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한국 의료의 길] 이제 의료자원은 국가 전략 물자다
[코로나 이후 한국 의료의 길] 이제 의료자원은 국가 전략 물자다
  • 노환규 미래한국 편집위원·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 승인 2020.05.1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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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 전염병 확산에 대비하여 의료자원은 국가 전략물자 차원으로 확보해야 한다.
전세계적 전염병 확산에 대비하여 의료자원은 국가 전략물자 차원으로 확보해야 한다.

2월 말에서 3월 초 한때 전 세계 2위의 신종 코로나 감염국이었던 대한민국은 5월 5일 현재 37위까지 떨어진 상태이고 이 순위는 앞으로 더 떨어질 전망이다. 단편적으로 설명하면 청와대가 감염원을 차단하지 않음으로써 세계 2위의 오명을 썼다가 시민들의 자발적인 능동적 격리와 사회적 거리 두기의 적극적 동참(특히 강제적 도시봉쇄 없이도 스스로 자가봉쇄를 결행한 대구 시민들),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현장을 지킨 의료진들(특히 물밀듯이 몰려든 자원봉사 의료진들), 몸이 녹아나도록 최선을 다한 질병관리본부 직원들과 관련 부처 공무원들 덕택에 서구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담한 재앙을 그나마 피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비공식 집계이기는 하나 우리나라 의료진들의 자원봉사 참여율이 OECD 국가 중 최고였다는 언론의 보도도 있었을 정도다.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등 서구와의 피해 통계를 비교해 보면 서구에서는 현재 많은 사망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5월 5일 기준 피해 숫자로 보면 신종 코로나의 최대 피해자는 단연 미국이다. 120만 명이 넘는 확진자와 7만 명 가까운 사망자를 냈다. 인구 100만 명당 3664명의 확진자와 211명의 사망자를 낸 것이다.

한때 세계 최고의 신종 코로나 급증세를 보였던 이탈리아는 인구 100만 명당 확진자수는 3505명으로 미국과 비슷하지만 100만 명당 481명이 사망해서 사망 빈도는 미국의 2배가 넘는다. 그러나 스페인은 인구 100만 명당 5311명의 확진자와 544명의 사망자를 내 이탈리아의 피해 규모를 앞지른다.

그런데 최악의 상황은 오히려 벨기에에서 벌어지고 있다. 벨기에는 인구 100만 명당 확진자수는 스페인에 조금 못미치는 4337명이지만 100만 명당 무려 684명의 사망자를 내고 있다. 인구대비 세계 최고 수치다. 뿐만 아니라 확진자 대비 사망자, 즉 치사율도 15.8%로 세계 최고의 치사율을 기록하고 있는 프랑스(19.1%)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은 확진자수와 사망자수가 각각 211명과 5명이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현재를 기준으로 벨기에 살고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보다 신종 코로나에 감염될 확률이 약 20배, 사망할 확률은 137배 높다. 거꾸로 말하면 대한민국에 사는 것이 벨기에에 사는 것보다 137배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어 냈을까. 여기에는 수많은 요소들이 들어 있다. 노인 인구의 구성비율, 의료제도, 감염 차단정책의 실효성과 여기에 영향을 미친 집단의 문화 등이다. 일부는 공공의료를 앞세운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에서 특히 피해가 컸다는 점을 들어 유럽의 공공의료제도가 감염관리의 실패를 초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는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이 모두 국영 의료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국가들인데 공무원화 되어 있는 의료진들의 안이한 대응이 화를 불러왔다는 주장이다. 특히 이탈리아, 영국 등은 낮은 보수 등으로 인해 의료 인력의 이탈이 많은 국가들이기 때문에 한편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민간의료제도가 주를 이루는 미국과 벨기에에서도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 않다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이번 신종 코로나 감염병 관리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순서적으로 나열하면 정치적 결단(의료 기반이 취약한 그리스는 빠르고 강력한 조기감염차단정책을 통해 신종 코로나를 효과적으로 억제했다. 베트남, 홍콩, 대만 등이 정치적 결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증명하는 사례다), 마스크, 시민의식과 문화, 의료산업의 인프라, 의료수준 등의 순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의료수준에는 의료인의 수준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20여 년 전부터 우리나라는 의과대학의 입학 커트라인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기현상이 유지되었다. 즉, 전국의 모든 의과대학이 상위 이공계 학생들을 모두 싹쓸이한 것인데 전국의 40여 개 의과대학 중 가장 낮은 커트라인이 서울대 공대의 커트라인을 넘어서는 현상이 20여 년 유지된 것이다.

