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성과지표의 배신.... 측정 강박은 우리의 조직과 사회를 어떻게 위협하는가
[신간] 성과지표의 배신.... 측정 강박은 우리의 조직과 사회를 어떻게 위협하는가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0.02.0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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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작은 저자가 사립대학교 학과장으로 있으면서 경험한 성과 측정과 평가 문화에서 비롯했다. 저자가 몸담은 대학이 중미고등교육위원회(MSCHE, 미 교육부의 권한을 위임받아 운영된다)라는 인정기관의 평가를 받으면서, 평가기관에서 제시하는 기준에 맞추기 위한 업무가 과도하게 늘어났다. 인정기관의 평가 결과가 대학 행정에 중요하게 여겨지면서 그는 강의와 연구의 질 향상, 교수진 멘토링과 같은 기존의 임무보다는 평가 지표를 실행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되었다.

상부에서 내려온 통계 관련 질의에 끝없이 답변해야 했고, 다양한 도표, 그래프, 수치를 덧붙여 평가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대학 행정처는 정보의 수집과 처리를 전담하는 데이터 전문가를 더 많이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것은 비단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측정을 잘하는 것을 기준으로 성장을 정의하는 기업 조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의료 분야에서도 의료 서비스를 평가하는 다양한 비영리, 영리기관이 있다. 의료 기관에 대한 “평점”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은 이제 국내외의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료 평가 지표로서 “사망률” 데이터가 중요해지면서 특정 병원, 의사들이 위험한 환자의 수술을 아예 기피하는 현상을 보인다. 일부 경찰관은 상부에 보고할 “범죄 발생률”을 낮추려고 실제 범죄를 신고하지 않거나 경범죄로 처리하는 방식 등으로 데이터를 왜곡한다.

저자는 이렇듯 교육, 의료, 경찰, 군대, 비즈니스, 금융, 정부, 자선사업 및 대외원조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형의 조직에 잠식한 “측정 강박”의 오용 사례와 부작용, 편법현상 등을 들어 “성과 측정지표”의 불완전성을 조목조목 분석한다.

숫자와 수치화는 평가에 유용한 도구다. 그러나 이러한 정량적 측정, 계량화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정작 중요한 것은 보지 못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저자가 비중 있게 다루는 교육 분야를 보자.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 초·중등교육 부문에서는 모든 학생들의 학업 능숙도 고취를 위한 “낙제학생방지법”이 통과되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수학, 읽기, 과학 중심의 표준화된 시험을 치렀고 그 시험 결과를 토대로 교사와 학교까지 평가받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충분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학교는 처벌과 제재가 내려졌다. 교사들은 표준화된 시험 성적을 올리기 위한 수업을 운영했고 학생들은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는 대신 표준화된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훈련을 해야 했다. 수치화되지 못하는 교육의 가치들은 학교 현장에서 그 본연의 가치를 잃었다.

성과급을 채택하는 기업의 직원들은 평가 지표에 해당하는 업무에만 열중하고, 장기적 목표보다는 단기 성과에 치중하기 쉽다. 직원에게 “할당량”을 채우도록 심하게 압박하면 직원들은 사기 거래, 불법행위에 눈 돌리기도 한다.

물론 성과 측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평가 기준이 되는 표준화된 지표가 있고, 그 결과에 따라 구성원들이 보상과 처벌을 받는다면 사람들의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표준화된 지표는 당장에 측정하기 쉬운 것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성과의 계량화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중압감은 통계에 대한 꼼수와 조작, 정보 왜곡, 장기적 전망 상실 등의 부작용을 초래한다. 조직의 미래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사는 시대에 측정은 불가피한 것이지만, 동시에 우리는 잘못된 측정, 과도한 측정, 오해를 부르는 측정, 역효과를 낳는 측정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책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측정의 폐해가 아니다. 그보다는 표준화된 성과의 측정이 경험에 근거한 개인적인 판단을 대신하게 될 때 의도치 않게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 이야기한다. 문제는 측정 자체가 아니라 과도한 측정과 부적절한 측정이다. 다시 말하면, 측정지표가 아닌, 측정 강박이 문제다.” ―본문에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주요한 기관들이 어째서 측정 강박이라는 어리석은 선택을 할까? 저자는 오늘날 조직의 규모가 커진 점을 중요하게 꼽는다. 기업이든, 대학이든, 정부 기관이든 조직의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경영진들이 판단을 제대로 내리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의존하는 것이 “성과 측정지표”이다.

그 결과 오랫동안 현장을 지켜온 책임자의 경험과 재능보다는 외부에서 영입한 경영 전문인의 판단에 의존하는 사례가 잦아졌다는 것이다. 또한 교육, 정치, 의료 부문이 점점 “비즈니스”화되는 경향을 띠게 되면서, 학생과 시민, 환자는 점점 평점을 주는 “소비자”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여기에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IT 기술은 숫자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측정지표의 맹신 현상에 불을 댕긴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성과 측정지표에는 조직의 기능을 마비시킬 수도 있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저자는 측정 강박 현상이 널리 퍼지게 된 배경을 경제역사학자의 눈으로 종합하고, 성과 측정지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검토해보자고 권한다. 성과지표를 누가, 어떻게 개발하는가? 성과지표를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측정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과연 책임성이 증대될까? 조직과 구성원의 성장을 가로막는 지표는 무엇이며 득이 되는 지표는 무엇일까?

책에는 조직의 기능을 위협하는 잘못된 측정 사례부터 나아가 측정지표를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까지, 수많은 조직 현장에서 지금 당장 적용할 수 있는 논점과 사례들로 가득하다. 조직행동학, 공공행정학, 사회학, 경영학, 경제학, 교육학 등 다양한 분야를 광범위하게 연구한 저자의 통찰력 있는 시선, 그리고 성과 측정에서 숫자가 말해주지 않는 그 이면의 이야기들이 책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풍부한 사례와 함께 실려 있다. 조직의 경영자, 관리자, 조직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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