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주52시간 근로제한, 유예로 해결되지 않는다
[심층분석] 주52시간 근로제한, 유예로 해결되지 않는다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9.11.2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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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한국 고재영

지난 11월 20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단과 만났다. 회담 내용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김상조 실장이 경총에 요청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 가운데 하나는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 사회를 표방한다. 그러니 주52시간 기조는 변함이 없다’는 엄포였고 다른 하나는 ‘다만 주52시간으로 문제가 심각하니 경총이 탄력근무제와 같은 입법조치에 협력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한마디로 앞뒤가 안 맞는 행태였다. 청와대 스스로 ‘문제가 심각하다’는 주52시간 정책을 밀어붙여 놓고 대체입법을 국회가 아닌 경총에 부탁하는 김상조 실장의 모습은 ‘봉숭아 학당’이 따로 없다는 평가가 후일담으로 터져 나왔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해 7월부터 300인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기업에 주52시간 근로제한제를 실시했다. 이어 내년 2020년 1월을 기해 300인 이하 중소기업과 자영업에도 이를 적용한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이미 주52시간 근로제한이 몰고 온 산업 현장의 불안정성은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3개월 이상의 집중근로가 필요한 ICT(정보통신기술)·조선업종 등은 직격탄을 그대로 맞고 있는 상황이다. 경총의 최근 조사 연구에 의하면 올해 현재 300인 이상 고용 기업들의 주52시간 미 준수율은 24%에 해당하고 있다. 계도기간이 경과하면 모두 처벌 대상이 된다. 대기업들이 현재 이런 상황인데 중소기업에까지 주52시간 근로제한을 적용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주52시간 근로제한은 결과적으로 근로자의 소득만 감소시킬 가능성이 크다
주52시간 근로제한은 결과적으로 근로자의 소득만 감소시킬 가능성이 크다

주52시간 중소기업 적용시 GDP 10.7조 감소

지난 11월 19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19 근로시간 단축과 중소기업 영향 토론회’에서는 충격적인 전망들이 제기됐다. 중소기업연구원의 노민선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주52시간제로 근로시간을 단축할 경우 종사자 300인 이하 중소기업은 12만3000명의 신규인력이 필요하다는 분석 결과가 제시됐다. 또 중소기업 종사자 1인당 월평균 33만4000원의 임금이 감소하며 중소기업의 총 추가비용은 3조3335억 원으로 추정됐다.

구체적으로는 근로시간 단축 시 중소기업은 총 12만3000명의 신규인력 고용이 필요하게 되는데, 기업 규모별로는 30~99인 업체가 가장 많은 4만2000명의 근로자를 신규 고용해야 하며, 그 다음이 100~299명 업체로 3만6000명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12만3000명을 신규 고용할 시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총 5조9771억 원으로 추산됐다.

또 근로시간 단축 시 중소기업은 1인당 월평균 33만4000원의 임금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규모별로는 100~299인 업체가 46만6000원 감소로 가장 많이 줄었고, 5~9인 업체는 18만6000원으로 감소폭이 가장 작았다. 기존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이 줄어들면서 발생하는 300인 이하 중소기업들의 연간 총 임금감소액은 2조6436억 원에 달했다.

이러한 예상은 다른 연구에서도 비슷하게 등장한다. 문제는 기업들이 주52시간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자동화시설(ICT)을 도입할 것이며, 이로 인한 실업과 임금소득 감소가 상당한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올해 4월 4차 산업혁명 관련 경제정책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파이터치연구원의 김재현 연구위원은 국회 토론회에서 “탄력근무제를 시행하지 않은 채 주52시간 근무를 그대로 도입할 경우 반복노동시간과 비반복노동시간을 모두 단축하면 연간 실질 GDP가 약 10.7조 원, 고용이 약 40.1만 명, 임금소득이 약 5.6조 원, 기업 수는 약 7.7만 개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반복노동시간만 단축 시 자동화에 의해 ICT 자본이 0.1% 증가하고, 비반복노동시간만 단축 시에는 반복노동시간만 단축할 때보다 고용감소가 약 6배 큰 것으로 분석됐다.

따라서 주52시간 근로제한은 정책 의도와 달리 기업수를 감소시키고 자동화에 따른 기계의 일자리 대체 현상을 촉진시키며 일자리와 임금소득을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주52시간 근로제한이 가져올 산업적 재앙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와 노동단체, 진보단체들이 이 정책을 고수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이 OECD 평균에 비해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독일이 1298시간, 네덜란드가 1359시간, 프랑스 1383시간 그리고 덴마크가 1416시간으로 선진국일수록 노동시간이 적다는 점도 주장한다.
 

‘자본은 노동의 적’이라는 文정부의 노동관

1주일을 기준으로 삼자면 독일의 경우는 25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는 함정이 있다. 노동시간이 긴 이유는 상대적으로 노동생산성이 그만큼 낮기에 벌어지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같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데 있어 당연히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낮은 나라는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더 많은 시간을 노동에 투입해야 한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시간당 34.3달러(OECD, 2019)로 OECD 평균 48.2달러에 크게 못 미친다. 문재인 정부와 친노동 인사들은 노동생산성이란 생산한 부가가치를 노동시간으로 나눈 것이기에 노동시간을 줄이면 생산성이 향상되는 것처럼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속력을 높이기 위해 도달할 목적지의 거리를 줄이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같은 결과라도 사양도가 낮은 컴퓨터보다 사양도가 높은 컴퓨터로 일을 하는 것이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빨리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자본투자가 고도화되면 노동이 효율적이 되기에 노동생산성이 높아지고 노동시간은 줄어들게 된다. 독일이나 프랑스의 노동시간이 우리보다 짧음에도 생산성이 높은 이유는 바로 이들 나라의 생산 현장에 자본투자가 우리보다 고도화 되어 있기 때문인 것이지 이들 나라 근로자들이 우리보다 일을 덜 해서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저녁이 있는 삶’의 모습은 우리 근로자들이 독일 근로자들처럼 효율적이고 생산성이 높은 장비들을 가지고 일을 하게 해주는 것이어야지 그저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대기업의 근로가 중소기업 근로보다 편하고 효율적인 이유도 대기업이 생산 현장에 자본투자를 많이 했기 때문인 것이다.
 

