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대중문화, 그리고 정치....."대중문화 산업, 정치 간섭에서 자유롭게 하라"
[연속기획] 대중문화, 그리고 정치....."대중문화 산업, 정치 간섭에서 자유롭게 하라"
  • 조희문 영화평론가·조희문 영화아카이브 대표
  • 승인 2019.11.2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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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017 부산영화제에서 인사말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 부산영화제에서 인사말을하고 있다.

대중문화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대상과 경계를 정하기는 쉽지 않다. 단순하게 영화라 하더라도 세부에 들어가면 영화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다를 수 있고, 산업적 유통 구조에서 영위되는 것인지, 개인적 창의성을 바탕으로 미학적 표현에 몰두하는 경우인지에 따라 평가나 위상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다양한 계층의 소비자들이 일상적으로 여가나 취미로 즐기고 있는 영화나 드라마, 게임, 가요, 춤 등을 가리킨다. 과거에는 대중문화 매체들의 유통 경로가 제한적이어서 접촉의 한계가 있었지만, 디지털 시대로 바뀌면서 대중문화의 소비 패턴은 일상 생활과 맞닿아 있는 상태다. 길을 걷거나 운동을 할 때도 음악을 듣거나 영상을 시청하는 경우가 흔하다.

전철을 타고 있는 승객들 중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연예 소식이나 음식 레시피를 접하고 패션이나 특이한 장소를 살피기도 한다. 미용이나 육아, 음식, 건강, 운동, 스포츠 등 온갖 분야의 정보들이 소통된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새로운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활동은 실시간으로 소식을 전하며 세계적인 스타로 주목받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는 최고 수준의 퀄리티를 자랑하며 게임, 스포츠 분야에서도 상위 그룹에 든다. ‘한류’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국내를 벗어나 해외 시장을 누비고 있는 현실을 증명하는 단어가 되었다.
 

방탄소년단과 싸이의 한류

오랫동안 한국의 대중문화는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채 빈약하고 위축된 상태로 숨죽였다. 영화의 경우 ‘영화’라면 당연히 외국영화를 가리키는 것으로 통했고 한국영화는 ‘국산영화’ ‘최루탄영화’ 등으로 불리며 멸시를 받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2000년대 들어 그 같은 상황은 급변했다. ‘쉬리’가 흥행 선풍을 일으킨 것을 계기로 한국영화는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대표적인 문화상품으로 바뀌었다. 1000만 관객을 넘기는 ‘대박’ 영화들이 간단없이 등장하고 있으며 한국영화를 벤치마킹하거나 투자, 배급에 참여하려는 외국계 회사들의 활동도 나타난다.

몇 년 전 작곡가 겸 매니저 박진영은 미국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며 자신이 발굴한 걸그룹과 함께 프로모션 투어를 시도했다. 국내시장에서는 성장했지만 드넓은 해외 시장을 돌파하지 못한다면 결국 우물안 개구리 격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의 반영이었다. 그런 시도가 얼마나 성과를 거뒀는지 계량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한국 대중문화의 성장과정에서 도전정신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 있다.

박진영의 아날로그 식 노력이 진행되고 있던 무렵 싸이의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은 유튜브 조회 신기록을 세우며 선풍을 일으켰다. 한국 가수의 노래가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세계와 유통한 첫 번째 경우가 아닐까 한다.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가 충분히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확인과 자신감을 얻는 계기이기도 했다.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것을 계기로 한국 드라마와 영화, 가요가 일본 시장으로 달려갔고, 중국에서도 한류는 열풍을 일으켰다. 수많은 탤런트, 배우, 가수들이 스타로 주목받았고 그들이 소비하는 패션, 화장품, 음식 등 여러 가지 관련 상품이 함께 인기상품으로 떠올랐다. ‘대장금’은 일본 뿐 아니라 중동이나 남미 여러 국가들에서도 인기를 모았다. ‘별에서 온 그대’는 김수현이나 전지현을 중국 팬들의 인기를 모았고, 맥주에 치킨을 안주로 곁들인 ‘치맥’은 한국의 대표 메뉴처럼 통했다.

