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백년전쟁’ 방송 판결, 무엇이 문제였나? 대법원 판결의 다수의견 비판
[이슈분석] ‘백년전쟁’ 방송 판결, 무엇이 문제였나? 대법원 판결의 다수의견 비판
  • 이인철 미래한국 편집위원·변호사
  • 승인 2019.12.13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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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룬 ‘백년전쟁’ 방송이 방송심의 규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은 방송 프로그램의 공정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재판의 쟁점은 백년전쟁 방송 내용이 방송심의 규정상의 객관성과 공정성 ·균형성 유지 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와 사자(死者)명예 존중 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이다. 대법관 7인의 다수의견은 방송의 특성을 고려한 완화된 심사기준 법리를 제시하면서 객관성과 공정성·균형성 유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고 표현의 자유의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사자 명예 존중 의무 위반이 아니라고 한다.

대법관 6인의 소수의견은 완화된 심사기준 법리를 반박하면서 현행의 심의 기준에 의해 살펴보면 방송 내용이 객관성과 공정성 ·균형성을 상실했고 선별된 자료를 사용해 사자를 비하하고 모욕과 조롱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으므로 방송법상 제재가 적법하다고 한다. 각 의견에 대한 보충의견들이 있으며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1인의 방송심의 제도의 위헌적 요소를 지적하는 보충의견이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백년전쟁’포스터
민족문제연구소의‘ 백년전쟁’포스터

방송 공정성, 그리고 방송심의제도의 위헌론

방송의 공정성과 객관성 및 균형성 등을 훼손했는지 여부의 쟁점은 방송의 공정성 개념을 어떻게 볼 것이며 방송심의에 있어 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방송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방송 내용이지만 방송심의제도에 의한 제재는 방송사업자에게 부과된다. 방송 내용에 대한 심의의 결과로 매체를 규제하는 것은 방송 내용에 대한 규제로 볼 수 있고 사후적 심의는 사전검열의 효과가 있어 표현의 자유 및 방송의 자유의 침해라는 지적이 있다. 한편으로 공정성 개념의 불명확성과 공익 개념의 합의 도달이 어려운 사정 때문에 공정성 여부를 가린다는 것은 어렵고, 정치적 주장이 세분화되고 정파적으로 분열된 사회에서 공정성 논의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방송심의 제도가 가진 위헌적 요소를 지적하는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은 위와 같은 문제점을 제시하는 데 의미가 있지만 이는 헌법적 절차를 통하거나 입법에 의해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방송심의 제도의 위헌적 요소를 지적하는 견해는 완화된 심사기준의 입장을 보충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서 합헌적 해석론을 제기하기 위한 논거로 보이지만, 완화된 심사기준이라는 논거는 아래에서 살펴보는 바와 같이 방송심의 제도를 해체하는 결과에 이르는 위헌론의 제기에 다름이 아니다. 이 사안에서 공정성 및 객관성과 균형성 여부는 소수의견과 같이 위헌론이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거론이 없이도 현행 법률에 의한 해석론 하에서 충분히 접근할 수 있다.
 

완화된 심사기준이라는 논거

이 사건에서 견해가 갈리는 주요 무대는 다수의견이 해석의 논거로서 제시한 완화된 심사기준이다. 소수의견이 반박하고 있는 바와 같이 완화된 심사기준이라는 논거의 원천은 다수의견의 보충의견에서 제시된 위헌론인데 이에 근거해 합헌적 해석의 일환으로서 완화된 심사기준이 제시되고 있다.

