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논단] 한국 기독교의 정치 참여 논쟁, 어제와 오늘
[미래논단] 한국 기독교의 정치 참여 논쟁, 어제와 오늘
  • 박명수 미래한국 편집위원·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
  • 승인 2020.03.04 09:43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대사회의 많은 학자들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종교는 쇠퇴하고, 이것은 결국 정치에서 종교의 역할이 줄어들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중세 이후 서구의 역사란 종교에서 정치의 독립이었고, 이것을 세속화라고 말한다.

하지만 오늘날 종교는 쇠퇴하지 않고 있으며 정치에 있어서 종교의 역할은 축소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부 지역에서는 종교는 부흥하고 있고 정치에서 종교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조만식 선생의 마지막 모습. 소련군에 맞서는 기독교세력은 평남의 조선민주당이 었고, 그 중심에 조만식 장로, 이윤영 목사가 있었다/. 조만식선생기념사업회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조만식 선생의 마지막 모습. 소련군에 맞서는 기독교세력은 평남의 조선민주당이 었고, 그 중심에 조만식 장로, 이윤영 목사가 있었다/. 조만식선생기념사업회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정치 참여는 더 강해져

여기에 가장 중요한 예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 기독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상당히 부흥했으며 1970년대부터는 소위 복음주의자들이 등장해 미국 사회의 전통적인 가치를 강조했다. 이들은 동성애, 낙태 그리고 가정을 이슈로 미국의 보수적인 가치를 대변해 왔고 이들의 지지를 받아 레이건, 부시 부자, 그리고 최근에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심지어 클린턴도 이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했다.

이것은 한국 기독교도 마찬가지였다. 해방 이후 한국 기독교는 공산주의를 가장 위협적인 존재라고 간주하고 반공과 기독교를 함께 전파했다. 이런 기독교는 해방 이후부터 상당한 부흥을 경험했으며 1970년대 대형집회를 통해 그 절정에 이르렀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기독교는 한편으로는 민주화 운동에도 가담했지만 대다수의 한국 기독교는 공산주의의 위협을 더 크게 강조했다. 이런 보수적인 기독교는 2000년대 들어와 보수적인 정권이 탄생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한국 기독교와 보수 정권은 안보와 자유민주주의를 연대로 하여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다.

최근 전광훈 목사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태극기 세력과 연합해 문재인 정부를 종북좌파라고 규정하며, 강력하게 비판을 하면서 한국 사회에서는 기독교의 정치 참여에 대해서 큰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한국 기독교의 정치 참여 역사를 개괄하고, 최근 동향을 소개하려고 한다.

한국 기독교는 오랫동안 정교분리의 원칙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흔히들 정치를 생물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가지 고정적인 틀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것은 기독교의 정치 참여 문제에도 적용된다. 기독교가 어떤 형식으로 정치와 관계를 맺는가 하는 것은 기독교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가를 따져 봐야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해방 이후 한국 기독교는 매우 특이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해방 이후 한국 기독교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던 북한에는 기독교를 반대하는 소련군이 진주했고 북한 지역에 비해 훨씬 열세였던 남한에는 기독교를 기반으로 미군이 진주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기독교와 남한의 기독교는 각기 다른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해방 직후 북한의 기독교는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해방 직후 북한지역에 만들어진 건국준비위원회(혹은 자치위원회)는 평북, 평남 그리고 황해도의 기독교인들이 주도했다. 이들은 미군의 진주를 기대했고, 이들과 함께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소련군이 진주하자 이들은 소련군과 직접적으로 부딪히게 되었다. 그 첫 번째가 평북의 사회민주당이었고 여기에는 한경직, 윤하영 목사가 중심이 되었다. 그 다음이 평남의 조선민주당이었고 그 중심에 조만식 장로, 이윤영 목사가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1946년에는 기독교자유당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북한의 공식 기독교단체인 장로교의 이북 5도 노회와 감리교의 서부연회가 교단적인 차원에서 만든 당이었다. 이것은 정교분리를 부정한 기독교의 정치 참여이다.

