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낭만적 민족주의에 드리운 전체주의 망령
[논단] 낭만적 민족주의에 드리운 전체주의 망령
  • 권순철 한국문화안보연구원 사무총장
  • 승인 2020.01.0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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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라는 나치 히틀러의 낭만적 민족주의는 결국 개인을 말살시키는 전체주의가 되었다.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라는 나치 히틀러의 낭만적 민족주의는 결국 개인을 말살시키는 전체주의가 되었다.

낭만적 민족주의는 20세기 인류 최대의 비극을 낳았던 파시즘과 민족주의와의 결합이라는 뼈아픈 역사를 남겼다. 전체주의나 군국주의에서 민족(nation)의 존재는 아리안족에 대한 히틀러 나치즘의 민족적 집착에서나 서구민족주의에 대한 피해 의식에서 출발한 일본의 자기 민족에 대한 군국주의적 쇼비니즘에서 그 상징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의욕을 가짐으로써 존재한다는 의지론을 펼친 낭만주의자 피히테(Fichte)의 ‘독일국민에게 고함’을 통해 독일 국민들의 의지를 결집시키면서 낭만적 민족관념으로 발달하게 된다. 낭만적 민족주의가 감상적 ‘민족정신(volksgeist)’에 대한 호소를 통해 유기체적인 집단정신의 큰 줄기로 이용되었다.

그것은 나치즘 등에 오도되어 비합리적인 반개혁, 보수 반동화 되어버린 낭만적 위험성을 그대로 노정시켰던 것이다. 극단적인 민족지상주의가 민족 우월성을 바탕으로 타민족을 학살하고 문화적 탄압을 자행한 커다란 역사적 오점들을 남겼다.

그것은 낭만적 민족주의가 가진 유기체적 집단성에 있다. 낭만적 민족주의의 집단성은 동원적 혹은 국가적 민족주의로 나타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된다. 원자(Atom)적 존재인 인간 개인의 자유와 주권적 독자성은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집합적 주체인 민족적 대중(national popular)의 집단의지에 복속되어 버린다.

낭만적 민족주의의 유기체적 집단성은 개인의 자유의지와 평등 이념을 간과하면서 민중적 이데올로기로 갈등의 전면에 나타나 쉽게 전체주의로 변전되어 자유주의적 가치를 제한하게 된다.

독일과 일본에 오용되었던 낭만적 민족주의가 선민의식으로 연결되면서 타민족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으로 이어진 것은 보편적 이성에 의해 인도되지 않은 편협한 민족주의가 어떤 참혹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것이다.

종족적 과잉 민족주의나 낭만적 민족주의는 결국 전체주의로 이어지면서 다른 민족과의 공존을 파괴하고 인류 보편적 가치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universal value)는 인간의 존엄(인권), 자유, 평등, 민주주의, 인권존중 등 인류가 공통으로 가진 일정한 규범과 가치를 말하지만 여기에는 다양성을 전제로 한 다원주의의 입장이 포함된다.

다양성을 전제로 한 다원주의가 파괴되면 전체주의화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인간을 하나의 통합된 유기체로 만드는 것이다. 그 속에 개인의 존재는 집단 전체를 위한 하나의 부속품에 불과하게 되고 집단 우두머리에 의해 통제되면서 체제에서 어긋난 개인이란 존재할 수 없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허용되지 않는 전체주의에 변용되고 마는 낭만적 민족주의의 극단적 폐해를 보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도 북한의 통일전략전술인‘ 우리민족끼리’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도 북한의 통일전략전술인‘ 우리민족끼리’와 연결되어 있다.

북한의 민족은 김일성 추종세력 의미

이러한 낭만적 민족주의는 해방과 건국 이후 오늘날 한국정치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것은 한국사회의 내부적 맥락에 그치지 않고 ‘민족해방’을 내세운 북한과 연결되고 있다는 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민족끼리’, ‘우리는 하나다’라는 북한의 주체 민족주의에 따른 구호가 한국사회에 너무나 쉽게 먹혀들고 있다. 낭만적 민족주의(Romantic nationalism) 즉, 우리민족끼리, 민족공조 이념에 너무나 경도되어 있다.

민주화와 더불어 대한민국에는 최소한 민족의 정치적 생존방식이 시민적 자유와 대의민주주의가 기본이 되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민족’이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으면서 ‘민족을 전제로 한다면 어떠한 통일도 용납될 수 있다’라는 민족 이데올로기적 환상에 빠질 수 있는 위험한 생각이 생겼다. 낭만적 민족 관념이 내재되면서 공산주의적 전체주의에 대한 위험성이 무장해제된 것이다. 북한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자유민주주의 체제전복의 위협 중 한 부분은 민족주의에 대한 감상적인 우리의 관념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민족공조를 넘어 ‘남과 북은 함께 살아가야 할 생명공동체’라고 했다. 낭만적 민족관념에 매몰되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아무리 쏘아 올려도 북에 식량과 시멘트를 갖다 줘야 한다, 북한 전체주의체제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 세습왕조는 170만여 명의 동족을 살상한 6·25 남침전쟁 이후 두 번이나 대한민국 대통령 암살을 기도했고, 대통령 국빈방문 사절단에 대한 미얀마 아웅산 폭탄테러,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 동해 잠수정 침투사건,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무려 3300 여회의 남침과 도발을 해왔다.

