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 이후 한국 의료의 길 ] 한국의료 경쟁력, 산업화로 결실 거둬야
[ 코로나 이후 한국 의료의 길 ] 한국의료 경쟁력, 산업화로 결실 거둬야
  • 한정석 미래한국 객원기자
  • 승인 2020.05.1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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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진단키트 수요가 급증하면서 한국산 진단키트는 106개국에 2000억원어치 넘게 수출됐다/. 연합
COVID-19진단키트 수요가 급증하면서 한국산 진단키트는 106개국에 2000억원어치 넘게 수출됐다/. 연합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국을 강타했을 때 세계는 한국을 ‘제2의 우한’으로 취급했다.연일 치솟는 확진자 증가세로 한국은 100여 개가 넘는 국가로부터 입국금지를 당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평가는 오래 가지 않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구촌에 대유행하기 시작한 지난 4월 들어 한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은 극적으로 안정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의료 선진국이라는 미국도 확보하지 못했던 속성 코로나 바이러스 검진 키트와 ‘드라이브 스루’ 검진이라는 창의적 해법으로 확진자 통제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검진 기술과 장비는 세계 각국으로부터 크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코로나 유행이 시작된 연초부터 현재까지 국내산 진단 키트는 총 106개 국에 2000억 원 이상 수출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달 5월 들어 국내 진단 기업 3곳(오상헬스케어, 씨젠, SD바이오센서)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긴급 사용 승인을 받아 수출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도 기대되고 있다. 국가별로는 브라질이 1924만 달러로 가장 많았다. 전체 수출 물량의 12.3%에 달했다. 뒤이어 미국 1559만 달러(9.9%), 이탈리아 1488만 달러(9.5%), 폴란드 953만 달러(6.1%), 인도 869만 달러(5.5%), 러시아 761만 달러(4.9%), 스페인 754만 달러(4.8%) 순으로 전 세계 106개 국에 수출된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 의료기기들이 이렇듯 실력을 드러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현재 5%대에 머물고 있는 의료기기 국산화율을 개선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있었다.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머지않은 시기에 중국의 의료기기가 국내 의료시장을 석권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는 인식이 의료 산업계와 정부에 있었다. 2011년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된 의료기기 국산화 정책은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구체화됐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10억 개 정상세포에 숨은 단 하나의 암세포도 식별할 수 있는 초정밀 진단기기, 인체 거부 반응을 줄인 생체물질 코팅 삽입형 기기, 머리카락 굵기 절반 수준의 절개가 가능한 정밀수술로봇 등…’과 같은 정밀 의학기기 분야 개발에 연구·개발(R&D) 총 예산의 30% 이상을 집중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2020년까지 시장점유율 기준 세계 7대 의료기기 강국으로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코로나 위기로 드러난 한국 의료기술 경쟁력

가령 병원에서 흔히 사용되는 MRI나 CT는 사람 몸속의 뼈나 장기를 촬영해 질병의 유무를 진단하게 된다. 이 같은 의료장비에 빅데이터와 딥러닝으로 무장한 인공지능을 접목하면 의사들은 더 빠르고 정확한 진단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이런 첨단 의료기기를 심사하거나 관리할 수 있는 전담부서가 없어 임상 현장에서는 여전히 외면 받고 있는 점이 지적된다.

이런 제도적, 법적 문제들이 해결된다고 해도 국산 의료기기를 개발하려는 회사들 입장에서는 또 다른 어려움이 존재한다. 의료기기 임상실험을 하려면 병원의 협조를 얻어야 하는 점이다. 문제는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 의사들로서는 하루 100명에 가까운 환자들을 봐야 하는 현실이다. 여기에 낮은 의료보험 수가는 병원으로 하여금 국내 의료기기 개발사와 협력을 유도하는 인센티브가 되기 어려웠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2014년 병원들이 아이디어를 냈다. 대학의 산학협력처럼 병원과 의료기기 회사들 간에 병·산협력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었다. 정부도 크게 환영했다. 연구중심병원이란 진료를 통해 축적된 지식을 기반으로 첨단 의료기술을 개발·사업화해 보건의료산업 발전을 선도하는 세계적 수준의 병원을 말한다. 연구중심병원은 진료 중심인 일반 병원과 달리 병원 내 인력 중 상당수가 연구 업무를 수행한다. 현재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차병원 등 10개의 병원이 지정되어 있다.

