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분석] 이삭 줍는 2중대와 힘겨운 작물화의 길
[정치분석] 이삭 줍는 2중대와 힘겨운 작물화의 길
  • 김광동 미래한국 편집위원, 나라정책연구원장
  • 승인 2020.04.30 0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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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총선. 자유와 보수 가치를 내세운 세력은 중도 지지를 받겠다는 데 총력을 기울였지만 결과는 190 vs 110로 결론 났다 유시민의 180석 장담은 현실화를 넘어 오히려 초과되었다. 보기 힘든 66%가 넘는 투표율도 놀라웠지만 극명했던 총선 결과는 이긴 쪽과 진 쪽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결과를 좌우한 것은 국회 의석 절반을 점유한 수도권 121석의 향방이었다. 민주당은 무려 104석을 석권했고 통합당은 16석에 머물렀다. 보수 측이 서울 25개구 중 서초구청장 단 1석만 건져냈던 2018년 지방선거의 재판(再版)이자 완벽한 궤멸이었다. 2016년 총선, 2017년 대통령선거,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4회 연속 선거참패라는 유래를 찾기 힘든 기록도 함께 남겼다.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한다. ‘선거에서 과연 중도가 있는가?’ 좌파는 중도의 ‘중(中)’자도 거론하지 않았다. 진보좌파는 중도에 연연 않고도 계속 승리하는데 중도에 목을 맨 보수우파는 매번 참패하고 있다. 중도층이 실제 있었다면 중도를 지향한 우파가 이겼어야 한다.

비례대표 지지에서 좌파적 민주당 지지율 33.4%를 제외하더라도, 중도와 극대칭에 서 있던 정의당과 열린민주당 지지율만도 각각 9.67%, 5.42%로 보수정당 지지율의 절반에 달하는 15% 넘는 지지를 얻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노선에 대한 심판을 요구했지만 국민 다수는 오히려 보수정당을 심판했다. 보수당이 문재인 정부를 탄핵하고 끌어내리겠다고 했지만 끌어내려지고 ‘탄핵’당한 것은 오히려 보수정당이었다.
 

중도 깃발 들고 간판 내걸면 다수의 고객이 찾는다는 착각과 안이함 벗어나야

참혹한 선거 결과를 보며 떠오른 것은 J. Diamond의 <Guns, Germs and Steel>에 나오는 내용이다. 다른 의견도 있지만, 절대 동의하는 것은 인류문명의 시작과 번성은 인류가 식물을 작물화하고, 동물을 가축화하면서 시작되어 비약했다는 내용이다. 마찬가지 비유를 들면 자유우파는 국민을 대상으로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정책에 대한 지지자를 육성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유우파는 스스로 작물화와 가축화라는 노력과 비용을 치르지 않고 좌파 따라다니며 이삭줍기하려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타성에 젖어 정치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제1중대에 길들여 있는 상황이다. 중도라는 깃발 들고, 간판 내걸면 다수의 고객이 찾는다는 착각과 안이함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진보좌파의 작물화와 가축화에 맞서 보수우파도 스스로 작물화와 가축화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설사 이겼다고 해도 이긴 것이 아니고, 2중대가 되어 단지 좌파정책을 완화된 형태로 대신 수행하는 정부에 머물게 될 뿐이다.

1중대에 길들여 끌려 다니지 않기 위해서는 자유보수는 자신들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정책을 공유하고 공감을 확대하는 작물화 작업에 나서야 한다. 다수 지지 세력이 존재하므로 그 세력으로부터 지지를 받으면 된다는 환상부터 부숴버려야 한다. 누구의 가치와 이익을 대변할 것인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중도를 지향하면 보수와 중도가 합쳐 선거를 이길 수 있다는 성립되지 않는 인식구조부터 폐기해야 한다. 좌파가 가구당 100만 원씩 나눠줘야 한다고 할 때 우파는 50만 원씩만 나눠주자고 하고, 대북지원을 1조 원 하자고 할 때 5000억 원만 하자고 하는 길들인 2중대 의식을 거둬내야 한다. 2중대는 결코 국민을 감동시킬 수 없을 뿐더러 적극적 지지층을 형성할 수도 없다.

자유우파가 가는 길은 전혀 달라야 하고 이삭 줍는 일을 청산해야 한다. 우선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는 스스로 지향하는 가치와 정책을 함께 하고 지지할 세력을 형성하고 확장시켜 그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를 명확히 해야 한다. 청년수당이니 실업수당이니 하는 복지 타령하는 세력에게는 눈길조차 주어서는 안 된다. 그건 2중대의 행태이다.

새벽에 지하철을 타고, 혹은 막히는 길을 뚫고 힘겹게 출근하는 직장인을 바라보고 가야 한다. 앞치마를 두르고 베이커리와 커피집을 운영하는 소상공인을 바라보고 가야 한다. 새벽에 출근하는 사람이 새벽까지 술 먹는 사람을 위해 세금 내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출근하는 사람이 훨씬 많고 세금 내는 사람이 다수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어려운 환경에 땀 흘려 일하고 세금 내는 사람을 존중하고 지원하는 그 길을 가야 한다.
 

김광동 미래한국 편집위원, 나라정책연구원 원장
김광동 미래한국 편집위원, 나라정책연구원 원장

보수우파는 노선과 정책 아닌 행태와 이미지에서 진 것

또한 보수우파는 파괴적 자해행위를 그만둬야 한다. 노선과 정책에서 진 것이 아니라 행태와 이미지에서 진 것인데 행태와 이미지는 그대로 두고 노선과 정책만 바꿔온 것이 현실이다. 같은 트로트(trot)라도 누가 부르냐에 따라 전혀 다르다. 만약 송가인과 임영웅 혹은 영탁과 이찬원이 아니라 설운도와 송대관이 다시 나와 불렀다면 지난 2년간 트로트의 재발견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보수가 외면 받는 이유가 자유가치와 보수정책에 대한 불신이라고 여기며 스스로 낙인찍고 폐기하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다. 낡은 인물과 행태, 구태적 방식은 바꾸려 하지 않고 오히려 결연히 지켜가야 할 가치와 정책을 포기하며 2중대의 길을 걸어왔다. 지난 20년 자유우파 정당의 역사는 가치와 노선의 폐기 과정이었다. 1중대에 스스로를 바치는 과정이자, 1중대가 2중대를 접수하는 과정이었다. 총선 이후 지금도 정확히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본인들도 옹호하지 않는 가치를 누구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동참을 요구할 것인가? 본인이 자랑스럽고 당당히 여기지 않는 정책을 과연 누구에게 함께 가자고 할 수 있겠는가? 명확히 해야 할 것은 이삭 줍는 2중대의 길을 포기하고 자유우파 본연의 길을 열어가는 것이다. 중도 깃발을 내건다고 찾아오는 중도는 없다. 중도란 원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고 남아 있는 세력이다.

지지세력은 만들어내는 것이다. 남다른 척하면서 신주단지 같은 원론만 반복하고 고담준론 펼친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 결코 알아주지 않는다. 그것은 자해는 아니더라도 자위일 뿐이다. 오직 밑바닥까지 들어가 우리가 함께 가야 할 국민을 우리 스스로 형성하고 결집시켜내는 길만을 묵묵히 가야만 한다.

김광동 미래한국 편집위원. 나라정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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