급기야는 2005년 핵무기 보유선언을 한 후 2017년 9월 풍계리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을 통해 핵무력 완성을 공언했다. 북한의 무수한 일방적 도발에도 우리민족끼리인가? 이성을 찾고 냉철히 돌아보자. 그들을 같은 민족이라고 할 수 있는가? 체제 유지를 위해 궁여지책으로 만들어 변용해오던 북한 민족주의의 가면을 벗겨야 한다. 우리민족끼리라는 거짓과 기만에 휘둘려선 결코 안 된다.

우리에게 민족이란 말이 원래 없었다. 구한말 1900년대 초에 일본으로부터 들어왔다. 민족은 불어 ‘nation’, 독일어 ‘volk’ 의 번역어이다. 국민, 민족, 국가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민족(nation)은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과 동의를 전제로 한 공동체로서 ‘국민주권’ 개념이 반영된 공동체이다.

민족은 종족이나 혈통이 같다는 종족 개념을 뛰어넘어 정치적 이념인 시민이라는 보편적 개념을 함의하고 있는 것이다. “민족의 존재는 매일 매일의 국민투표다”라는 정치사상가 르낭(Ernest Renan)의 말처럼 주권을 가진 국민이 곧 민족(nation)이다. 근대 국민국가 형성의 주체로서 민족은 바로 주권을 가진 국민을 의미한다. 루소(J. J. Rousseau)의 민족 개념은 프랑스 시민혁명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고 그 핵심 개념이 자유와 평등 이념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민주주의와 함께 하는 것이다.

북한이 얘기하는 민족에는 주권적 개인이 없다. 북한의 민족은 우리가 얘기하는 민족과는 다르다. 북한 김일성은 1957년 ‘민족보다는 계급이 우선이다’라고 민족을 거부했었다. 프롤레타리아 노동자 계급이 민족보다 우선한다고 한 것이다. 마르크스도 “민족주의는 자본주의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라고 했다. 공산권에서는 민족주의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했고 연구 자체를 하지 않았다.

북한은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 체제 몰락 과정에서 소련과 중국 및 동구 공산권 몰락의 변화 바람을 차단함으로써 체제 유지를 위해 부득이 주체민족관을 바탕으로 민족주의를 공식화 하게 된다.

1991년 김일성은 “나는 민족주의자인 동시에 공산주의자다”라고 말을 바꾼다. 이는 이미 북한 스스로 한국과는 ‘같은 민족이 아니다’라는 것을 먼저 선언하고 나선 것과 같다. 북한이 공식적으로 한국과 다른 민족임을 밝힌 것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민족’이란 ‘김일성 사상을 추종하는 세력’을 말하며, 이를 거부하는 한반도내 민족은 또 다른 의미에서 ‘혁명으로 제거되어야 할 대상’임을 말한다. 이런 북한이 우리민족끼리라는 거짓과 위선의 레토릭으로 우리를 현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김일성 민족은 아니지 않는가. 북한의 민족과 우리의 민족 개념은 전혀 다르다.

그래도 민족공조를 넘어 ‘남과 북은 함께 살아가야 할 생명공동체’라고 얘기할 수 있는가? 북한이 체제 유지를 위해 영활하게 민족주의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 30여 년이다. 2000년 6·15정상선언문에 김정일은 김대중 대통령과 ‘우리민족끼리’를 합의했다. 6·15 남북정상회담의 민족 우선주의는 국가성을 적잖이 훼손했다. 위협의 실체인 주적(主敵) 개념이 없어지고 연평해전 등에서 정부의 무책임한 처사, 9·19군사합의, 국가보안법과 정보, 공안기관의 무력화 등은 민족성을 우선시 하며 국가성을 많이 손상시켰다.

그런데 북한은 2010년 9월 3차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우리민족끼리’가 공산화통일을 위한 통일전선전략의 일환임을 만천하에 선언한다. 외세간섭을 배제하고 같은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자고 하는 것이 주한미군 철수를 통한 한반도 전체주의화를 위한 전략임을 공포한 것이다.
 

우리민족끼리는 통일전선전술 일환

우리는 북한 세습왕조 전체주의 체제의 이질성을 제대로 보지를 못하고 있다. 북한이 통일전선 수단으로 민족을 이용해 온 거짓과 위선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표면적인 주장과 실제로 추구하는 바가 다른 과거 공산주의자들의 전형적인 ‘용어혼란전술’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북한이 전 한반도 공산화 통일을 목표로 한 대남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구사하는 전략전술 중 가장 대표적인 ‘통일전선전술’의 일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단순한 거짓 선전·선동의 문제를 넘어 체제전복을 향한 전략적 구사물 임을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

통일전선전술은 공산주의자들의 투쟁방식 중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전통적인 전술이다. 통일전선전술은 대중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선동의 기술이며 결정적인 혁명의 시기를 조성하기 위한 힘의 축적 기술이며 퇴조기를 벗어나 혁명역량을 육성하기 위한 일시적 타협의 기술이다. 통일전선은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에서 출발했다.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와 손을 잡아 혁명대상과 싸우되 1차 목표를 달성한 후에는 손잡은 부르주아를 타도’하는 것이 전형적인 통일전선의 골간이다.

