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잊혀진 인권, ‘북송 재일교포 사업’
[심층분석] 잊혀진 인권, ‘북송 재일교포 사업’
  • 김석향 이화여대 대학원 북한학과 교수·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원장
  • 승인 2019.12.30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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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북송선. 1964년 3월 니가타 항에서 북송선에 오른 재일조선인들.
눈물의 북송선. 1964년 3월 니가타 항에서 북송선에 오른 재일조선인들.

2019년 12월 14일은 재일동포 북송사업이 공식적으로 시작한 뒤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60년 전 니가타항에서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재일동포 975명을 태운 1차 북송선이 북한 청진항으로 출항했던 것이다. 그 뒤 1984년 187항차 북송선이 마지막으로 니가타 항을 출항해 청진항으로 떠날 때까지 25년 동안 일본에서 거주하던 재일동포 집단을 북한으로 이주시키는 일이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당시 9만 3334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원이 각자 어떤 이유로 일본에서 북한으로 이주할 것을 결정했는가 하는 점은 여전히 논란에 싸여 있다. 재일동포 북송사업의 구체적인 실상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문서 중에서는 아직도 그 존재만 알려졌을 뿐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아 이 사건을 둘러싼 연구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고 하겠다.

무엇보다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재일동포 중에서 9만 3334명에 이르는 사람이 과연 자발적으로 북한으로 이주하겠다고 결정을 했는지, 외면상 자발적 결정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북한 당국과 재일조선인총연맹(조총련) 일꾼의 현란한 선전과 속임수에 ‘속아’ 일본을 떠났는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위협과 강요로 어쩔 수 없이 북송선에 올랐는지, 그 구체적인 실상은 누구도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이제는 북송 재일교포 인권에 대해 말해야 할 때

60년 전 일본에 거주하던 재일교포 중에서 일부 인원이 그동안 살던 거주지를 떠나 북한으로 이주할 것을 결정했다는 이유로 오늘날까지 다양한 유형의 인권 침해를 감내하면서 그 땅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그 자녀와 손자녀로 이어지는 후손도 북한에서 북송 재일동포라는 성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신산한 삶의 시간을 버텨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런가 하면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과 친지를 북송선에 타도록 강요했거나 권유했던 인물은 물론이고 그저 방관했던 사람들 역시 오랫동안 그들을 사지로 내몰고 자신만 일본에 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끊임없이 돈과 물건을 보내는 세월을 지냈다. 이들의 관계는 이제 피폐함을 넘어 모두 지쳐가는 결과를 낳아 간혹 북송 재일동포가 탈북한 뒤 일본에서 돈과 물건을 보내주던 친척을 찾아가도 미처 반가움을 느끼기 이전에 먼저 지나간 세월의 억울함 때문에 서로 상대방을 향해 원망을 쏟아내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인권 침해 측면에서 볼 때 재일동포 북송사업은 누구보다 북한으로 이주해 간 사람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줬다는 것은 명확하다. 그렇지만 피해자는 북송선을 탄 재일교포 1세와 1.5세에 국한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반드시 기억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도 여전히 북송 재일동포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북한 당국에 의해 제도적 차별을 당하는 사람이 새롭게 나타나는가 하면 일본에 남은 이들의 친지와 가족도 일생 동안 죄책감과 물질적 부담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인권 차원에서 앞으로 이 문제의 심각성은 한층 더 심각하게 다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송 재일동포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이들의 인권 현황을 분석하면서 앞으로 어떤 정책을 수립하여 추진해 나갈 것인지 제언하는 연구 활동은 아직 충분히 축적해 놓은 상태라고 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진행해야 할 연구의 방향을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송 재일교포 생애 전반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북송 재일교포 관련 선행연구 대부분이 북송사업이 진행되기 전과 북송사업 진행 과정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이 연구 역시 북송 재일교포가 북한이라는 지역 내에서 어떤 유형의 인권 침해를 당했는지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북송 재일교포의 인권 침해 상황을 면밀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이 분절된 형태의 연구보다 생애 전반에 걸친 인권 침해 양상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북송선 탑승 이전 일본에서 거주하던 시절부터 북한 내 생애 과정, 탈북 과정 및 그 이후 한국이나 일본 정착 이후 3단계에 걸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송 재일동포 중에서 탈북한 사람을 대상으로 면담을 진행해 보면 자신의 삶을 표현할 때 ‘분절’, ‘세 토막’, ‘뿌리 없는 삶’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런 용어는 일본-북한-한국(일본)으로 이어지는 삶의 과정에서 이방인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표현이다.