공산주의의 위협 아래 북한 기독교는 기독교 신앙을 위해서는 공산주의에 맞서는 정당을 만들 필요를 느꼈고 그리하여 이 같은 정치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특히 기독교자유당은 이 지역의 공식 기독교단이 만든 당이라는 점에서 매우 주목해 봐야 할 것이다. 이들에게 정교의 분리라는 것은 정치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범주 아래 가능한 것이지 종교의 자유가 사라지는 현실 속에서는 기독교가 정당을 만들어 여기에 강력하게 맞서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당시 북한에서 공산당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세력이 기독교였다.
 

한경직 목사(1902~2000). 해방 직후 북한지역에 만들어진 건국준비위원회는 기독교인들이 주도하였다. 민주주의 국가를 바라던 평북의 사회민주당은 한경직, 윤하영 목사가 중심이 되었다.
한경직 목사(1902~2000). 해방 직후 북한지역에 만들어진 건국준비위원회는 기독교인들이 주도하였다. 민주주의 국가를 바라던 평북의 사회민주당은 한경직, 윤하영 목사가 중심이 되었다.

정교분리는 상황에 따라 변한다

해방 직후 남한에서의 기독교는 북한과는 매우 다른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남한에는 미군이 진주했고 이들은 미국 유학을 다녀 온 기독교인들과 함께 남한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다. 남한의 기독교는 1945년 말 당시 남한의 기독교를 대표하는 남부대회는 공식적으로 임시정부를 지지했다. 이것은 한국 기독교가 좌익의 인민공화국을 반대하고 우익의 민주공화국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는 1945년 말 정동제일교회에서 임정 요인 3명, 이승만, 김구, 김규식을 우익 3영수라고 부르며 환영대회를 했다.

하지만 남한의 기독교는 교단 자체로 특정한 정당을 만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독교인들은 기존 정당과 단체에 들어가 열심히 활동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승만이 주도하던 독립촉성국민회였다. 이 모임의 중앙요인과 지방대표들은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다. 하지만 기독교정당을 표방하지는 않았다. 사실 남한의 기독교인들과 이승만은 기독교의 이름으로 정당을 만들어 좌익과 싸우기를 원했지만 미군정은 여기에 대해서 반대했고 개별적으로 정당에 들어가 활동하기를 원했다. 결국 해방 공간에서 기독교정당은 출현하지 않았다.

한국 기독교는 오래 전부터 정교분리의 원칙을 지켜 왔다. 이것은 선교사들이 기독교를 정치 세력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다. 교회가 일반정치에 휩쓸려 국가권력으로부터 공격을 받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이런 것을 특별히 일제 강점기에도 강력하게 나타났다.

이런 원칙은 해방 공간의 남한에서도 지켜졌다고 말할 수 있다. 기독교단은 특정정당을 만들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정당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것을 선호했다. 하지만 해방 공간의 북한처럼, 기독교의 존재 자체가 위협을 받는 경우 기독교를 보호하기 위해 정당을 만들어 대처하기도 했다. 따라서 한국 기독교는 원칙적으로 정교분리를 지지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것을 넘어서서 활동하기도 했다.
 

태극기 집회에 참여한 전광훈 목사
태극기 집회에 참여한 전광훈 목사

정교분리의 개념은 분명하지 않아

현재 대한민국 헌법은 제20조 1항,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와 2항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되어 있다. 이것은 첫째, 국가는 개인의 신앙에 대해서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이며 둘째, 국가는 특정종교를 정책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지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셋째, 정치와 종교는 상호 분리되어 서로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의 시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세 번째 정교분리의 조항이다. 사실 정교분리라는 개념은 그렇게 분명하지 않다. 일제 강점기 동안 조선총독부는 선교사들이 3·1운동 당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정치적인 행동이라고 주장해 정교분리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주장한 데 비해 선교사들은 고난 받는 신자들을 돕는 일은 목회적인 일이므로 결코 정교분리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고 봤다.

