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에 새마을운동 모델 제공
박정희 대통령에 새마을운동 모델 제공
  • 미래한국
  • 승인 2006.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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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촌계몽운동 선각자 김일주 한국농촌문화연구회 회장
6·25 때 북한에서 학도병 참여, 越南80년대 말부터 탈북민 돕기에 나서우리 나라 농촌의 획기적인 발전은 물론 국가 경제발전으로까지 이어진 새마을운동(1971~1984)의 첫 불씨는 농촌계몽에 앞장 선 한 청년의 열정에서 나왔다. 바로 그 청년이 현재 한국농촌문화연구회 김일주 회장(73)이다. 농촌 머슴으로 남한에서 정착함경남도 단천이 고향인 김 회장은 1950년 6·25사변 당시 북진했던 국군 3사단에 학도병으로 참여해 북한과 맞서 싸우다 1951년 이승만 대통령의 학도병 학창 복귀 지시로 군에서 나오게 된다.당시 가족은 모두 이북에 있어 홀로 남한에서 생활을 하게 된 그는 천안 농촌의 한 가정집에서 머슴살이를 시작했다. 그는 자기 또래 농촌 아이들이 대부분 문맹인 사실에 충격을 받고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그 속에서 청년 김일주의 마음에는 훗날 우리 나라 농촌계몽운동에 나서야겠다는 집념이 싹터 나갔다.그는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에 상경, 고교 졸업생 나이에 휘문고에 진학했다. 그리고 학비를 벌기 위해 정비공, 막노동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이런 고난 중에도 고3 여름방학에 수십 권의 책을 들고 충남 공주군 유구면 문금리 마을로 첫 농촌계몽운동을 떠난다. 꿈에 그리던 일이기에 그곳까지 찾아가는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 마을은 청년 김일주가 건네 준 책을 기반으로 마을문고가 생겨났다. 청년 김일주는 그해 겨울방학에도 책을 싸들고 다른 농촌을 찾아갔다.건국대 설립자, 농촌계몽운동 전폭지원그런 농촌사랑을 실천한 청년 김일주에게 고 3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건국대 설립자 故 유석창 박사로부터 어느 날 연락이 온 것이다. 역시 함경남도 단천이 고향인 유석창 선생이 고향 출신 학생을 키워주고자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다 김일주 회장을 찾아낸 것이다. 더욱이 유석창 박사와 김일주 회장의 부친은 친구 사이였었다.유석창 박사는 김일주 회장을 친아들처럼 돌보며 학비부터 생활비 그리고 농촌계몽운동을 위해 사무실까지 내줬다. 이때부터 김 회장의 농촌계몽운동은 탄력을 받아 전국에 100여 곳이 넘는 농촌을 방문하게 된다. 특히 졸업 후 건국대 축산대학 조교와 기숙사 사감을 맡은 그는 방학 중 기숙사가 비면 아예 농민들을 불러 단기교육도 시켰다.이런 그의 노력으로 농촌의 초가집은 기와집으로 바뀌고, 부엌·화장실도 개량됐으며, 목욕탕 건축, 농로닦기 등 농촌이 완전히 개량되어 나갔다. 물레방아 대신 정미소가 들어서는 등 그야말로 살기좋고 풍요로운 농촌으로 변모해 갔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술집 없애기운동, 산아제한운동 등 농촌근대화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교육을 손수 했다.선진국도 계몽운동으로 국가 발전1967년 이탈리아로 1년간 유학을 떠난 김 회장은 독일,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등 소위 선진국들이 자신이 하고 있는 농촌계몽운동과 같은 것을 통해 부국으로 도약하게 된 사실을 알고, 자신의 운동에 대한 확신이 서게 됐다. 김 회장은 농민교육을 보다 전문적으로 하고 농촌 근대화 연구를 할 수 있는 시설을 구축해야겠다고 다짐하고 귀국 후 1968년 경기도 시흥에 농촌문화연구회를 개원, 농민교육에 가속도를 붙였다. 그러다 1969년 MBC TV가 김일주 회장을 찾아와 그를 대상으로 ‘농촌혁명아 김일주’란 제목의 20분 분량 다큐멘터리를 제작·방영했다. 그런데 이 방송이 한 미국 외교관의 눈에 띄었다. 그 외교관은 그 방송테이프를 들고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가 한국이 발전하기 위해선 김일주 회장이 벌이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제안을 하게 됐다. 결국 김일주 회장의 농촌계몽운동이 1971년 故 박정희 대통령이 시작한 새마을 운동의 모델이 된 것이다.“각 분야에서 최고가 되라”이처럼 새마을운동을 통한 국가 발전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김일주 회장은 농촌교육운동을 지속해 지금까지 54만여 명이 그의 교육과정을 거쳐 갔다. 특히 지난 2000년부터는 원내에 한국지도자아카데미 과정을 무료로 개설, 공직자·CEO·교수·직장인 등 각 분야의 종사자들에게 ‘분야에서 최고가 되라’는 교육을 하고 있다.김 회장은 “우리 나라가 발전하려면 결국 국민들이 최고가 될 때 가능한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후진 양성을 하는 게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란 신념으로 교육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이와 함께 지난 80년대 말부터는 자신처럼 이북에서 나온 ‘탈북민’ 돕기에 나선 김 회장은 지난해에 (재)북한이탈주민후원회 회장을 맡아 현재 탈북민의 임대주택 정착, 병원비 지원 등 한국사회에 안정적 정착을 지원하고 있다.현재도 탈북민들을 만나거나 그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할 때면 자신의 한국정착 경험담을 들려주며 “남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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