근로시간 위반 관련 벌칙 수준, 한국이 제일 높아

따라서 행복한 근로자란 자본투자가 고도화 된 노동 현장의 근로자를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소기업들이 더 커지기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하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이지만 문재인 정부와 같이 노동 편향적 경제이념을 가진 정치세력은 자본을 노동의 적으로 간주해서 대기업을 억제하려드는 것이 아예 자신들의 신념화 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주52시간 근로제한은 근로자들의 소득을 감소시키고 이는 임금인상의 욕구로 분출하게 된다.

최근 GM사의 근로자들이 평균 1억에 달하는 임금을 받음에도 임금인상을 이유로 파업을 벌이는 이유도 주52시간 규정으로 잔업과 휴일 수당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원인이 작용하고 있음은 굳이 언급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주52시간 근로제한과 같은 노동법이 초래하는 문제에는 이를 지키지 못하는 영세 기업인들을 전과자로 만든다는 점에 있다. 우리나라의 근로시간 위반 관련 벌칙 수준은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30-50클럽 국가(1인당 소득 3만 달러, 인구 5000만 명 이상 나라)들에 비해 높다. 또한 최저임금을 위반했을 때의 징역형은 30-50클럽 국가 중 우리나라와 미국에만 존재한다.

최저임금을 위반한 사업주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는 현행 처벌규정은 그런 점에 비해 과도한 측면이 있다. 지급능력이 한계선상에 있는 사업주들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못 버티고 불가피하게 법을 어겨 처벌을 받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는 30-50클럽 국가들도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지급한 경우 대부분 징역형 없이 벌금형만 부과하고 있는데, 프랑스는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이 지급된 근로자 1명당 1500유로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으며,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고 있는 일본은 지역별 최저임금을 위반했을 때 50만 엔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영국은 최대 2만 파운드 내에서 최저임금 미지급분의 200%에 해당하는 과태료(penalty)를 부과하거나 고의위반 시 벌금(fine)을 부과하고, 독일은 벌금이나 징역형 없이 최대 50만 유로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법에서 벌금형과 징역형을 도입하고 있으나 최저임금을 의도적으로 위반(willful violations)했을 때만 1만 달러 이하의 벌금 혹은 6개월 이하의 징역을 부과하고 있어 우리나라에 비해 처벌 수위가 낮은 편이다.

비록 선진국들이 근로기준법을 위반했을 경우 벌금을 부가하거나 미국처럼 징역형을 내린다해도 이들 나라에서 이런 문제로 처벌받는 경우는 현실적으로 드물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30-50클럽 소속 선진국은 일감이 몰릴 경우에도 사업주가 불가피하게 근로시간 규정을 위반하지 않도록 유연근로시간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11월 20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앞줄 오른쪽 네번째)이 경총 회장단과 정책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상조 정책실장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 기조는 변함이 없음을 재차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연합
11월 20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앞줄 오른쪽 네번째)이 경총 회장단과 정책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상조 정책실장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 기조는 변함이 없음을 재차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연합

탄력근로제와 같은 유연근로제 연장 도입 시급

고용노동부의 2019년 1월 조사 자료에 의하면 탄력근로 최대단위 기간이 3개월에 불과한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은 최대 단위기간이 1년 수준인 탄력근로시간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미국은 최대 단위기간이 26주에 달한다.

이러한 탄력근로제란 유연근무제의 일종으로 업무가 많을 때는 특정 근로일의 근무시간을 연장시키는 대신 업무가 적을 때는 다른 근로일의 근무시간을 단축시켜 일정기간(2주 단위 등)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을 52시간(법정 근로시간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맞추는 제도다. 즉, 단위기간 중에 일이 많이 몰릴 때는 근로시간을 늘리는 대신 남은 기간에는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본의 경우 1주, 1개월, 1년씩 차등화된 탄력근로시간제를 적용하고 독일의 경우 원칙은 6개월이지만 단체협약 등을 통해 12개월까지 가능하다. 프랑스는 탄력근로시간제 적용이 1년이며 산별협약의 경우 3년까지 가능하다. 영국은 17주를 원칙으로 단체협약의 경우 52주까지 허용되고 미국은 26주까지 가능하다. 이처럼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야 노동시간 제한도 그 의미가 살아난다.

파이터치 연구원의 김재현 연구위원은 탄력근무제 단위 시간을 1년으로 적용하면 탄력근무제를 실시하지 않았을 때보다 일자리가 약 29만 개 덜 줄어들고 임금소득도 4조 원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국내총생산(GDP)도 약 7조5000억 원 덜 감소해 탄력근무제 단위시간 확대가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발생한 ‘노동시장 불균형’을 그나마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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