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기독교순교자 토마스 목사 전기 출간
한국 최초의 기독교순교자 토마스 목사 전기 출간
  • 미래한국
  • 승인 2006.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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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석 선교사·FIM 국제선교회 대표
한국 최초의 기독교 순교자인 토마스 목사의 생애를 그린 책이 출간됐다. 토마스 목사의 고향인 영국 웨일즈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유해석 선교사가 지난 6년간 자료발굴과 집필에 몰두해 나오게 된 열매다.책이 출간돼 나온 지 사흘 만인 지난 22일 유 목사를 만났다. 유 목사는 “이 한 권의 책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를 10년 가까이 웨일스에서 사역하게 하셨다 해도 후회가 없다”며 소감을 피력했다.“토마스 선교사는 그동안 많은 오해를 받았습니다. 한국 땅 최초의 기독교 순교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너럴셔먼 호에 승선해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제국주의의 앞잡이’라는 질시를 받기도 했고, 파송 선교회로부터는 선교지를 무단 이탈했다는 비난도 들었습니다.”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문헌들을 통해 오해가 상당부분 해소됐고 한국교회는 고증을 통해 그동안 안고 있던 역사적 과제를 풀게 됐다.유해석 선교사가 토마스 목사를 처음 접한 것은 청소년 시절 그가 처음 다니던 교회에서 였다고 한다. ‘조선에 복음을 전하러 왔다가 27세의 꽃다운 나이에 순교했던 사람’은 그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고, 이후 그의 삶의 역할 모델이 됐다. 선교사 헌신 이후 처음으로 영국 땅을 밟았을 때 그가 처음 찾은 곳도 웨일즈에 위치한 토마스 선교사의 생가와 그를 파송했던 교회였다고 한다.유 선교사는 이후 중동에 들어가 이슬람권 선교사로 사역하다가, 1997년 FIM(Fellowship for International Mission)국제선교회 영국본부를 설립하면서 웨일즈에 자리를 잡게 됐다. 그리고 지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토마스 선교사를 언급한 것이 계기가 돼 토마스 선교사의 후손들과 연결됐고 이후 그의 사진과 편지 등 사료들을 본격적으로 발굴하게 됐다. 한편 유 선교사가 현재 이슬람권 선교에 전념하게 된 것도 어쩌면 토마스 선교사에 대한 ‘복음의 빚’ 때문인지도 몰랐다. 1996년 설립된 FIM국제선교회는 이슬람권 선교사를 양성하고, 그들을 이슬람국가에 파송하고 있다. 또한 이슬람권에 대한 선교비전을 심어주기 위한 ‘비전트립’을 운영, 지금까지 450여 명의 선교사 지망생들을 교육해 왔다. 영국의 FIM본부는 이슬람권에 들어가기 위한 중간문 역할을 하고 있다. “2020년까지는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무슬림 인구가 됩니다. 무슬림 여성 한 명이 평균 6명의 자녀를 낳고, 세계에 흩어진 무슬림들은 그 나라의 국법이 아니라 이슬람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모두 근본주의자나 테러주의자들은 아니지만 이슬람은 기본적으로 전투적이고 선교적인 종교입니다. 그들은 전세계가 이슬람화되기까지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유 목사는 “이슬람권에도 희망이 있다”고 했다. 아직 그 숫자가 많지 않지만 불가리아 남부 지방 등의 무슬림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이슬람권의 성장을 멈추게 하고 이슬람권이 세계로 문을 열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슬람권의 선교를 위해서는 교회가 뒷바침이 돼야 합니다. 서구교회는 이미 내리막길을 걷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이슬람권과 대립관계에 있던 서구교회보다 한국의 교회가 이슬람선교에는 더욱 효과적입니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희생, 순교, 헌신의 정신을 점점 잊고 있다는 점입니다.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를 통해 이러한 정신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대동강가에 떨어진 한 알의 밀알 토마스 목사傳-유해석 지음/생명의말씀사 발행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선교사의 순교 140주년을 맞아 그의 일대기를 그린 전기가 나왔다. 그가 한국기독교 사상 최초의 순교자라는 사실은 한국교회 내에서 대체로 인정돼 왔으나 고증자료가 적어 그동안 적지 않은 논란도 있었다. ‘토마스傳’은 처음으로 소개되는 고증문헌 등의 사료들을 통해 역사적 논란을 불식시킬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토마스 목사가 1866년 8월 제너럴셔먼 호에 승선해 조선 땅을 밟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고 다른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난다. 그가 쓴 편지들은 그가 한국의 선교를 위해 얼마나 뜨거운 열정을 품고 있었으며 조선어 공부 등 이미 수년 동안 얼마나 치밀한 계획을 세워왔는지에 대해 밝히고 있다. 1839년 영국 웨일즈에서 태어난 토마스 선교사는 14세에 옥스퍼드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고 10개국어를 구사할 정도로 뛰어난 학생이었으며, 일찍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될 것을 결심했다. 1863년 중국선교사로 파송을 받은 그는 중국에서 아내를 잃으면서도 선교를 포기하지 않았고, 처음으로 조선의 소식을 접하면서 조선 선교사가 될 꿈을 꾸게 된다. 그는 1866년 제너럴셔먼 호에 탑승해 조선에 왔다가 조선 수비병들의 공격을 받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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