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뷰 - 미래한국 공동기획] 새로운 세대, 2030 청년 이해하기
[월드뷰 - 미래한국 공동기획] 새로운 세대, 2030 청년 이해하기
  • 황동한 함께하는교회 담임목사
  • 승인 2020.01.02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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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나는 도대체 요즘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네.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지? 자기들 생각이 다 맞는 줄 알아.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들 같아…”

60대 이상의 어른들이 20-30대 청년들을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은 ‘괴리감’이다. 같은 나라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지만 전혀 다른 생각과 가치관으로 살아가기에, 60대 이상의 어른들이 자신들만의 시선으로 20-30대 청년들을 바라본다면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온 외계인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20-30대 청년들도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들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그들에게 영향을 끼친 무언가가 있었기에 지금의 그들이 된 것이다. 무턱대고 “청년들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야”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저들은 왜 저런 생각들을 할까? 청년들은 어떻게 해서 저런 가치관과 세계관들을 가지게 된 것일까?”라는 이해의 출발점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2019년을 살아가는 20-30대 청년들의 정신과 가치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그 뿌리를 알기 위해서는 세계의 역사 중에서 르네상스 이전인 서양의 중세시대라고 불리는 전근대사회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청년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  ‘이성과 경험’

기독교인이라면, 혹은 세계사에 조금이나마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중세 시대를 지배하던 사상이 무엇인지는 잘 알 것이다. 바로 ‘신학’이다. 중세는 교회가 권력으로 세상을 장악하던 시대였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인식되던 시기였다. 중세시대 사람들의 판단 기준은 교회 혹은 종교였으며 삶을 살아가는 것 또한 기독교적 범주 내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르네상스를 계기로 중세시대는 사라지고 근대사회로 넘어오며 사람들의 가치 판단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중세시대에 기준이 되었던 신앙은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졌고, 눈에 보이며 직접 부딪히면서 습득하는 경험적 가치와 판단의 세계인 이성만이 믿을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즉, 경험과 이성이 사람들의 판단 기준이 된 것이다.

물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근대사회도 세계 1,2차 전쟁으로 마감이 되고 새로운 사회가 도래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경험과 이성이 가치의 기준이라는 근대적 사고방식은 여전히 존재하며 시대는 바뀌었지만 그 정신은 이어져 가고 있다.

이성이 중심이 되는 사상은 합리주의와 과학적 사고를 낳고, 합리성과 과학성이 없는, 즉 이성과 논리에 맞게 설명할 수 없는 사실들에 대해서는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배려의 차원에서 다원주의가 생겼다. 예를 들면 종교·구원의 문제는 이성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 “종교는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없으니 너의 종교를 존중할게. 나의 종교도 존중해줘”라는 다원주의적 관점의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

그렇다면 한 세대가 가지는 공통적인 특징은 그 세대가 살고 있는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만들어졌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상황은 세계적인 흐름과 다르다. 물질 이후에 탈 물질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 범위가 너무 작게 나타난 것이다. 즉, 물질을 벗어나 가치로서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탈 물질이 교묘하게 혼합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경제 성장 이후 곧바로 IMF 외환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아직 물질에 잡혀 있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회 현상을 함께 경험한 세대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관계, 공동체, 소속감, 성취감 등의 대안 교육이다. 탈 물질문화를 이끌어내 가치 있는 담론을 형성하는 것이 바로 이 세대에게 필요한 부분이다.

칼 만하임의 세대 이론과 세계 역사적 의식의 흐름을 바탕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20-30대 청년들을 보면, 이들은 철저히 근대 이후의 사고 방식인 ‘이성과 경험’ 아래에서 교육받은 세대들이다.

