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한국 의료의 길] 한국은 방역 우수 국가인가?
[코로나 이후 한국 의료의 길] 한국은 방역 우수 국가인가?
  • 노환규 미래한국 편집위원·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 승인 2020.05.12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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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11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지구촌에 처음 등장한 이후 불과 6개월 사이에 지구촌을 그야말로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5월 5일 기준으로 전 세계 213개 국가에서 360여만 명이 감염된 것으로 확인되었고 그 중 25만여 명이 사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사스(SARS)나 메르스(MERS)와 같은 기존의 코로나바이러스와는 달리 어느 순간 사라지거나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그런데 국가들마다 신종 코로나의 성적표가 크게 다르다.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가 또는 중국과 같은 나라의 경우에는 관련 통계의 정확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관련 통계의 정확성을 어느 정도 담보할 수 있는 서구 국가들과 아시아 국가들의 통계 수치에서도 매우 큰 차이가 발견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수와 사망자수를 기록하는 나라는 미국으로 5월 5일 현재 확진자수 121만 명, 사망자수 7만 명에 달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가장 많은 피해가 발생한 국가는 이탈리아(2만9000여 명 사망), 스페인(2만5000여 명 사망), 프랑스(2만5000여 명 사망), 영국(2만8000여 명 사망) 등이다. 이 선진국들이 신종 코로나 사망 순위 1위부터 5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중에서도 프랑스는 사망률이 무려 20%에 가까운 19.1%를 기록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수치는 우리나라 사망률의 8배이고 전 세계 평균 치사율의 2.7배에 달하고 있다.

지난 2월 하순부터 3월 초까지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면서 한때 전 세계 신종 코로나 발생 2위 국가의 오명을 썼던 대한민국은 3월 중순부터 소강 상태를 보이다가 4월 초부터 급격히 신규 확진자가 감소해 5월 5일 현재 확진자 순위 37위, 사망자 순위 39위로 내려앉았다.

5월 5일 현재 신종 코로나에 대한 대한민국의 통계는 총 확진자 1만804명, 사망자 254명이다. 그런데 그 사이 유럽과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가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피해가 커지면서 대한민국은 상대적으로 ‘감염병에 우수하게 대처한 나라’로 평가받게 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총 확진자수는 위에서 열거한 유럽국가들의 약 1/20이고 사망자수는 1/100에 불과하다. 그러자 대한민국이 우수 방역국이라는 말들이 나오게 되었고 여당은 이것을 4.15 총선 전략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이 세계 2위의 신종 코로나 발생국가에서 짧은 기간 30위 밖으로 떨어지자 사람들은 묻기 시작했다. “한국은 방역 우수국가가 맞나요? 그리고 한국의 방역에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줄 수 있나요?”
 

한국 의료진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그나마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서구에 비해서는 우수, 예방주사를 맞은 나라 중에서는 낙제 국가

위 질문에 답을 하려면 ‘코로나 예방주사’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신종 코로나 백신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는데 코로나 예방주사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바로 2003년 26개 국가를 휩쓸었던 사스(SARS)와 2015년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렸던 메르스(MERS)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다. 둘 모두 이번에 등장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코로나바이러스다. 2015년 메르스가 한국에서 발병했을 때 우리나라는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랐다. 첫 환자가 5월 20일 발생했는데 그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에서 수십명을 감염시켰다는 사실이 뒤늦게 처음 공개된 것은 첫 진단일로부터 무려 18일이 지난 6월 7일이었다.

지금은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환자의 동선 공개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투명하고 발빠른 정보 공개가 기본이 아니었다. 무려 18일 동안 정보가 차단된 사이 1번 환자로부터 평택성모병원에서 감염된 수십 명의 환자는 자신이 감염되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전국의 여러 병원으로 퍼져나가 바이러스를 퍼뜨렸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60명이 넘는 사람을 감염시킨 슈퍼전파자 14번 환자도 그 중 하나였다. 지금은 상식이 된 정보 공개와 광범위한 격리가 이런 뼈아픈 경험을 통해 얻게 학습된 것이다. 메르스라는 예방주사를 맞음으로써 신종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 사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전 연습이 가능해진 것이다.

만일 우리나라가 메르스라는 예방주사를 맞지 않은 상태에서 2020년 신종 코로나 사태를 맞았다면 우리는 유럽과 유사한 재앙을 맞았을 것이 확실하다. 얼마나 아찔한 일인가. 당시 알지 못했지만 2015년 대한민국은 2020년 신종 코로나 감염을 앞두고 2015년 매우 중요한 예방주사를 맞은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예방주사를 맞은 나라들이 또 있다. 2003년 사스가 유행한 나라들이다. 2003년 사스는 다행히 우리나라는 비켜갔지만 홍콩, 대만, 베트남에서는 적지 않은 사상자를 냈다. 대만은 한때 중국의 사스 발생 숫자를 추월하기도 했다. 사스에 혼이 난 이 나라들은 감염병 방역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에 들어갔다. 2020년 이 국가들이 신종 코로나의 모범 방역국이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사스와 메르스라는 예방주사를 맞는 나라들의 성적표를 들여다보자.