다수의견이 논거로 삼은 완화된 심사기준은 방송심의에 있어 매체별 및 채널별 특성에 따라 사회적 영향력이 낮은 매체나 채널을 통한 프로그램의 경우와 시청자 제작 방송프로그램과 같이 진실성과 신뢰성에 대한 기대의 정도가 낮은 프로그램의 경우 및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의 교양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심사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콘텐츠는 제작 의도나 형식 또는 최초의 송출 경로와 관계없이 다양한 경로에 의해 공중에 전파된다. 콘텐츠는 하나의 매체나 채널을 통해 유통되는 것을 의도해 제작되지 않는다. 백년전쟁 방송은 최초의 채널이 아니라 유튜브를 통해 널리 전파되어 전국적인 영향력을 행사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시청자들은 장르의 구분이 사라진 콘텐츠에 익숙하다. 개인이 만든 고품질의 방송프로그램이 기성 방송과 다를 바 없이 동일한 경쟁력을 갖고 유통된다. 시청자 제작이라는 형태를 취하거나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취한다고 해서 영향력의 측면에서 달리 봐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방송의 영향력은 송출매체와 제작형태 및 장르형식과 관계 지을 필요가 없이 방송 콘텐츠에 의해 나타난다. 완화된 심사기준의 논리는 방송의 최초의 제작 및 송출 경로 만에 집착하고 제작형태와 방송장르라는 방송형식을 근거로 삼아 방송의 사회적 영향력을 자의적으로 평가할 우려가 있어 방송심의 제도를 해체할 위험이 있다. 다수의견은 실질적으로 위헌적 해석을 전개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콘텐츠 범람의 시대에 대안적 제도가 성립되지 아니한 상황에서 방송법이 예정하는 방송 규제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방송심의 제도를 무력화하는 결과가 되어서는 아니된다.

완화된 심사기준이라는 논거는 매체별, 채널별, 프로그램별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법률문언을 근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실정 법규의 문언도 방송의 변화된 현실 앞에서 방송규제의 입법 취지에 맞는 합목적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법문언을 내세우는 것은 문언에 매인 형식론적 해석을 자처하는 것이다. 심의 기준으로 방송의 내용 평가에 대한 세부적인 기준이 있음에도 방송의 외적인 형식에 의해 완화론을 제기하는 것은 해석의 혼란을 야기하게 되며 내용에 대한 평가를 그르치게 한다.

소수의견이 완화된 심사기준의 실체가 없다고 지적한 이유다. 다수의견은 방송 내용을 통한 사회에서의 영향력을 제대로 살피지 아니한 것으로 보인다. 사법작용은 과제로 주어진 사건의 구체적 개별적인 해결을 위한 국가작용이다. 완화된 심사기준이라는 논거는 형식적 기준에 의해 심의를 곤란하게 해서 방송심의 제도의 근거를 상실하게 하는 결과에 이를 위험이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11월 21일‘ 백년전쟁’에 대해 방송 심의 규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11월 21일‘ 백년전쟁’에 대해 방송 심의 규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논쟁과 재평가의 필요라는 논거

사자의 명예 존중이라는 심의 기준과 관련해 다수의견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명예 보호와 표현의 자유간의 이익형량을 하였다는 점은 보이지 아니한다. 논쟁과 재평가를 위한 평론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주장을 거론하는 것만으로 보인다, 완화된 심사기준이라는 논거에 이어 다수의견은 표현의 자유라는 원칙만을 거론하는 식으로 형식의 방패를 앞세우고 있다.

다수의견의 논지는 공적인 인물에 대한 주류적인 평가에 대해 논쟁의 허용 및 재평가의 필요성이 있으므로 그러한 목적과 동기에서의 방송물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서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수의견의 논지는 사자에 대한 모욕과 조롱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방송물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에 포섭될 수 없고 나아가 방송에 대한 심의의 목적이 갈등과 분열을 넘어 화해와 통합을 위한 방송의 책무를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므로 공익의 관점에서 제재처분이 적법하다는 것이다.