특히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대한민국이 산업화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넘어가는 시대에 태어나 자랐기에 이들의 부모 세대와는 또 달리 이성과 경험이 더 확고해졌고 여기에 물질주의까지 더해지면서 “오로지 이성적인 판단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물질적인 번영을 주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는 생각이 기준으로 심어진 세대라고 볼 수 있다. 이성, 경험, 물질 등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기에 이 가치와 상충하는 공동체, 정신, 사랑 등은 비교적 덜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세대가 바로 오늘날 20-30대 청년들이다.

청년들의 감정을 지배하는 것  ‘불안과 단절’

로널드 잉글하트(Ronald F. Inglehart, 1934~)는 1970년대 <근대화와 탈 근대화>라는 그의 저서에서 ‘결핍 가설’과 ‘사회화 가설’을 발표했다. ‘결핍 가설’이란 개인의 결핍 혹은 공급 부족 상태에 있는 대상에 1차적인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으로 이는 개인의 가치 선호가 사회 경제적 환경의 반영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또한 ‘사회화 가설’은 개인의 가치가 대체로 성인기 이전에 형성되고 지속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회 경제적 환경과 가치 선호 사이에는 그에 상응하는 시간적 지체 현상이 수반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후기 청소년 혹은 청년들 시기에 경제적, 신체적 안전을 경험했는지 여부가 성인이 된 이후의 가치관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견해이다.

우리나라로 예를 들면 경제적으로 어렵고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던 전쟁 경험 이전의 세대들은 생존에 대한 가치 혹은 물질주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기본적인 생존에 대한 욕구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전쟁 경험 이후의 세대들은 삶의 질, 탈 물질 등의 가치를 선호한다는 의미다. 이를 통해 현재 새로운 세대들이 ‘삶의 질’과 같은 가치를 추구할 때 나타나는 현실적인 갈등의 감정들을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이론을 바탕으로 20-30대 청년들의 감정을 지배하는 것은 무엇일까? 현재 20-30대 청년들은 주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태어났다. 지금의 청년들이 자란 시대에 우리나라는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겪는 두 사건을 만난다. 바로 ‘IMF 외환 위기’와 ‘모바일의 등장’이다.

20-30대 청년들의 부모 세대인 386세대들은 우리나라가 산업화를 한창 이룩할 때 사회생활을 했다. 부모 세대는 열심히만 하면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현실화될 수 있었던 시대가 바로 이때였다. 하지만 바로 다음 세대인 70년대생과 80년대 초반 생들의 생활을 달라졌다.

대학생 혹은 사회 초년생일 때 IMF를 경험한 70-80년대생들은 열심히 해도 더 이상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사회 구조는 점점 변하고 더 이상 회사는 자신들의 평생 안정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된 세대가 바로 이들이다. 열심히 회사에 충성했건만 되돌아오는 것은 ‘정리해고’ 와 ‘명예퇴직’이었다. 치열한 70-80년대 생들의 삶을 바로 옆에서 보고 자란 세대가, 바로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에 태어난 지금 20-30대 청년들이다.

이들은 회사가 개인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자랐다. 자신들을 보호해줄 것은 기업도 나라도 아닌 오직 자기 자신뿐이라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배운 세대가 바로 이들이다. 이런 불안정하고 불안한 감정은 결국 표면적으로 정년을 보장해주고 안정적인 환경처럼 보이는 ‘공무원’으로 표출되고, 이로 인해 20-30대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에 열을 올리는 것은 바로 불안한 감정 때문이라는 것을 대변하고 있다.

또한 모바일의 등장은 청년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이들은 청소년 시기부터 인터넷 환경에 노출되어 자란 세대다.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를 통해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 누군가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페이스북을 통해 타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20-30대 청년들에게 모바일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으며 어딘가로부터 연결되지 않는 인생은 불안해서 견딜 수 없을 정도이다.

정신적으로는 이성과 판단이 작용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불안과 단절이 있는 오늘날 20-30대 청년들은 급변하는 시대에 소용돌이 속에 자라나 복잡한 환경 속에 커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품고 이해하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되고 특히 교회는 다음 세대라 불리는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황동한 함께하는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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