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분석과 전망] 통합당 리더십의 실패
[정치분석과 전망] 통합당 리더십의 실패
  • 한정석 미래한국 객원기자
  • 승인 2020.04.22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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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 열린 투표함. 우파는 2017년 대선에서 정권을 빼앗긴 후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3번째 참패를 기록했다.
뚜껑 열린 투표함. 우파는 2017년 대선에서 정권을 빼앗긴 후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3번째 참패를 기록했다.

‘승리의 이유는 한 가지이지만, 패배의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라는 말이 있다.이번 4·15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은 자신들의 승리로 ‘이길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들었고, 미래통합당은 ‘질 수가 없는 이유’를 들었다. 민주당은 ‘적폐청산의 시대정신인 야당 심판’을 승리할 이유로 주장했고 통합당은 ‘문재인 정권의 실정’을 승리할 이유로 들었다.

야당인 통합당은 문재인 정권의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이 자기 승리의 요인일 것으로 보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결과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이 국회 전체 의석의 5분의 3을 차지하는 180석을 얻어 103석의 야당인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에 압도적으로 승리했다는 것이다.

이 결과는 통합당과 한국당을 지지했던 많은 보수우파 시민들의 예상과 크게 다른 것이었지만 한편에서는 이런 결과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통합당과 한국당의 패배를 점치는 목소리들은 주류에 속하지 못했다.
 

원칙 없는 통합의 부작용

SNS상에서 일찌감치 통합당 패배를 점쳤던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황교안 대표의 리더십 실패와 원칙 없는 통합의 부작용을 지적해 왔다. 통합을 위해 ‘탄핵의 강을 건너야 한다’던 주장은 통합을 했으니 ‘탄핵의 강은 건넌 것’으로 치부됐다. 이 과정에서 보수 우파 분열의 원인은 해소된 것이 아니라 위장됐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대한 수용과 불복 때문에 보수가 분열되어 있었지만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은 보수 분열을 키우는 것으로 치부됐다. 그러다 보니 공천 인사에서 탄핵을 주도했던 인사 몇몇과 탄핵에 반대했던 인사 몇몇을 보기 좋게 잘라내고 나머지는 섞어찌개를 만드는 손쉬운 공천을 택했다. 심지어 ‘잘려야 한다’고 평가된 친박 핵심들은 ‘험지 출마’라는 카드를 통해 고사시키는 전략을 썼다.

이 때문에 그 지역구에서 표를 다져온 당협위원장 출신 후보들은 경선에서 아예 배제되어 주민들로부터 평가받아 볼 기회마저 갖지 못한 채 정치 생명이 끝났다. 국민들 눈에 이런 ‘돌려막기 공천’이 과연 혁신으로 비쳐졌을까. 원칙 있는 공천을 기대했던 많은 이들에게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의 공천은 원칙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를 바로 잡아야 할 사람은 황교안 대표였다. 황 대표는 ‘잘못된 공천은 바로 잡겠다’고 했지만 그 바로 잡음이란 결국 자기 사람 공천주기라는 비판을 사야 했다. 자유한국당의 2016년 20대 총선이 친박들의 농단에 의한 ‘막장공천’이었다는 비판이 2020년 미래통합당의 21대 총선 공천에서 다시 터져 나왔다.

미래통합당 지도부는 이를 부정했지만 결국 공천 배제로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홍준표, 권성동, 김태호, 윤상현 등은 모두 당선됐고 한강벨트니 퓨처메이커니 하며 전략공천, 단수공천한 곳에서 김형오 공관위가 야심차게 꽂았던 중진들과 신인들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대거 낙선하는 비운을 맞았다.

따라서 일단 공천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지난 1년 전 조국 전 장관 임명에 반대하며 광화문 투쟁에 적극 참여했던 자유한국당 당협위원장들을 아무런 평가나 기준 없이 경선 기회조차 박탈하는 과정에서 수도권에서만 17명의 원외당협위원장들의 항의 시위가 있었다. 미래통합당 내부에 거대한 균열이 발생하고 있었지만 황교안 대표와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은 이를 무시했다.

3월 초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거대 야당으로 단합’이라는 옥중 메시지를 냈을 때 적어도 황교안 대표는 이를 점잖게 거부하는 발언을 했어야 했지만 황 대표는 ‘애국심이 넘치는 메시지’라며 환영으로 받았다. 국민 87%가 탄핵에 찬성했고 수도권 시민 3명 가운데 1명이 탄핵촛불시위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는 통계는 적어도 미래통합당 지도부에는 고려할 만한 가치가 없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유영하 변호사가 박근혜 대통령의 메시지를 들고 미래한국당 입당신청을 했을 때 황교안 대표는 확실한 입장을 내지 않았다. 그 대신 자신이 추천한 인사들이 미래한국당 비례 순위 후반에 있다며 불만을 표시했고 결국 재공천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국민들 눈에는 미래한국당은 공당이 아니라 황교안 대표의 사당(私黨)이라는 인식이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종로 출마를 놓고 말을 바꿨다 마지못해 수락한 황교안 대표의 정치적 감각과 역량은 한마디로 함량 그 자체가 미달이었던 점도 지적된다. 그런 당 대표의 리더십으로 야당의 총선을 견인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무리였다. 결국 황 대표도 그러한 점을 수용해서였는지, 스스로 2선으로 물러났고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에게 전권을 넘기고 자기 사람 지분만 챙기는 조건으로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의 사천에 눈감았다는 비판을 다시 들어야 했다.

