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분석] 친중(pro-China) WHO의 굴욕
[국제분석] 친중(pro-China) WHO의 굴욕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0.04.24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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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석 미래한국 객원기자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중국 홍위병으로 풍자한 그림. 너무 친중적인 WHO 에 비판이 거세다. / 데일리스킵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중국 홍위병으로 풍자한 그림. 너무 친중적인 WHO 에 비판이 거세다. / 데일리스킵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14일(현지시간) 세계보건기구(WHO)에 대한 자금 지원 중단을 전격 지시했다. 코로나19의 전파와 확산에 WHO가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대응에 실패했다는 이유였다. CNN 등 미국의 주요 매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WHO가 기본적인 의무를 이행하는 데 실패했으며 이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을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재검토 작업은 코로나19의 확산을 은폐하고 잘못된 대응을 하는 데 있어 WHO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WHO의 모든 일이 중국 중심적”이라고 말했다.

사태가 이렇게 불거진 배경에는 WHO가 코로나19의 중국발 대응 초기부터 중국의 입장을 지나치게 수용한 점이 지적된다. 한마디로 WHO의 늑장 대응이 중국과 특수관계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 미국의 언론들을 통해 계속 제기되어 왔던 것. 대표적인 사건이 코로나19 무증상자의 감염 문제였다.

무증상 감염자에 의한 코로나19의 확산 우려는 초기부터 홍콩 연구진을 통해 제기됐다. 위안궈융(袁國勇) 홍콩대 교수 등은 의학전문지 랜싯에 10살 소년의 무증상 감염 사례를 소개했다. 연구진은 “이런 수수께끼 같은 환자들이 우한 폐렴 전파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가 제기되자 WHO는 입장을 내놨지만 지극히 모호했다. 크리스티안 린트마이어 WHO 대변인은 지난 1월 28일 유엔 제네바 사무소에서 “아직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어 조사가 좀 더 필요하다”고 전제한 뒤 “우리가 현장 의료진으로부터 알아낸 것은 잠복기가 1~14일이라는 점”이라며 감염자가 어느 정도의 증상을 보여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는지는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첫 발병이 보고된 건 지난해 12월. 하지만 WHO는 거의 한 달이 지나서야 긴급위원회를 소집했다. 하지만 발표는 이례적이었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은 지난 1월 22일 “중국 내에서는 비상사태이지만 아직 국제적인 보건 비상사태는 아니”라고 발표했다. 이런 입장이 예외적으로 평가된 이유는 WHO가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A(H1N1), 2014년 파키스탄 카메룬 시리아 등에서 급속히 퍼졌던 소아마비,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 2016년 지카 바이러스 사태에서 WHO가 발병 보고 즉시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기 때문이다. 특히 1월에는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가 끼어 있어 수많은 중국인이 국내외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WHO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WHO에 대한 불신은 코로나19에 대한 보고서에서 다시 한번 불거졌다. 1월 23일 올린 보고서에서 신종 코로나 위험 수준을 ‘보통’으로 표기했다가 26일 갑자기 ‘높음’으로 바꿨기 때문. WHO는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처음부터 판단을 잘못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샀다. 여기에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은 뒤늦게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WHO는 중국의 통제 능력에 대한 신뢰감을 계속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WHO에 따르면 이날 신종 코로나 감염 확진자는 전 세계적으로 7834명에 달한 상태였다. 중국에서는 사망자 170명을 포함해 7736명이, 그 외 지역에서는 18개 나라에서 98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가운데 독일, 일본, 베트남, 미국 등 4개국에서 사람 간 전염 사례가 8건 나온 상황이었다.

결국 비상사태 선포가 늦었다는 지적이 잇따랐지만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도 “이번 선포의 주된 이유는 중국 때문이 아니라 다른 나라”라며 “중국에 대한 불신임 투표가 아니다”라고 설명해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샀다. 중국은 코로나19에 대한 엄격한 보도 통제와 확진 통계, 사망자 발표들을 이미 통제하고 있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 시점이었던 것.
 

다자간 국제 질서, 문제는 中國 자신

‘아프리카의 중국’이라 불리는 에티오피아 보건장관 출신의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은 중국과 일종의 ‘특수관계’가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당시 WHO 사무총장은 데이비드 나바로 전 WHO 에볼라 특사가 유력했다. 게브레예수스 현 사무총장이 그를 제치고 WHO 사무총장에 선출된 것은 중국의 지원 덕이었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중론이다. 중국이 막강한 자금력을 내세워 개발도상국들을 상대로 게브레예수스 지원 운동을 벌였던 것. 2017년 WHO 사무총장 선거에서 게브레예수스를 밀었던 중국은 WHO에 향후 10년간 600억 위안(약 1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발표해 저개발국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다.

2014년 블룸버그 통신은 ‘에티오피아, 제2의 중국으로 탈바꿈’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에티오피아가 중국의 대아프리카 원조 최대 수혜국이라는 점을 집중 보도했다. 2016년 9월 기준 에티오피아에 진출한 중국 기업만 900개가 넘었다. 중국 공산당의 자금 지원으로 이 기업들은 에티오피아 도로 건설의 70% 이상을 수주했고 철도, 통신, 에너지, 섬유 산업에도 진출했다.

중국의 지원으로 사무총장에 당선된 데다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 이후 WHO 지원을 축소하는 상황에서 WHO가 자금줄인 중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WHO는 지난 2017년 시 주석의 제안을 받아들여 ‘보건 실크로드’를 구축하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나아가 2017~2019년 연례총회(WHA) 당시 대만을 초청하지 않고 대만 언론의 취재 신청도 거부했다.

중국의 WHO 장악 의도는 다분히 미·중간, 국제질서 헤게모니를 놓고 벌어지는 강대국 간의 경쟁 전략인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일방통행하겠다는 입장이고 여기에 중국은 다자간 질서를 이용해 미국을 견제하려는 전략이 충돌하는 모습이 WHO의 코로나19 늑장 대응과 중국 옹호로 불거지고 있는 현실로 등장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창출하기 위해 EU나 일본과 같은 나라들과 연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는 중국 내부의 정치 질서와 통치 체제의 비민주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적어도 중국에 서방 자유민주국가들처럼 언론과 표현의 자유,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시스템에서 시 주석 1인 통치체제는 민주적 통치구조를 가진 유럽이나 캐나다, 호주 일본과 같은 나라들로부터 끊임없는 불신을 얻기 때문이다. 중국은 과연 보편적인 세계질서를 창출할 능력이 있는 것일까. 그 해답이 WHO의 미래와 인류의 복지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중국 인민들이 깨달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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