 피한 셈이다.

이에 변호사 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은 10월 22일 KBS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공개를 청구한 대상은 △남북 축구 경기 중계 영상 파일 △경기 중계료 등 비용 지급과 관련된 계약 내용 △실제 지급 금액 △경기 중계 무산에 따른 비용 반환 또는 손해배상 청구 진행 상황 등 정보다.

한변은 “관중도 없는 상태에서 심한 태클은 물론 욕설까지 나왔다고 하니 우리 선수들이 느꼈을 공포는 과연 어떠했을까”라며 “우리 축구 대표가 북한에서 어떤 경기 내용을 보여준 것인지에 대하여는 축구 팬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상식적인 행태와 우리 정부의 저자세로 일관한 ‘평양 원정’에 대해 축구인들도 씁쓸해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 붉은악마 대의원은 본지와 통화에서 “붉은악마로 많은 나라, 많은 경기를 다녀봤다. 여러 가지 부담되고 때로는 황당한 사건을 겪어봤지만 이번 남북 평양 경기에서처럼 아예 서포터를 못 오게 한 경우는 처음”이라며 “더 이해하기 힘든 건, 항의 한번 제대로 못하는 협회와 통일부의 어처구니없는 행태다. AFC의 징계로 AFC컵 결승전 개최권을 박탈당하는 등 제재를 받기는 했지만 우리 협회와 통일부의 강력한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 다시는 이런 사태가 제발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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