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맞는 중산층 강화, 노동시장 개혁이 핵심이다
헌법에 맞는 중산층 강화, 노동시장 개혁이 핵심이다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9.11.1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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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사회계약의 제도적 결정체다. 좋은 제도는 신뢰를 높이고 거래비용을 줄여 국민과 나라를 번영시킨다. 국민의 삶과 경제력에 직결된 고용과 소득은 노동시장제도에 좌우된다. 사회계약으로서의 노동시장제도의 성패는 제도뿐 아니라 당사자들의 의식에 좌우된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나쁘게 운영되면 고용과 소득이 불안하다.

우리나라 헌법은 노동시장제도의 방향은 물론 국민과 정부의 역할까지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헌법의 내용은 역동적인 노동시장과 공동체적인 노사관계, 적극적인 노동정책을 지향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헌법 정신의 왜곡, 구성원간의 신뢰와 규범의 부족, 정책의 방향성 상실로 노동시장은 활력을 잃고 노사관계는 협력이 상실된채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헌법 전문을 보면 대한민국은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는 나라를 지향한다. 기회의 균등으로 노동시장 참여와 노동 이동의 제도적 장벽을 없앰으로써 노동력을 확대해 취약 계층을 배려하고, 능력의 최고도 발휘로 노동생산성을 제고해 국민소득을 높이자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

노동시장제도가 헌법 정신을 잘 반영했다면 우리는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을지 모른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강자가 기회를 독식하고 능력 발휘가 억압받는 노동시장제도가 되었다. 전체 근로자 중 10%에 불과한 대기업·공공부문·노동조합 근로자는 고임금과 고용보호의 혜택을 누리고 나머지 90%의 대다수 근로자는 소외받는 10:90사회가 되었다.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헌법 제10조), 근로의 권리를 가지며 근로의 의무를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해야 하고, 근로의 의무의 내용과 조건을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법률로 정한다(헌법 제32조1항과 2항). 이 또한 현실과 다르다.

노동시장에 대한 국가의 무분별한 개입은 국민의 행복을 저하시켰고 근로의 권리와 의무를 후퇴시켰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임금과 고용기회의 격차가 커지고 취약계층이 증가하면서 다른 나라에서는 유래를 찾기 어려운 이중구조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이 2배 이상 차이 나고, 청년 4명 중 1명이 실업상태이며, 여성의 고용률은 남성보다 10% 낮지만 비정규직 비율은 약 15% 높다. 나이가 많아지면 가난해져 고령층 빈곤율이 45%에 이르는 나라가 되었다.
 

중산층을 강화하려면 귀족노조 중심의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한다.
중산층을 강화하려면 귀족노조 중심의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한다.

87체제의 모순과 중산층 일자리 감소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헌법 제33조1항).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하고(헌법 제119조1항),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헌법 제119조2항).

그러나 노동기본권과 경제민주화는 근로조건이 좋은 근로자의 기득권 확대의 도구로, 시장지배자인 대기업·공공부문의 사업자와 노동조합의 이익 추구 도구로 이용되었고, 협력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소비자는 이에 따른 부담을 떠안는 구조적 모순을 낳았다.

현행 헌법은 1987년 민주화운동의 산물이다. 권위주의 체제를 무너뜨린 힘은 1980년대 주류세력으로 급성장한 중산층에게서 나왔다. 경제성장으로 소득이 올라가고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특권을 반대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중산층의 의식도 올라갔다.

그러나 소위 87체제는 그 후 결과적으로 중산층을 약화시켰다. 일반적으로 경제성장의 초기 단계에서 중산층이 약화되었다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복지확대로 중산층이 강화된다. 우리나라는 반대로 초기 단계에 중산층이 강화되었다가 그 이후 복지를 확대 했음에도 중산층이 약화된 것이다. 87체제의 헌법정신 왜곡과 노동시장제도의 구조적 모순이 기득권과 특권을 키워 기회 균등 노동시장이 아닌 승자 독식 노동시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우리나라에는 민주화와 노동운동 열풍이, 그러나 세계는 디지털기술혁명과 세계화 열풍이 불었다. 지금은 방향이 180도 바뀌어 국익과 기술안보를 우선하는 세계화의 역풍이 불고 있다. 산업구조 조정과 기업의 덩치 키우기로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고 노동시장제도 개혁으로 고용과 소득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산업 전략과 인적자원개발 전략을 수립하고, 생산물시장과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를 없애며, 숙련도와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외국 자본과 외국 인력 유치를 강화하고 있다. 규제가 작은 미국은 물론 규제가 많았던 독일과 북부 유럽 국가도 전후 최대의 일자리 호황을 누리고 있고, 대기업 고용 비중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19 중장년 희망 잡페어’를 찾은 구직자들. 중장년층에 대한 일자리 부족은 또 하나의 사회 문제다.
‘2019 중장년 희망 잡페어’를 찾은 구직자들. 중장년층에 대한 일자리 부족은 또 하나의 사회 문제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정반대로 되었다. 중산층이 일했던 대기업의 고용 비중이 40%에서 10%로 격감한 반면, 기술혁신과 세계화에 소외된 중소기업의 고용비중은 90%로 늘어났다. 중산층의 일자리가 하향 이동된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이유로 생산물시장과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가 모두 강화되면서 기술혁신과 세계화에 대한 대응은 더 어렵게 되었다.

규제의 폭발적 증가, 과격한 노동운동의 충격으로 대기업들은 자동화를 통한 노동력 대체, 생산기지 해외 이전, 부품 조달 글로벌화를 선택해야만 했다. 반면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은 정부의 지원과 보호에 의존해 경쟁력이 떨어지는데도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차이는 더 커지게 되었다. 대기업에서 흡수하지 못한 노동력이 중소기업으로 몰렸지만 과당 경쟁과 싼 인건비는 중소기업의 구인난을 구조적인 문제로 만들었다.

선진국은 이민 인구의 유입이 중산층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는데 우리나라는 고령화가 중산층 감소의 주요 원인이다. 고령화 속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고령화가 빈곤화로 이어지면서 중산층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기술혁신과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숙련이 부족한 고령층은 빈곤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그렇다고 부모 세대보다 교육 수준이 높은 청년층의 숙련이 높은 것도 아니다. 빈곤의 위험도 부모 세대의 청년기 때보다 높아졌다. 고학력 신중산층의 대기업 취업 기회가 막히면서 청년층의 실제 실업률은 25%나 된다.

이런 상황에서 중산층을 강화하려면 노동시장제도의 전면 개혁이 필요하다. 승자 독식 노동시장을 기회 균등 노동시장으로 바꾸고, 대기업·공공부문·노동조합의 특권을 줄이며, 중소기업을 고숙련·고생산성체제로 전환하도록 전면 개편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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