또한 일제 강점기 말 일본은 신사참배가 단순한 국민의례에 속하는 것이므로 정교분리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데 비해 기독교는 이것은 명백한 종교행위이기 때문에 이것을 강요하는 것은 신앙의 자유와 정교분리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상황은 6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박정희 정부는 기독교인들의 민주화운동은 정치행위이기 때문에 정교분리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여기에 비해 진보적 기독교인들은 민주화운동은 자신들의 종교적인 신념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이것을 방해하는 것은 정부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비슷한 현상이 최근에도 반복되고 있다. 일부 진보세력은 최근 보수적 성직자들의 정치 참여가 종교인들의 활동 범위는 넘어서는 것이라고 비판하지만, 오히려 여기에 참여하는 보수주의자들은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안보를 걱정하는 것은 단순한 정치행위가 아니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해야 할 애국행위라고 주장한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흥미 있는 것은 항상 정교분리를 강조하는 쪽은 정부와 기득권 세력이라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식민지 지배자들이 정교분리를 이야기했으며, 60년대와 70년대에는 박정희 정권이, 현재에는 문재인 정부와 궤를 같이하는 인사들이 정교분리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가? 이것은 기독교인들의 정치 참여를 자신들의 정치적인 활동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세력들이 바로 정교분리라는 이름으로 제한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60년대에는 보수주의가 정교분리를 말했는데, 지금은 진보주의가 정교분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내로남불”의 또 하나의 예가 된다.

겉으로 볼 때 한국 기독교는 하나이지만 내용적으로 볼 때 한국 기독교는 둘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한국 교회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보수·복음주의적인 기독교이며 다른 하나는 소수이지만 과거에 상당한 여론을 주도한 경험이 있는 진보주의자들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진보 기독교는 그들의 쇠퇴와 함께 그들의 주장도 약해지고 있다. 그러나 보수.복음주의적인 기독교는 여전히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으며 현재 이들의 주장이 이슈가 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보수주의 기독교가 주장하는 이슈가 무엇인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보수주의 기독교가 정치에 참여하는 이슈는 무엇인가? 여기에는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과 관련된 것이다. 한국 기독교는 해방 후 건국 과정에서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따라서 기독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 국가적인 이슈에 민감하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안보 문제였다. 해방 직후 1949년 미군이 철수할 때 70년대 중반 지미 카터 대통령이 다시 미군 철수를 주장할 때 한국 기독교는 한미관계의 촉진을 위한 대대적인 군중집회를 했다. 이 같은 안보에 대한 걱정은 2000년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때문에 북한이 핵무장을 할 때 강력한 반핵, 반김대회로 이어졌다.
 

박명수 미래한국 편집위원·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
박명수 미래한국 편집위원·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

기독교의 이슈는 국가 정체성, 윤리 문제, 선교

우리는 최근 진행되고 있는 광화문의 태극기 집회의 원인을 이런 맥락에서 찾아봐야 한다. 한국 기독교를 구성하고 있는 주류집단은 자신들이 해방 직후 공산주의에 의해 쫓겨난 것과 6·25 전쟁 당시에 공산군들이 보여 줬던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을 분명하게 잘 알고 있다.

이런 기독교인들에게 문재인 정부의 행동, 즉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꺼려 하고, 북한 김일성에게 무한히 관대한 태도를 보이며, 핵문제는 마치 남의 나라 문제처럼 취급하는 것은 분명히 이들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남한을 북한에 넘겨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들었다.

이런 염려 때문에 이들은 광화문에 나와서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고, 안보를 외치는 것이다. 이들에게 광화문 집회에 참여하는 것은 권력을 잡으려는 정치행위가 아니라 위기에 빠진 나라를 살리는 애국운동인 것이다.

둘째, 한국 사회의 건전한 윤리와 관련된 문제이다. 종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그 사회의 건전한 도덕을 유지하는 것이다. 인류사회는 오랫동안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고, 이것은 남녀의 구분(차별이 아니라)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등장하고 있는 동성애자들은 이런 전통적인 윤리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동성애는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동성애의 정당성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현재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이 동성애를 행할 뿐만이 아니라 동성애를 정당한 것으로 법적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적인 한국 기독교는 자신들을 전통적인 윤리의 옹호자로 자처하고 나섰다. 이들의 눈에, 동성애는 사회의 기초를 흔드는 비윤리적인 행동인 것이다. 최근 한국 기독교는 반동성애 운동을 이끌어 가고 있다.