공익이라는 요구는 국가공동체 안에서의 합의된 공공선을 요청하는 것인데 방송 내용이 공익과 공공성에 근거한 것인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으므로 이에 대한 분명한 답변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다수의견은 표현의 자유라는 원칙만을 제시하면서 시청자의 몫으로라는 표현을 통해 법원이 답변해야 할 공공의 이익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자의 명예 존중 의무 위반의 쟁점과 관련해 다수의견의 형식적인 접근과 소수의견의 기존 법규정에 따른 내용적인 접근의 차이가 잘 드러나고 있다. 다수의견은 논쟁과 재평가의 필요에 따른 평론의 필요성에 의해 중립적인 자세를 취한다면서 방송 내용이 사자의 명예존중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에 대한 내용적인 평가를 하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명예훼손 여부를 가리는 사건이 아니고 사자 명예 존중 의무를 부담하는 방송사업자의 의무 위반 여부 사안이다. 논쟁과 재평가의 필요성이라는 논지가 사자 명예 존중 의무 위반 여부를 가리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주류적 평가에 대한 논쟁과 재평가의 목적과 동기가 있다는 제작 의도만으로 방송사업자에게 방송법상의 의무를 요구할 수 없다는 위헌론을 제기하는 것인지 묻지 아니할 수 없다.

다매체 다채널의 현실에서 방송의 영향력은 어떤 매체를 통하거나 어떤 형식을 취했느냐 보다는 어떤 콘텐츠인가의 내용에 달려 있다. 심의 규정에는 구체적인 심의 기준이 명시되어 있으므로 이에 따라 방송 내용을 살펴봐야 한다. 당해 사건의 대상물이 되는 방송 내용에 대해 심의 기준의 적용에 의해 문제의 해결을 해야 하는데, 다수의견은 평론의 필요성이라는 형식적인 원칙 논리를 내세우면서 문제를 피해가고 있다고 보인다.

백년전쟁 방송이 유튜브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듯이 오늘날 거의 모든 영상물이 인터넷을 통해서 소개된다. 제작시부터 콘텐츠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고 매체별로 유통되는 단계마다 콘텐츠 자체에 대한 논의가 인터넷 공간을 가득 채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시대에 콘텐츠 제작자는 동시에 수용자이기도 하고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상에서 상호 영향력을 행사한다. 논쟁적 사안에 있어 네트워크상에서 콘텐츠에 대한 논쟁이 전개되고 상호 의견을 주고받는 상황에서 주류 의견이란 성립되기 어렵고 논쟁과 재평가는 콘텐츠를 둘러싸고 항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다수의견은 콘텐츠를 둘러싼 논쟁적 상황이라는 현실만을 말하면서 평가에 대한 중립적 입장 또는 시청자의 몫이라는 주장으로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고 보인다. 공적인 인물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사회적 영향력을 끼치는 공적인 사안에서 의견의 대립으로 인한 갈등을 해소하고 무엇이 공익에 합당한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면 판결을 통해 사안을 해결해야 하는 법원의 책무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인철 미래한국 편집위원·변호사
이인철 미래한국 편집위원·변호사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이 주어져야 한다

대법원 판결은 오늘의 미디어 상황에서 공정성 논의에 대해 쟁점이 되는 주장과 접근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각인의 주장이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대립되는 과정에서 심의 기준이 정하는 방송의 의무 위반 여부가 문제가 된 사안에서 법원은 당해 사건의 내용에 집중해 문제에 대한 답변을 주어야 하며 형식으로 도피해서는 아니된다.

다수의견이 말하는 완화된 심사 기준이라는 것은 미디어의 형식과 프로그램의 형태 및 장르 형식만에 의해 현실적 영향력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게 되는 형식론에 불과하다. 다수의견의 논지가 현재의 주류의견으로 되었는데 앞으로의 논쟁과 재평가에 의해 이 사안의 결론이 다시 바뀌는 것이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다수의견의 논지가 형식으로의 도피이며 이 사안에 대해 다수의견은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이 판결에서 제기된 논의의 근원에 사회적 화두인 공정성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다. 다수의견은 판결에 의해 이 시대 주류의 의견임을 보여주는데, 주류의 입장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에 기대는 것이고, 그 결과 공정의 해결이 아니라 공정의 요구의 확대의 진전을 수수방관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 해결을 회피하고 형식으로 도피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보는 것 같다. 문제는 해결되어야 하고 주어진 질문은 답변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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