다양한 원인이 있었겠지만 이렇게 가장 우수한 최고의 자원들이 장기간 의료계에 집중적으로 몰렸다는 사실 자체가 의료계가 뛰어난 잠재적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시사하고 동시에 의료계가 앞으로 국가 사회를 위해 어떤식으로든 기여를 해야 하고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책무가 있음을 알리고 있다. 이번 신종 코로나 대응에 있어서 일선 의사들의 실력과 헌신은 빛났다.

비록 스탠퍼드 대학병원이 10여 년 전 아이디어를 낸 것이지만 자동차를 탄 채 검사를 받음으로써 감염의 위험을 크게 줄인 소위 ‘드라이브 스루 검사’도 대한민국의 의사가 제안해 전 세계 처음으로 실행되었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대한민국 의료진들은 감염 초기부터 마스크 착용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이것은 감염 확산의 방지에 큰 몫을 했다. 또한 대한의사협회는 감염 초기부터 중국발 입국자의 입국 금지를 통한 감염원 차단 등 강력한 선제적 대응을 주문해왔고 고비 때마다 수차례의 대국민 기자회견 및 성명서 발표를 통해 시의적절한 목소리를 냈다.

3월 말 우즈베키스탄 정부에서 한국인의 입국금지조치가 내려진 상태에서도 신종 코로나 대응을 위해 대한의사협회 과학검증위원장인 최재욱 교수를 국가자문관으로 특별히 초빙해 4주간 매일 자문을 받은 후 귀국을 위해 특별 전세기를 띄운 것은 신종 코로나 사태에서 높아진 한국 의료의 위상을 상징하는 사례였다. 임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구 활동이 다소 미진했던 것이 아쉬우나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의료진들의 실력이 대재앙을 회피하는 데 크게 한몫 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까

① 대외적 변화 - KOREA 브랜드 향상에 제한적 긍정적 효과 전망

결론적으로 신종 코로나 사태로 본 한국의 방역 성적은 이중적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예방주사를 맞은 국가 중에서는 유일하게 감염이 창궐해 낙제점인 반면(이 때문에 지금 현 시점에서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로부터 입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나라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한 나라 중에서는 감염의 확산 저지와 사망자 억제 능력에 대해 매우 우수한 성적을 보여줬다. 특히 주로 선진국들로 이뤄진 다른 방역 실패국들과 비교할 때 피해의 수치는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이것은 신종 코로나 사태가 진정이 된 이후 냉정하게 평가받을 것이다. 그리고 높은 오류율을 보인 중국의 진단기기와 허술한 중국의 개인방호기기 등 중국의 실패와 더불어 한국산에 대한 신뢰도는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것이 대한민국 의료수준의 높은 평가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대한민국의 의료수준은 이미 20여 년 전부터 높았지만 그동안 저평가되어 있었고 신종 코로나 사태도 한국의 높은 의료수준을 홍보할 기회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만일 초기에 청와대가 성공적으로 감염원 차단을 실행해 베트남이나 대만처럼 감염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었더라면 OECD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우수방역국으로 주목받았을 것이다. 그 기회는 지나갔다. 신종 코로나 사태가 향후 의료관광의 활성화에 기여할 부분은 미미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뜻이다.

② 대내적 변화 - 원격의료의 본격적인 등장과 좌파정부의 공공의료 확대 압박 등으로 인한 의·정 갈등 심화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이 시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원격의료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정부는 현행법상 불법인 전화 처방을 한시적으로 허용했고 이에 대해 의료계가 “원격의료의 시동을 거는 것이냐”고 반발하자 “원격의료를 추진할 계획이 없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 사태가 고비를 넘자 정부는 의료계가 우려했던 대로 원격의료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의사를 나타냈다.

최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원격의료 등 비대면 산업에 대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측면에서 추가 규제 혁파에 속도를 내겠다”고 예고한 바 있고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국회에 계류 중인 원격의료법 개정과 관련해 많은 사람이 필요성을 절감하며 논의의 차원이 달라졌으므로 21대 국회에서 속도감 있는 논의가 이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최근 제1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경제 중대본) 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코로나19 사태로로 지난 2월 24일 전화 상담과 처방을 한시적으로 허용한 결과 지난 19일까지 13만 건 이상이 있었고 별다른 오진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또한 산하 보건연구기관 등을 통해 원격의료 관련 과제를 주문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보건산업진흥원을 통해 370억 원 규모의 ‘국민건강 스마트관리 연구개발 사업’이라는 이름의 국책연구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것은 비대면진료(원격진료)의 의원급 구체적 모형 개발, 스마트 기술을 연계한 건강관리서비스와 1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서비스 모형 개발 등으로 원격의료가 사업의 핵심이다.

