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분석] 남발되는 지역상품권의 허와 실
[포커스분석] 남발되는 지역상품권의 허와 실
  • 고성혁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0.04.1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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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서 검색만 해 봐도 수 많은 지역상품권이 뜬다. 전국 193개 지자체에서 각종 명목으로 지역상품권을 발행하고 있다.

우한 코로나로 전 세계가 패닉에 빠졌다. 이탈리아는 사망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 유럽 전체가 사실상 LOCK DOWN에 들어갔다. 세계 최강국 미국조차도 우한 코로나 감염자가 3월 30일 현재 14만2178명을 기록했다. 뉴욕도 도시기능 자체가 사실상 멈췄다. 우한 코로나 기세가 꺾이기는 커녕 더 커지고 있다. 발원지인 중국은 28일 0시를 기해 외국인 입국금지를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일본도 3월 30일 외국인 입국을 금지했다. 각국이 이동을 금지하면서 실물경제가 사실상 멈춰 서고 있다. 이것은 과거 금융위기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막힌 돈줄만 풀면 실물경기가 되살아나던 것과 다른 셧다운이기 때문이다. 이미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의 입에서는 ‘코로나로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마찬가지다’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소상공인뿐만 아니다. 국내 저가항공사는 운행을 멈췄다. 세계 최대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도 긴급구제를 요청했다. 3월 22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보잉은 항공산업 전체가 위기에 빠졌다며 600억 달러(약 77조4000억 원) 규모의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이제 전 세계가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경제 대 공황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미국·독일·일본 등 각국은 경제붕괴를 막기 위해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줄 풀기’에 나서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27일 2조200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 법안에 서명했다. 규모로만 본다면 역대 최대다.

미국 연간 GDP의 11%가 해당하는 액수다. 일종의 재난수당으로 성인 1인당 1200달러씩 현금이 지급되며 아동 1명당 500달러가 추가된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메르켈 독일 총리도 독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인 1조 유로 규모의 부양책을 내놨다. 아베 일본 총리 역시 일본 GDP의 10%를 넘는 56조 엔 규모의 경제부양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끝없는 대기줄. 긴급 대출자금을 신청하기 위해 늘어선 소상공인들
끝없는 대기줄. 긴급 대출자금을 신청하기 위해 늘어선 소상공인들

지역상품권 남발 193개 기초단체에서 이미 발행

문재인 대통령은 3월 30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3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소득 하위 70% 가구에 대해 4인 가구 기준 가구당 100만 원의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저소득층과 중소기업·자영업자 등에 한해 4대 보험료 및 전기요금 납부 유예 및 감면을 3월분부터 소급 적용하겠다고 긴급대책을 내놨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전체 2050만 가구 중 약 1400만 가구가 긴급재난지원금을 받게 될 전망이다. 4인 이상 가구는 최대 100만 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선정 작업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런데 당장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이 아니라 지역상품권과 전자화폐로 지급된다는 것이다.

현재 생계가 막막한 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현금이다. 지역상품권이 아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현금 대신 지역상품권을 지급한다는 대책을 내놨다. 지역상품권은 이미 각 지자체마다 지역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남발된 상태다. 행정안전부가 2월 7일 발표한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자체 현황’에 따르면 전국 243개 기초단체 중 193개 기초단체에서 이미 지역상품권을 발행했다.

지역상품권을 발행하지 않는 기초단체는 50곳에 불과하다. 지역 상권을 활성화한다는 명분으로 정부는 이미 지난 3월 초 추경을 통과시키면서 각 지자체별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을 2배로 올려 6조 원으로 책정했다. 여기에 이번 코로나사태 긴급 생계지원책으로 또다시 지역 상품권을 발행한다는 것이다.

지역상품권으로 코로나 생계대책을 지원한다는 광역자치단체도 있다. 서울시와 경기도다. 경기도는 3월 24일 우한 코로나로 위축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4월부터 도민 1인당 10만 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했다. 소득과 나이 상관없이 3월 24일 0시 기준 전 도민 1326만여 명에게 준다.

석달 안에 써야 하는 지역화폐다. 그 규모는 1조3000억 원을 초과한다. 서울시의 경우도 재난긴급생활비는 1~2인 가구는 30만 원, 3~4인 가구는 40만 원, 5인 이상 가구는 50만 원을 받게 되며 서울시 역시 지역화폐인 지역사랑상품권 또는 선불카드로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지역상품권 남발로 인해 화폐 유통질서가 교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긴급재난구호를 명목으로 수조원 이상의 대규모 지역상품권(화폐) 발행은 국가 화폐발행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 게다가 통화량을 왜곡할 수도 있다. 지역상품권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지역상권을 활성화 시킨다는 애당초 취지와는 다르게 지역상품권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도 있다.

2019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12년부터 판매된 온누리상품권 6조8451억 원어치 중 올 8월까지 회수되지 못한 상품권은 모두 2431억 원어치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 중 종이로 발행된 상품권이 2291억 원이었고 온라인으로 발행된 전자상품권도 181억 원어치가 아직 회수되지 않았다. 온누리상품권이 제대로 유통되지 않으면서 전통시장 살리기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상품권 발행 규모와 다르게 지역상권 활성에 큰 역할을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한민국의 경제구조 자체가 지역과 중앙을 구별할 수도 없고 그 차이도 없기 때문이다. 가령 지역 편의점이나 재래시장에서 지역상품권을 사용한다고 할 때 그 상품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아니다. 편의점에서 라면을 하나 구매할 때 그 라면은 지역 라면이 아니라 대기업에서 생산하는 라면이다. 사실상 지역상권 운운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 오히려 지역상품권은 현금보다 사용하기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지역상품권으로 결제할 수 있는 상권도 제한적이다.