북송 재일교포가 재북 당시 경험했던 인권 침해 원인은 대부분 이들이 외부에서 들어온 이방인이었다는 것에 있었다. 이 과정을 전반적으로 분석하지 않은 채 북송 재일교포를 향해 “가지 말았어야 했다” 하는 주장만 되풀이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라 하겠다.

북송 재일교포 인권 침해의 가장 핵심 문제는 이들이 돌아갈 곳이 있어도 보내지 않았던 북한 당국과 돌아올 기회를 허용하지 않았던 일본 정부, 1959년 당시 이들을 북한으로 보냈던 북한 적십자사와 일본 적십자사, 이들을 연결했던 국제적십자사에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북송 재일동포의 생애 전반을 관찰하면서 북한당국-일본 정부-국제적십자사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북송동포를 즉각 귀환시키라’면서 조총련 앞에서기자회견한 재일 탈북자 가와사키 에이코 씨(좌)
‘북송동포를 즉각 귀환시키라’면서 조총련 앞에서기자회견한 재일 탈북자 가와사키 에이코 씨(좌)

북한에 북송교포와 가족간 연락제도 촉구해야

둘째, 북송 재일교포 인권 침해 문제는 당사자와 그 후속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에 남아 있던 가족의 생활까지 포함해 이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는 것도 필요하다. 북송 재일교포가 북한에 사는 동안 북한 당국 차원의 제도적 인권 침해를 경험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이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일본에 남아 있는 가족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가족을 북한으로 보냈다는 죄책감과 경제적 부담이라는 이중고를 경험했다.

북송사업이 단지 북송 재일교포 당사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가 아니라 그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문제인데 이들의 생활을 분석하는 연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송 재일교포 인권 침해 문제를 지적하는 데 있어 일본에 남아 있던 가족의 인권 문제를 포괄하는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셋째, 북송 재일교포 중 일본 국적의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이들의 경험은 어떻게 다른지 논의하는 심층적인 파악이 필요하다. 면담 대상자 중 조선 국적이 아닌 일본 국적을 가진 상황에서 북한으로 건너간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국적만 일본인 것이 아니라 혈연적으로도 일본인이었다. 구체적인 사례로 조선인과 결혼한 일본인 부인 및 일본인 남편, 일본인 어머니가 조선 사람과 재혼하면서 전 남편인 일본인과 낳은 자녀도 북송된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일반적인 북송 재일교포와 또 다른 형태의 인권 침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송 재일교포에게 가해지는 북한 당국 차원의 인권 침해와 함께 일본과 다른 문화적 관습과 언어 장벽 때문에 직장 생활 영역에 진출하기도 어려웠다. 또한 ‘일본이라는 조국을 버리고 간 배신자’ 낙인으로 인해 일본에 남은 가족과 일본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었다. 일본인 납치 문제와 함께 이 문제에 대한 세밀한 파악을 통해 일본 정부와 공동으로 이들의 인권 문제 해결에 대처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될 것을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북송 재일교포 인권 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북한 당국을 상대로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한편 북한 내에서 경험한 인권 침해 양상에 대해 세밀하게 파악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북송 재일교포가 재북 당시 경험한 인권 침해 양상은 북한 당국의 견고한 성분제도를 바탕으로 발생한 차별적 대우와 함께 이방인에 대한 경계로 인해 이들은 일반적인 북한 주민보다 훨씬 심하게 경험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은 북한 당국의 인권의식 향상과 관련 제도 개선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이고 북한 당국의 인권 기준과 국제 인권 기준이 상충하는 등 현실적인 제약도 상당하다. 전반적인 제도와 구조 개선에 앞서 북송 재일교포의 경우 한때 뿌리를 두고 살았거나 가족이 남아 있는 지역과 자유로운 서신 교환 및 왕래를 시급하게 허용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먼저 북송사업을 시작할 때 북한 당국이 주장한 것처럼 ‘원하는 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의지를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존중해야 한다는 논리를 접목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김석향 이화여대 대학원 북한학과 교수·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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