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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02.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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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봉 편집위원]
   
 
  ▲ 김성봉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장  
 

유대의 예언자 이사야는 종교의 부패와 도덕의 타락으로 쇠퇴기에 있던 조국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한 후에 다시금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신탁(神託)을 받게 되었다. 그 백성들에게 무슨 말로 위로할 것인가?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다”는 말로 위로하라고 한다.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다”고 한다. 부패와 타락에 대한 신의 심판은 비단 유대 나라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 사회라면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여기에 해당 될 것이며, 이런 면에서 이 땅 이 백성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구한말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는 부패와 타락, 그로 말미암은 심판의 흔적이 곳곳에 배여 있다.

일제 강점 하에 지나온 36년의 세월, 해방을 맞기가 무섭게 남북분단과 동족상잔의 6·25 전쟁, 4·19 의거, 5·16 군사혁명, 유신정권, 10·26사태와 광주항쟁, 6·29 선언, 문민정부, 국가부도와 IMF 관리 체제…. 숨가쁘게 지내온 지난 한 세기이다.

그동안 우리는 서로의 부패와 타락에 대하여 고발하고 고소하는 데 익숙해졌다. 그러나 2,600여 년 전의 선지자의 글이 오늘날에도 읽혀지는 이유는 그 내용이 심판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부패와 타락으로 인한 심판을 선언 받았음에도, 심판으로 끝나지 않고 그 백성에 대해 위로가 선언되는 점에서 이 예언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리라. 어떤 위로인가? “그만하면 되었다” “맞을 만큼 맞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새롭게 시작하자!” “저기 저곳에 안식과 평안이 있다.

저곳으로 나아가자!”는 소망의 말이다. 뿐만 아니라, “부족하긴 하지만 그만 하면 잘하고 있다”는 격려의 말도 있다. 우리네 현실은 여전히 부패와 타락의 모습을 도처에서 보게 되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고발하고 고소하는 소리가 아니라, 위로하고 격려하는 소리를 듣고 싶다.

“그만하면 되었다” “새로 시작해 보자” “그래도 잘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선지자는 고발과 고소와 정죄의 시대에 위로와 격려와 소망을 전하는 자를 가리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라고 불렀다.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는 “높은 산에 올라야” 하며, “힘써 소리를 높여야” 하며, “두려워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 시대는 이 백성을 위로하는 말을 기다린다.

부패와 타락의 모습을 고발하고 고소하는 데 그치지 말고, 자신의 부패와 타락 때문에 매 맞아 상한 상처를 보듬어주면서 “이제 곧 낫게 될 것이다. 힘을 얻는 대로 다시 시작해 보자”라고 말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다른 통찰이 필요할 것이며, 힘써 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며, 두려워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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