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게 감히?’ 사상 초유 지상파 방송 자진폐업 사태의 전말
‘대통령에게 감히?’ 사상 초유 지상파 방송 자진폐업 사태의 전말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0.03.2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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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신년 기자회견 당시 김예령 기자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질문하는 모습. 김 기자가 질문하는 중 조국 전 민정수석이 고개를 든 모습이 방송 화면에 포착돼 흥미를 끌었다/. YTN 영상 캡처
2019년 신년 기자회견 당시 김예령 기자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질문하는 모습. 김 기자가 질문하는 중 조국 전 민정수석이 고개를 든 모습이 방송 화면에 포착돼 흥미를 끌었다/. YTN 영상 캡처

사상 초유로 자진폐업을 예고한 경기방송이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상파방송 사업자가 스스로 사업을 포기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경기방송은 1997년 지역민방 라디오(KFM99.9) 채널로 개국한 경기도와 인천 일원 권역 가청 인구 1300만 명을 둔 채널이다.

경기방송 문제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경기방송 기자의 SNS 글이었다. 김예령 경기방송 기자는 2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 2019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에 대한 저의 질문이 결국 경기방송의 재허가권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결단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고 밝혔다. 자신으로 인해 방송 재허가에 악영향을 미치게 됐다며 사직의 뜻을 밝힌 것이다.

김 기자는 지난 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다른 기자들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에게 송곳 질문을 던져 주목을 받았다. 그는 대통령을 향해 “여론이 굉장히 냉랭하다는 걸 대통령께서 알고 계실 것이다. 현실 경제가 얼어붙어 있고 국민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현 기조를 바꾸지 않으려는 이유에 대해 알고 싶고,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좀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다”고 했었다. 이로 인해 친문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 때문에 김 기자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최근 경기방송에 대한 조건부 재허가 조치가 자신의 질문 논란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경기방송은 최근 방통위에서 조건부 재허가 결정을 받은 뒤 이사회에서 폐업을 결의한 상태였다. 경기방송 이사회는 2월 20일 “노사 갈등에, 급격한 매출 감소, 방통위의 경영 간섭 등으로 정상적 경영이 불가능하다”며 폐업 의사를 밝혔다.

경기방송은 지난해 말 재허가 심사에서 ▲‘경영권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자’를 경영에서 배제할 것 ▲정관 개정 및 대표이사 공개 채용 절차를 마련할 것 등을 조건으로 재허가를 통과했다. 경영진 교체 조건으로 재허가를 받은 것이다. 그러자 경기방송은 ‘자진 폐업’이라는 강수(强手)로 맞선 것이다.

경기방송은 <경기방송 이사회의 폐업 결의에 대한 입장문>을 통해 “최근 경기방송 이사회에서 지상파 민영방송 사업 폐업을 결의하게 된 데 대해 매우 무겁고 송구한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면서 “오죽하면 이런 결단을 내렸겠느냐”며 “경기방송을 지속할 수 없었던 이유는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모두 다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는 사정 또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폐업이 주주총회에서 완전한 결정이 되더라도 거짓 제보와 회사를 음해하던 세력, 직권남용이나 월권적 업무방해 행위, 그리고 그동안 일어났던 언론탄압 등에 대한 전모를 법과 국민들의 심판에 맡김으로써 하나하나씩 밝혀나갈 것이라고 강조해 드린다”고 밝혔다.

경기방송 사태 언론 탄압 끝판왕

이에 대해 방통위는 “방송법에서는 ‘경영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는 방통위 승인을 받도록되어 있는데, 현모 전무는 수년 동안 이런 절차 없이 방송법을 위반하고 있었다”며 “법령 위반 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조건이었다”고 했다. 경기방송 안팎에선 현준호 전무가 정권에 비판적 발언을 자주 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실제로 현 전무는 안팎의 친정부세력으로부터 집중적인 견제와 공격을 받아왔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언론노동조합 기관지격인 미디어오늘 등은 지난 해 8월 문재인 정부가 사실상 주도한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대해 “불매운동은 성공한 적이 없다. 우매한 국민을 속이고 반일로만 몰아간다” 등의 현 전무 회식자리 발언과 사내통신망 밴드에 불매운동을 비판하는 유튜버 영상 공유, 불매운동의 피해를 지적하는 기사 작성 지시 등을 문제 삼고 현 전무가 “일본 불매운동 비하 발언”을 했다며 지속적으로 문제 삼아 왔다.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은 사태가 커지자 성명을 내고 “경기방송은 총괄본부장을 퇴사시키겠다는 1350만 도민과 약속을 즉각 이행해야 한다”며 “이러한 조치가 즉각 이뤄지지 않을 경우 특단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당시 총괄본부장이던 현 전무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처럼 안팎으로부터 압력에 시달리던 현 전무는 올해 1월 3일 사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논란은 계속됐고 급기야 경기방송 자진폐업 사태까지 온 것이다. 친문 세력의 주장과 요구가 반영된 방통위의 조건부 재허가 조건은 이런 과정과 분위기 속에서 나왔다.

현 전무가 사직한 당시 미디어오늘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달 30일 ‘경영권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자를 방송사 경영에서 배제할 것’, ‘소유·경영의 분리 및 경영 투명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명한 대표이사 선임절차를 마련할 것’ 등 조건을 달아 경기방송 재허가를 승인했다”며 “사실상 현준호 전무이사를 경영에서 손 떼게 하라는 경고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한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경기방송은 폐업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가 “경기도의회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힌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했다. 경기도와 공동사업으로 10여 년간 진행해온 교통방송 예산 등 각종 홍보·사업예산이 도의회에 의해 전액 삭감되면서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또한 “잦은 내분과 헤게모니 싸움”이라며 노조와의 갈등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경기도의회 전체 도의원 142명 가운데 민주당 소속은 135명으로, 친문 성향이 다수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노조는 이사회의 폐업 결의를 공문으로만 전달받았을 뿐 별도의 설명은 듣지 못했다고 했다. 노조 관계자는 “다들 충격이 커서 그야말로 ‘멘붕’ 상태”라며 “비단 노조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섣불리 입장을 내기보다는 이 사태를 어떻게 판단하고 대처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미래통합당은 경기방송 재허가 과정에 대한 진상 조사에 나서겠다고 했다. 박대출 의원은 특히 김예령 기자의 사직 사실이 알려지자 “대통령에게 질문 한번 했다고 23년 경력 기자가 숙청될 위기에 처했다”며 “방통위가 정권 외압을 받았는지 조사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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