현실에서는 지역상품권이 현금 ‘깡’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당장 현찰이 필요한 서민에게 지역상품권은 현금교환의 수단으로 사용될 뿐이다. 시장에서는 이미 각종 상품권이 넘친다. 주유상품권, 백화점 상품권, 구두상품권, 온누리 상품권 여기에 각 지역상품권까지 있다.

이들 상품권은 전문 ‘깡’업체를 통해 거래된다. 거래될 때 수수료 명목으로 할인, 즉 ‘깡’을 하는 것이다. 마치 ‘어음 깡’과 비슷한 구조다. 대체로 환금성이 좋은 주유상품권의 할인율이 가장 적다. 그 다음이 백화점 상품권이다. 대체로 지역상품권은 할인율이 높다. 그만큼 환금성에서 주유상품권보다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한사연)도 상품권 지급에 실효성에 대해 문제 제기에 나섰다. 상품권 형태의 지급은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와 추가비용을 만들며 상품권 부정유통(일명 상품권 깡) 등이 증가할 경우 상품권 발행에 따른 소비 진작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상품권의 경우 가맹점이 많지 않고 사용 가능한 업종이 다양하지 않아 상품권 사용을 위한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약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만약 온라인모바일 상품권으로 발행할 경우에도 노인·장애인·희귀질환자 등은 사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지역경제 차원이 아니라 국가경제 전체로 봐야

게다가 상품권은 현찰과 달리 수령을 해야 한다. 현금 같은 경우 바로 통장에 송금이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정부나 각 지자체에서 구상하는 상품권의 경우 대상자를 선별해야 한다. 또 해당 가구는 별도 신청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기에 과도한 행정력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 온라인 신청을 한다고 해도 노약자나 고령층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래저래 지역상품권은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경제 파급효과도 현금보다 떨어진다. 현재 코로나로 인한 경제문제는 지역경제 차원이 아니라 국가경제 차원에서 봐야 한다. 그렇다면 상품권은 국가경제 차원에서 부적합하다.

이에 박영용 한사연 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와 소비진작을 위한 것이라면, 현금지급과 같은 직접지원이 필요하다”면서 “모든 정책은 전달자와 수혜자의 입장을 고려해 결정하고, 실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거 기자가 다니던 회사에서 구내식당을 없애고 인근 식당 활성화를 위해 식권을 나눠 준 적이 있다. 식권은 총무부에서 각 부서로 배분했다. 그런데 배부된 식권이 전량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출장자나 외근자 등의 식권은 사용되지 않고 모아서 소위 잘 아는 식당에서 깡도 하고 부서 회식 때 돈 대신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식권을 관리하는 총무부는 상황이 달랐다. 회사 전체의 미사용 식권을 모으면 그 액수가 꽤 컸다.

식권을 관리하던 총무부 부정 사용이 결국 감사에 걸렸다. 해당 직원은 문책당했다. 그 후부터 식권 대신 실비정산으로 돌아갔다. 뭐니뭐니 해도 현금이 가장 정확하다. 은행을 통해 거래되는 현금은 부정과 비리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 또한 거래를 추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식권 같은 지역상품권은 얼마든지 부정 사용이 가능하다. 지역상품권은 금융실명제를 우회하는 수단도 될 수 있다.

지역 상권을 살린다는 취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상품권이다. 지역상권 활성화보다는 전문 ’깡 업체‘만 활성화 시켜 줄 우려가 있다. 게다가 불법자금 세탁으로 변질 될 수도 있다. 실제로 2017년 대구은행의 비자금 관련 수사에서 ‘상품권 할인(속칭 상품권 깡)’이 문제가 되었다.

당시 경찰은 대구은행장이 법인카드를 이용해 상품권을 대량 구매한 뒤 현금으로 바꾸는 ‘상품권 깡’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포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상품권을 현금으로 만들어 썼기 때문에 사용처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말한 바 있다.

가령 광역 지자체에서 지역상품권 1조 원을 발행했는데 미사용된 지역상품권을 지자체에서 맘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유용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다. 게다가 전문적인 대규모 ‘깡’ 시장이 활성화되면 지하경제만 커질 수 있다. 현금과 달리 미회수 상품권에 해당하는 금액은 공중에 붕 뜰 수도 있다. 기업이 발행하는 상품권과 달리 중앙정부나 지자체에서 발행하는 상품권은 ‘혈세’다. 한마디로 국민 혈세가 ‘붕’ 뜰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품권 남발만 있고 미회수 상품권에 대한 대책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은행 금리는 제로금리에 가깝다. 금리 0.1%에도 재테크 시장은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런데 캐시백 6~11%짜리 지역상품권이 계속 발행되고 유통되면 금리시장 자체가 왜곡될 수 있다. 더욱이 기초단체와 광역단체가 발행한 지역상품권이 넘치는 마당에 정부 차원의 대규모 상품권까지 쏟아진다면 통화량 왜곡과 함께 지하경제만 키우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무분별한 지역상품권 발행은 정치적으로는 포퓰리즘과 상대적인 지역차별로 비칠 수도 있다. 어느 지역은 주고 어느 지역은 안주고 한다면 말이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코로나 사태로 전무후무한 경제 상황에서 일반 서민들은 지역경제할성화가 아니라 당장 결제일에 갚아야 할 카드대금과 통신요금이 발등의 불이다. 언발에 오줌 누기라도 당장 현금이 필요한 서민에게는 상품권보다는 현금이 더 유용하다.

장기화 되는 코로나 사태는 지역경제적 관점이 아니라 국가경제 전체 차원의 거시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 그렇다면 더더욱 지역상품권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이나 카드결제 정책으로 국가긴급재난기금 지급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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