셋째,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 선교와 관련된 것들이다. 과거 한국 정부는 교육, 의료, 복지, 문화 등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었다. 개항기만이 아니라 해방 직후에도 정부의 능력은 미미했다. 이렇게 정부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을 때 기독교는 교육, 의료, 복지,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일들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발전하면서 정부는 막강한 능력을 갖게 되었고, 과거 기독교학교나 복지시설은 정부의 보조금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학교나 복지시설에서 종교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기독교는 과거 자신들이 해 오던 선교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게 된 것이다. 이것은 과거 학교나 복지를 통해 복음을 전하던 기독교에는 날개를 잃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국 기독교는 종교계 사립학교나 복지시설에서 종교활동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기독교인들의 주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

현재 광화문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 정치 참여의 핵심은 위에서 언급한 첫 번째의 경우,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동성애와 관련된 이슈도 이와 못지않으며, 미션 스쿨의 종교활동에 대한 문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과제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중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기독교 정당의 출현에 관한 것이다. 과거 몇 차례 기독교 정당이 출현했지만 의석을 얻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현재 한국 교회에서 기독교 정당의 창당에 대해서는 일치된 의견이 없다. 설혹 기독교 정당이 생긴다고 해도 그것이 한국 기독교를 대변한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입장은 상당이 바뀌고 있다. 과거 기독교인들의 정치 참여를 주장하면서도 정작 기독교 정당의 출현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도 최근에 와서는 입장을 바꾸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정당을 만드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그러면 기독교 정당이 출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기존 정당에 대한 실망이다. 한국 기독교는 수많은 사회적인 이슈를 가지고 각 정당에 호소했다. 실지로 각 정당에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들이 기독교의 주요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그것은 타종교의 표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분명하게 실현시킬 국회의원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 정당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기독교의 주장이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을까? 기독교 정당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결국 소수 정당이 될 수밖에 없는데,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 정당을 만드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것 같다. 무엇보다 세속적인 정치 속에 들어가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기독교적인 가치를 갖고 싸울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이다. 오히려 진흙탕에 들어가 같이 타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닌가? 또한 기독교 정당이 한국 사회에서 종교 간의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중요하다.

한국은 다종교사회이지만 아직까지 큰 갈등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독교 정당이 생기면 다른 종교도 종교를 업고, 정당을 만들고, 이런 경우에 이르면 한국은 심각한 종교 갈등을 일으키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해방 직후 북한에서 기독교는 자신들의 종교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정당을 만들어 공산주의와 싸웠다. 당시 북한에서는 아무도 종교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울 단체는 없었다. 기독교만이 유일하게 공산주의와 맞설 수 있는 세력이었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는 이 경우를 제외하고는 직접적으로 정당을 만들어 활동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독교인 개개인이 정당에 들어가 기독교적인 가치를 확산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한국 기독교는 이런 기존의 시도를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정당에 들어간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의 정체성보다는 정당의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런 실망감이 커지면 커질수록 기독교 정당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갈망은 커질 것이다.

기독교 교단이 직접 정당을 만드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이 판단할 때 기존의 정당이 자신들의 정책을 바로 실현시켜 주지 못한다면 결국 기독교인들이 정당을 만들어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방법 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위해서, 건전한 한국사회의 윤리를 위해서, 그리고 기독교 선교의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정당을 만들 권리가 있는 것이다. 기존 정당들이 기독교를 이용해서 정치적인 승리를 얻을 생각만 하지 말고, 기독교인들이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유일신 2020-03-04 11:02:5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간만에 존나 웃었네 이 기사가 딱 "왜 개독들은 정상인들이 자기들을 싫어하는지 이해를 못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몸소 보여주고 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