대중문화의 에너지는 4차 산업 시대의 등장과 맞물리면서 여전히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를 살펴야 할 때가 되었다. 영화계의 경우 중국 자본에 예속되는 것은 아닌지, 게임 분야는 중국 정부의 노골적인 차별과 적대로 인해 시장을 제한당하고 있는 상태여서 업계가 고심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역대 어느 시절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성장기를 맞았지만 국내외의 정치적 변수, 동종 업계의 경쟁 심화, 소비자의 패턴 변화 등으로 인해 오늘의 성공이 미래의 안전까지 보장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국내의 대중문화가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자유롭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정권의 성격에 따른 이념적 영향, 여론에 편승하는 정부의 눈치보기 식 정책 등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10월 26, 27일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월드투어피날레 콘서트를 연 BTS 방탄소년단. / 빅히트엔터테인먼트
10월 26, 27일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월드투어피날레 콘서트를 연 BTS 방탄소년단. /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문재인 정권의 문화정책 ‘문화비전2030’

문재인 정부의 문화 정책은 2018년 12월 발표한 ‘문화비전2030-사람이 있는 문화’에 수록되어 있다. 문화부 내의 사업단 성격을 띤 새문화정책준비단은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단장으로 하여 19명의 TF 위원과 8명의 TF 분과위원, 문화부 측 5명의 담당 등 모두 36명으로 구성되었다.

각 대학의 해당분야별 교수와 문화관광연구원 소속 일부 연구원들이 참여했지만 사실상 좌파 진영의 문화 정책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문화연대와 민예총이 주도해 문화부가 유지하고 있던 대강의 문화 정책 운영 방향에다 좌파적 개념을 섞어 놓은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정책 보고서의 앞머리에 밝히고 있는 기본 개념은 다음과 같다.

‘문화비전2030-사람이 있는 문화’는 자율성, 다양성, 창의성이란 가치를 기본 원리로 삼고 있다. 자율성은 개인의 자유로운 문화 활동과 향유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 개인 뿐 아니라 문화예술인, 관광 및 문화산업 종사자, 체육인의 지위와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과제들을 담았다. 다양성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집단들이 서로 차별하지 않고 존중하며, 자신들의 문화적 힘을 펼쳐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국적, 인종, 종교만이 아니라 세대, 성, 성차, 장애, 지역을 아우르고, 나아가 예술의 크고 작은 집단들이 서로 다양하게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가 유지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창의성은 단지 문화콘텐츠 산업을 육성하는 역량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교육, 노동, 복지, 도시재생, 환경, 통일 분야에서 문화가 사회 발전과 혁신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가치이자 동력이다.

‘문화비전 2030’은 대강의 틀에서는 문화정책의 기본 지향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실행과정에서는 이념적 편향과 대립, 갈등의 조장, 편가르기에 따른 피아의 구분과 적대적 공격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지향과 실천 사이에 상당한 괴리를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있는 문화’라는 개념 속에는, 과도한 노동시간, 심화되는 빈부 격차, 이념적 편향 등의 문제로 국민의 문화권 또는 인권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았다는 인식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과정에서 ‘나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들까지 포용하겠다’고 했지만 집권의 반환점을 넘기고 있는 현재까지 국민통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평가할 만한 가시적 시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을 인정하지 않고, 민주화의 과정이 특정 세력의 성과물인 것처럼 호도하며, 지지세력과 비판 세력에 대한 대응 태도는 현저하게 다르다. 지지세력의 주장은 ‘국민의 소리’ ‘열렬한 호응’으로 구분하지만 비판적 입장에 대해서는 ‘적폐세력’으로 몰거나 ‘가짜뉴스 생산자’, ‘개혁을 방해 세력’ ‘친일파’ ‘토착왜구’ 등 다양한 이름으로 규정한다.

‘문화비전 2030’은 ‘문화’의 포괄적 개념을 관념적으로 설정하기는 하지만 어떤 세력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는가에 대한 구분은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지지하고 수호하려는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와 그 반대 입장에서 자유민주적 가치와 대한민국 국체를 부정하려는 세력들의 파괴적 활동에 대해서 등가의 가치로 보거나 오히려 반대 세력을 지지하고 지원해야 하는 주체로 설정하려고 한다.

문화예술계가 ‘뒤집어진 운동장’이 되었다는 한탄 섞인 비판이 나오는 것은 좌파 세력이 현장과 단체, 조직, 행정 등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좌파 세력들은 문재인 정권 이전에도 영화, 방송, 미술, 출판 등 여러 매체들을 보수 정권을 비난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각종 농산물 수입 개방, 한미간 FTA체결, 평택 미군기지 이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스크린쿼터 축소, 한국군 해외 파병, 4대강 개발 사업,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사드배치, 한일간 위안부 문제 협상 등 국내외적인 이슈가 있을 때마다 이를 저지하거나 비난하려는 시도가 무차별적으로 터져나왔다.

