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가 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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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02.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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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참여 마을축제 정착시키자"
“주민참여 마을축제 정착시키자”지방화시대가 시작되기 전 경직되고 무뚝뚝한 직원들 때문에 가기 싫던 장소 중 하나이던 관공서가 1991년 이후 새로운 문화현장으로 모습을 갖추게 됨은 참으로 다행이라 하겠다.우리나라는 90년대 초반만해도 국가정책상 문화에 대한 배려나 지원이 보잘 것 없었다. 지역의 전통문화는 전통문화 전승자의 자연도태 또는 노령화, 이농현상으로 인한 희망자 감소, 지역민의 무관심, 재정적 궁핍으로 그야말로 소멸위기에 놓여 있었다. 일본은 지역마다 독특한 놀이문화가 있어 이를 춤과 노래로 승화시킨다. 나름대로 명칭을 붙이고 남녀노소 모두 거리로 나와 마을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심지어 이민을 간 사람들도 이국땅에서 Japanese Tour를 통해 한 장소에 모인다. 평소에 입고 있던 복장 그대로 나와 자기 나라 문화를 알린다.일본을 보면서 우리 문화의 저변을 확대시키지 못한 우리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나라는 상고시대부터 마을춤이 형성되어 있었다. 남녀노소 더불어 하나 되는 대동성(?同怯)을 띤 마을춤은 춤만이 아닌 각종 놀이와 노래, 연극 등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원시 종합예술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고 이러한 통합예술의 전통은 신라, 고려의 가무백희로 이어졌다.사회가 급속히 근대화·도시화되면서 마을춤은 점점 위축되었는데 이에 한 몫을 한 것이 70년대의 새마을운동이다. 가난추방을 제1과업으로 한 조국근대화 작업은 자조·자립·협동을 근본정신으로 신속한 공업화를 추진했다. 그 결과 물질적인 풍요는 향유하게 되었으나 우리의 정신은 극도로 황폐화되어 도처에서 그 부작용이 생겨났다. 일제 치하 36년간의 식민지 생활, 6·25전쟁으로 인한 폐허, 산업화·공업화로 인해 우리자신을 추스르기도 전에 여과 없이 들어온 외래문화를 수용하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오랜 세월 삶의 터전에 뿌리내려 민족의 동질성과 결속력을 다져왔던 우리의 마을춤은 낡은 것,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사라져갔다.이러한 긴박한 민족문화 소멸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뜻이 모아진 조직체가 각 지역의 문화원이며, 국가적 차원의 보호정책의 일환으로 매년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를 개최, 무형의 문화재를 정하여 겨우 보호하고 있는 처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하루 속히 각 지역 동별로 일년에 몇 번씩이라도 특별한 날을 정하여 전체 동민들이 스스로 참여하는 축제를 정착시켜야겠다. 이렇게 함으로써 마을춤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가 되어 웃음가득한 마을, 행복 가득한 마을을 이룰 뿐 아니라 우리의 고유한 문화를 계승하고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될 것이다.송수남 (사)한국미래춤학회장단국대 무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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