이처럼 정부는 원격의료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으나 이것은 의료계 특히 의원급 의료기관의 강한 반발에 부딪힐 전망이다. 의료계의 반발은 2009년 이명박 정부와 2013년 박근혜 정부가 각각 원격의료를 추진한 것에서 기인하는데 특히 2013년 박근혜 정부는 디지털 헬스케어가 아닌 대면진료를 대체하는 ‘휴대폰 진료’를 들고 나와 일방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이때 “원격의료는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의료계 내부에 팽배해졌고 이 인식은 단기간에 바뀌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2013년 의사협회는 여러 시민단체와 여론의 지지를 받으며 원격의료의 파고를 넘을 수 있었으나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찾아올 원격의료의 새로운 파고는 매우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의료계는 한편 공공의료 확대 압박이라는 거센 도전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외교경제분야의 각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 사태가 전 세계 대부분 국가들에서 거대 정부의 등장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에 견해를 같이 하고 있다. 공공의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각국 정부가 취하는 초법적인 조치들에 대해 국민이 용인하면서 정부의 권한이 커질 것을 예상하는 것이다.

의료분야에서도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에서 공공의료시스템이 얼마나 감염병의 위기 상황에 취약한지 여실히 드러났지만 그 또 한편에 ‘강력하고 거대한 정부’의 등장은 그 자체가 공공의료 확대의 우려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그 목소리를 이미 나오고 있는데 의료분야의 대표적인 진보학자인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최근 한겨레신문에 ‘민간병원 덕분이라는 거짓’이라는 제목의 기고를 통해 신종 코로나 감염병 관리에 민간병원의 기여가 적었다면서 “대규모 환자 발생에 대비하여 즉각 병상을 동원할 수 있는 감염병 진료체계가 필요하다”며 “70개 진료권 중 제대로 된 공공병원이 없는 17개 진료권에 공공병원을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해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한국 의료가 나아갈 방향

결론적으로 신종 코로나 사태는 K-MED에 대한 제한적 홍보효과 그리고 의정 갈등의 촉발이라는 그리 밝지 않은 전망을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위안이 되는 소식도 있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는 것은, 적어도 감염병에 관한 한 전 세계에서 매우 안전한 나라에서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사실이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를 통해 확인되었다. 권력자가 감염원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감염이 통제된 국가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신종 코로나 사태는 적어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가 경험하지 못한 초유의 비상 사태다. 미국만 해도 불과 두 달의 기간 동안 사망한 미국인의 숫자가 미국이 10여 년간 치른 베트남 전쟁의 미군 사망자 숫자를 넘어섰다. 그 누구도 이런 비극적 사태를 예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충분한 개인보호장비, 충분한 의료시설, 충분한 의료진을 준비해 두지 못했다.

이번 사태를 통해 방역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라들은 유사시를 대비해 충분한 의료자원을 확보해두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그것은 경제적 관점에서는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2019년 말 등장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2020년 지구촌을 본격적으로 때리고 있지만 인류를 위협하는 또 다른 새로운 바이러스가 등장하지 말라는 법도 없는 상황이다. 결국 우리는 앞으로 불안과 위기를 완전히 떨치고 살아가기 어려운 전망이다.

한국 의료가 가야 할 길을 크게 3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앞으로는 의료자원의 확보를 전쟁물자확보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따라서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둘째, 정부는 예상되는 의.정 간의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 신종 코로나 사태와 잠재적인 또 다른 감염병 관리는 단기 과제가 아닌 장기적인 과제다.

정부는 원격의료와 공공의료 확대 문제를 일방적 추진이 아닌 의료계의 동의 아래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제한적이나마 신종 코로나가 길을 터놓은 K-MED의 브랜드 확장을 위해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국내 진단기기업체들이 개발한 항원항체검사 (신속진단검사) 키트의 경우 여러 기업들이 해외 각국의 사용 허가를 득해 수출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작 국내에서는 단 하나의 기기에 대해서도 사용 승인을 하지 않고 있는 어이없는 상황이 지금 의료현실이다. 정부가 정경유착이라는 비판을 들어가면서까지 민간업체에 날개를 달아주던 때가 대한민국이 고속성장을 하던 시기였다.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날개를 꺾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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