좌파 계열의 예술가를 자처하거나 그들과 연계된 단체들은 드러내듯 연대하며 시위를 이어갔다. 문성근, 명계남, 김제동을 비롯해 권해효, 김여진, 김제동, 김미화 등 각종 시위의 배후를 조직하고 지휘하는 것으로 의심받거나 현장에서 앞에 나서는 인물들에게는 ‘개념연예인’이라고 치켜세운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니 청산가리를 먹는 게 낫겠다고 한 어느 여배우나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을 야비하게 비난했던 배우나 탤런트, 가수들 중에서도 그런 타이틀을 붙이기도 한다. 대중문화 분야일수록, 대중적 영향력이 큰 장르일수록 프로파간다에 동원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방탄소년단의 도쿄공연장
방탄소년단의 도쿄공연장

문화산업에 자율성 보장해야

소비자를 둘러싸고 있는 생활 환경도 다양하다. 각 세대에 따른 삶의 방식이나 인식, 가치가 다르고 계층의 차이에 따라 특정한 가치를 수용하거나 소비하는 패턴이 달라질 수 있다. 생활 환경, 미디어 환경, 삶의 방식, 소비 트렌드 등의 환경의 급변은 어떤 것을 중심 가치로 삼아야 하는지, 삼는다 하더라도 연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신하기 어렵다.

지금의 시대적 환경은 이전에 누구도, 어느 세대도 경험해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형태다. 과거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것도, 계속 연결되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누구든 적응을 요구당하고 있다.

성과와 효율을 강조하면 산업화 시대의 모순과 갈등을 추종하는 개발 독재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공격하고 평등과 분배를 앞세우면 현실을 무시한 관념론으로 그치는 한계에 직면해야 한다.

‘문화비전 2030’이 2030년에 이르기까지의 장기적 문화 비전을 담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의 환경이나 논리, 개념이 계속 유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보장도 하기 어렵다.

디지털 환경이 일상화한 오늘의 여건에서 본다면 민간의 역량은 정부가 개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앞서거나 자생력을 갖추고 있는 수준이다. 한류의 경우를 예로 들면 대부분의 성과는 민간이 일궈낸 것들이다. 아이돌 발굴은 연예 기획사들이 공들여 만든 작업이고 그들을 통해 한류 붐을 일으킨 것도 민간의 노력이 만든 결과다. 특정한 분야의 역량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스스로의 자생력과 여과 과정을 통해 더 진전된 경쟁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

동방신기 도쿄 공연 포스터
동방신기 도쿄 공연 포스터

지금의 문화 정책 주무 부서가 영화나 가요, 드라마 제작, 출판 등의 영역에 구체적인 가이드나 진행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가? 뭔가를 하겠다고 나설수록 불필요한 간섭이나 발목 잡기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 스크린 상한제를 도입하려는 문화부의 시도가 오히려 영화계의 자생력을 훼손하는 제도적 방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문화부와 관련된 법규는 문화예술분야의 28개를 비롯해 문화콘텐츠 관련 18개, 관광 부문 5개, 체육분야 12개, 문화재청 관련 8개 등 모두 71개에 이르고 있다. 각 분야에 대한 업무 범위를 수용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필요에 따라 지나치게 세분화하거나 임기대응식으로 제정되어 각 법간의 유기적 상관성이나 연결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면도 배제하기 어렵다.

법의 가짓수가 많다 보니 관련 업무를 담당해야 하는 기관, 단체의 숫자도 그만큼 많아져야 하는 현상을 피할 수 없다. 각 기관 단체를 운영하는 데 따른 예산의 증가는 피할 수 없고 업무의 효율보다는 예산 확보와 집행을 우선해야 하기 때문에 타당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사업들이 관행적으로 유지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4대강 사업 비판 영화‘ 삽질’ 포스터
4대강 사업 비판 영화‘ 삽질’ 포스터

이 같은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업무의 조정이나 통합 등을 통해 구조조정을 할 필요가 있지만 일단 운영되고 있는 조직의 변경에는 소속 인력의 반발, 관련 업계의 저항, 여론을 의식해야 하는 정치 집단들의 이해득실 계산 등이 뒤따르기 마련이어서 누구도 선뜻 시도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여러 가지 요인들을 고려하며 새롭게 나아갈 수 있는 문화 정책을 개발하는 것은 한 두 마디의 구호나 부분적인 아이디어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새로운 문화 정책이 다수의 공감을 얻으면서 다양한 입장을 가진 성별, 세대별, 장르별, 지역별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일은 국가 경영의 기초를 세우는 만큼이나 중요하다.

대중문화의 지속적인 성장은 결국 건강한 문화 풍토와 창의적 여건의 보장, 자율성의 존중, 정책의 후원자 역할 등의 조건이 통합적,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에야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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