이러한 패배의 원인들은 ‘패배한 이유는 여럿’이라는 금언 중에 해당하는 ‘여럿’ 중에 하나다. 그러니 이런 일이 없었으면 통합당은 국민의 선택을 받았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해야 우리는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민주당도 공천에서 잡음은 통합당에 견줘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합당의 패배는 이전의 선거들과 연속선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우선 2017년 대선에서 헌정 사상 최다 실표(失票)로 참패했다.

이후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최다 실패를 기록했다. 이러한 패배에 원인으로 헌정 초유의 대통령 탄핵에 대한 무반성이 지적됐지만 당시 자유한국당은 친박의 세력 하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수용 주장은 일종의 배신이고 굴복으로 치부됐다. ‘변해야 산다’는 주장은 끊임없이 나왔지만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는 단 한 번도 공론으로 전개되지 않았다. 보수 분열의 원인이라는 탄핵이 누구의 책임인가라는 공방은 당의 통합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금기시되었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탄핵이라는 핵폭발로 입은 치명적 방사능 피폭이 제거된 것도 아니었다. 모두가 시한부 삶을 사는 좀비상태라는 점은 부정됐다.

2018년 6월 지방선거 참패 후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 로비에 ‘잘못했습니다’라는 대형 현수막을 걸고 무릎을 꿇고 앉았지만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아는 거냐’는 비야냥을 들어야 했다. 이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민주당과 진보진영은 ‘21대 총선은 적폐청산의 완성’이라는 주장과 함께 듣지도 보지도 못한 ‘야당 심판론’을 내걸었다.

이후 한국당에 박근혜 정권의 대리인이었던 황교안 전 대통령권한대행이 당 대표로 당선됐다. 포수의 총구 앞에 사냥감이 등장한 형국이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황교안 대표는 조국 전 장관 임명 강행을 계기로 광화문 광장 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레드 카펫’ 시비에 휘말렸다. ‘대통령선거 연습을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뜬금없이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국민들 눈에는 그 진정성이 전달되지 못했다.
 

변화에는 운명이 따른다

자유한국당이 대선과 지방선거에 이어 21대 총선에서 대패한 것은 누군가의 눈에는 어쩌면 운명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의 눈에는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연거푸 놓치는 ‘실수의 연속’일 수도 있다. 이렇게 다른 관점의 차이는 탄핵의 수용 여부가 결정하게 된다.

탄핵을 수용하는 이들의 눈에 자유한국당과 그 후신 미래통합당은 변한 것이 없기에 패배는 예정되어 있는 것이지만 탄핵을 수용하지 않는 입장에서는 탄핵이 부당하기에 탄핵된 사실 자체가 의미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문재인 정권은 국민들이 거부할 수밖에 없는 실패한 정치 세력이고 따라서 그 대안으로 자유한국당이 더 우파의 가치를 튼튼히 해야 국민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관점의 차이는 결코 좁혀지기 어렵다. 당장 이번 총선의 비례투표 결과에 대한 해석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은 이번 총선에서 33.8% 득표했고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은 33.4% 그리고 제3열로 만들어진 열린민주당은 5.4%를 얻었다. 일단 이 결과만을 놓고 보면 국민 유권자의 약 60%는 민주당에 표를 주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니 이번 총선이 여권의 압승이라는 해석은 지나치다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같은 논리로 국민 유권자의 약 65%는 미래한국당을 찍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어느 쪽의 주장이 타당할까.

이는 투표하지 않은 이들의 성향이 어느 쪽일지를 아는 것에 힌트가 있다. 이번 총선에서 투표하지 않은 약 34%의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이들은 미래통합당과 더불어민주당 중에 어느 정치세력에 더 우호적일까. 이들에 대한 정확한 해석은 ‘이기는 편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라는 것이다. 결국 정치적 투쟁은 강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겼기에 강해지는 원리가 통용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21대 총선에서 국민의 65%는 보수정당인 미래통합당을 찍지 않았다는 것이 앞으로 전개될 정국을 전망하는 올바른 관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보수우파 진영의 향후 정세가 험난하기 그지없다는 이야기다. 변화에는 운명이 따른다. 보수가 운명을 바꾸려면 제대로 변화해야 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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