김일성은 1945년 10월 13일 개최된 ‘조선공산당 이북 5도당 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에서 통일전선전술의 적용을 밝힌다. 전통적 방식의 통일전선전술은 범청학련 남측본부 등처럼 조직이 결성되어 있다. 남한 국민들에게는 북한에 대한 동족의식을 갖게 했고 대북 경계심 약화와 안보의식의 해이를 가져왔다. 여기에다 우리민족끼리는 역사적으로 같은 언어와 혈통, 같은 문화를 가진 동족이라는 감성에 불을 붙였다. 북한이 얘기하는 ‘우리민족의 자주적 권리’, ‘우리민족 자신이 결정할 문제’라고 하는 우리민족끼리에 바탕을 둔 낭만적 민족관념이 가지고 있는 거짓과 기만의 함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민족끼리라는 허위의식에 현혹되어 북한의 통일전선적 민족공조 전략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민주적 시민권이 담보된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을 목표로 시민적 민족주의(civic nationalism)에 대한 명확한 인식의 내면화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평등하게 보장된 체제와 보장되지 않은 체제의 극명한 체제 이질성을 인식해야 한다. 북핵문제도 통일문제도 이 이질적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협상과 통합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민족지상주의’의 신화는 없다. ‘우리민족끼리’, ‘우리는 하나다’라는 민족공조전략의 함정도 용납될 수 없다. 이것은 한반도 공산화를 목표로 하는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적 거짓과 기만의 선전·선동을 넘어서는 길이다.
 

근대 국민국가의 민족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 보장 개념

북한의 우리민족끼리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역이용한 전략적 구사의 결과물이기도하다. 우리민족끼리는 종북세력 확산의 중심 이념으로 ‘반미 자주화 통일 전선’ 확산의 기반이 되었다. 우리민족끼리는 남남 갈등의 심각한 후유증을 우리 사회에 남겼다.

북한이 남북회담 때마다 역설하는 우리민족끼리는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고 모든 문제를 같은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자는 통일전선전술적 이념이며, ‘김일성 민족’과 ‘김일성 민족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통치이념화된 정치이념 구호다. 북한판 민족주의는 주체사상을 기본으로 한 김일성 세습왕조체제를 위해 만들어진 선동구호의 맥을 이어 왔을 뿐이다. 근대국민국가의 민족정체성이 정립되지 않은 히틀러·스탈린식 전체주의체제의 연원인 낭만적 민족주의와 궤를 같이 한다. 이것은 혈통과 언어 등의 객관적 공통성을 강조하는 낭만적 문화민족(kulturnation) 개념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낭만적 민족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심으로 하는 ‘시민적 민족주의’로 발전하지 못했다. 근대국민국가의 민족은 개인의 자유와 ‘주권 재민’ 원리가 보장된 공동체여야 한다. 이제 우리민족끼리라는 종족적 관념의 전근대성에 정체된 낭만적 민족주의의 족쇄를 벗어야 한다.

남한과 북한은 정치 체제가 완전히 다른 지구상에서 가장 이질적인 체제이다. 우리는 북한의 전체주의체제와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 이질적 체제인 북한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 아니다. 북핵문제의 해결도 결국 ‘생명공동체’, ‘우리는 하나다’, ‘우리민족끼리’라는 민족공조 이념의 낭만적 민족관념에서 벗어나야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이제 민족지상주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낭만적 민족주의는 지구상 가장 이질적인 정치체제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다. 남한과 북한은 1991년 남북 동시 유엔 가입을 통해 유사한 근대국가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국가의 운영원리인 정치체제는 완전히 다른 이질적인 체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이고, 북한은 전체주의 체제이다. 북한 헌법 제63조에 나오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조항은 개인을 유기체의 하나로 보는 것이다.

전체주의적 ‘집단적 개체’ 의식을 심어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고 수령 중심의 전체주의체제를 정당화시켜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완전히 이질적인 체제의 모습이 ‘같은 민족끼리’라는 낭만적 민족관념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정치철학자 푀겔린(Eric Voegelin)이 얘기한 ‘현실의 일식현상(日蝕現狀)’을 극복하여 낭만적 민족지상주의의 비이성적인 현상을 똑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루소(J. J. Rousseau)가 역설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된 주권적 시민의 눈으로 우리민족끼리라는 낭만적 민족관념의 가면을 벗겨 더 이상 김일성 왕조 전체주의체제의 민족공조 전략의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피땀 흘려 일궈왔던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담보된 시민적 민족주의(civic nationalism)의 내면화로 종족적 민족 관념에 매몰된 낭만적 민족주의와 완전히 결별해야 드리워지는 전체주의 망령을 걷어낼 수 있다.

권순철

한국문화안보연구원 사무총장
육사 졸업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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