우리나라의 신종 코로나에 대한 방역 성적표는 유럽국가들에 비해 우수하지만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코로나바이러스의 예방주사를 맞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하면 매우 성적이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실로 부끄러운 수치다. 차이를 만든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신종 코로나 감염 초기에 감염원인 중국의 문을 철저히 닫았느냐 활짝 열어놓았느냐의 차이였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일부 언론으로부터 “한국이 대응을 잘했다”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것은 지역사회전파에서 시작된 집중감염의 위기 상황을 맞은 나라 중에서 여타 서구국가들처럼 재앙의 수준으로 확대되지 않고 확진자 1만 명 초반대, 사망자 200명 초반대를 유지하면서 신규 발생을 효과적으로 억제해왔기 때문이다. 정치가 감염원의 문을 열어놓아 시작된 재앙의 위험을 시민과 의료진이 틀어막은 셈이다.

의료계 내에서는 이를 빗댄 두 가지 비유가 있다. “청와대가 창문을 열어 놓아 쏟아져 들어온 모기를 시민과 의료진 그리고 질병관리본부가 잡아냈다”는 것이 그 하나의 비유이고, “청와대가 뚫어놓은 천장에서 새는 빗물을 시민과 의료진 등이 막강한 걸레질 실력으로 닦아냈다는 것”이 또 하나의 비유다. 어느 쪽이든 씁쓸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5월 6일부로 생활속 거리두기로 완화했다.
정부는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5월 6일부로 생활속 거리두기로 완화했다.

K-POP에 이은 K-의료? 기회 놓친 의료강국 홍보 기회

이번 감염사태를 통해 대한민국은 ‘선제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성공적으로 둔화시킨 나라’로 알려졌다. 그래서 “신종 코로나 사태를 통해 한국 의료의 우수성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됨에 따라 K-POP에 이어 K-의료가 뜨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세계 각국이 한국산 진단기기와 한국산 개인보호장비를 찾는 것은 맞다.

심지어 직업이 의사인 필자에게까지 해외의 바이어들이 한국산 진단기기와 개인보호장비를 구할 수 없느냐고 문의가 올 정도이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한국산 진단기와 개인보호장비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데는 한국 의료의 우수성이 홍보되었기보다는 다른 이유가 크다. 그 첫째 이유는 중국산 장비들의 조악성에 대한 반사이익이다.

감염발생국인 중국은 신규 확진자의 출현이 뜸해지자 감염발생국의 오명을 벗기 위해 그리고 외교적 목적으로 신종 코로나 감염이 확대되는 국가들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진단기기와 개인보호장비를 대거 보냈다. 그러나 진단기기는 그 부정확성으로 인해 여러 국가들에서 반품되기 일쑤였다. 이를 통해 “중국 의료기는 못 믿을 제품”이라는 인식이 짧은 기간 확산되었고, 상대적으로 한국산 의료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게 된 것이다. 둘째 이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진단기기를 생산하는 민간업체들의 발빠른 대응’이다.

감염원 중국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던 덕택(?)에 우리나라는 2월 하순부터 3월 초순까지 세계 2위의 신종 코로나 발생국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검사’를 통해 확진자를 조기에 가려내 격리시킬 수 있었는데 그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검사할 수 있는 진단기기가 감염 초기에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 역시 메르스 예방주사의 효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한국산 진단기기와 개인보호장비 등에 대한 신뢰와 수요는 크게 늘었지만 이것이 한국 의료 전반에 대한 신뢰도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는 것은 지나치게 앞선 생각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는 한때 제2의 신종 코로나 발생국으로 중국에 이어 두 번째 많은 환자들을 보유함으로써 신종 코로나에 대한 임상경험 등 다양한 연구논문을 발표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이 정체가 불분명한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를 목말라하며 한국에서의 상황을 주목하고 연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우리나라는 마땅한 연구 논문들을 생산하지 못했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기록하고 있는 2.35%의 사망률(5월 5일 기준)도 신종 코로나가 창궐한 서유럽국가들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치이고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일본보다도 낮은 수치이지만 확진자 1만 명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나라 중에서도 싱가포르(0.1%), 카타르(0.1%), UAE(0.9%) 등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라서 신종 코로나에 대한 대처를 두고 “대한민국의 의료가 우수하다”라고 자랑할 상황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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