이 병원들은 의료와 제약 기업들과 함께 산단을 조직하고 R&D를 한다. 이러한 모델은 이미 미국에서는 차세대 의료산업의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미국 대형병원 메이요클리닉은 메이요클리닉 벤처스를 설립해 현재 130개가 넘는 기업을 창업 지원했다. 매일 두 개 이상 사업화 후보기술을 접수해 25%가량을 기술 사업화 한다. 기술이전 수입은 5400억 원에 이른다. 미국 브링검여성병원과 매사추세츠종합병원이 출자해 설립한 파트너스헬스케어는 13개 소속 병원 기술 사업화를 위해 연구실과 기업에 투자한 돈만 2조 원에 가깝다. 병원 기술 사업화에 투자해 이 회사 연간 매출은 12조 원에 달한다.

이렇듯 병원이 의료기술 R&D를 통해 산업의 주체로 진화하는 방향은 대세로 인식된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이러한 의료산업화가 요청되는 이유가 있다. 현재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인구 노령화로 의료비 지출이 크게 늘 수 밖에 없는 반면 국내 의료보험수가는 병원들로 하여금 재투자가 어려울 정도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의료산업화란 의료서비스를 위시한 관련 분야의 산업화를 의미한다. 의료서비스 산업이 발전하면 바이오로 대표되는 BT(생명공학기술)를 위시해 IT(정보기술),NT(나노기술),HT(보건기술)가 발전하게 된다. 즉 의료산업화의 중심에 의료서비스가 놓여 있어 의료서비스 산업이 원천 산업의 역할을 한다. 이규식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의료산업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의료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현재의 의료제도는 전국민의료보장을 하루빨리 달성하기 위해 1980년대 전후에 짜인 틀”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1980년대는 기본적 의료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급했기 때문에 낮은 보험료로 전국민의료보장을 강행했고 그 결과 의료보장은 모든 국민이 받게 됐지만 의료수가의 통제 등으로 의료서비스는 박리다매형이 되어 병원이나 의원에서 환자들은 자기 병에 대해 제대로 설명도 듣지 못하는 2~3분 진료가 일반화돼 있다. 이러한 상태로는 의료를 산업화하고 의료가 BT 산업을 이끌어 갈 수는 없다는 것이 이규식 교수의 주장이다.
 

의료기술 R&D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그 이윤이 다시 환자 진료서비스에 투자되는 선순환 구조가 되어야 한다. 의료법인이 영리 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어야가능하다.
의료기술 R&D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그 이윤이 다시 환자 진료서비스에 투자되는 선순환 구조가 되어야 한다. 의료법인이 영리 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어야가능하다.

낮은 의료투자가 의료 서비스질 위협

최근 현대경제연구소에서 발간한 <국내 의료산업의 4차 산업혁명 준비수준 점검>이라는 보고서(최성현 선임연구원)에 의하면 우리 의료산업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을 도입하며 빠르게 발달하고 있지만 한국의 의료산업 육성 기반은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2016년 기준 미국의 종합적인 의료기술 수준을 100%로 볼 때 한국은 77.5%로 평가된다. 유럽연합(EU·92.7%)은 물론 일본(89.9%)보다 뒤처지고 중국(69.5%)보다 불과 8%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에 따라 파급력이 큰 부문에서 중국과 격차는 더 작았다. 신약 부문의 경우 한국은 73.7%로 중국(69.6%)보다 4.1%포인트 높은 데 그쳤다. 유전체 분야에서 한국(77.0%)과 중국(74.7%)의 격차는 불과 2.3%포인트였다. 정부와 기업의 의료 연구·개발(R&D) 투자 역시 활발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5년 한국 정부의 의료 R&D 예산은 전체 R&D 예산의 8.4%에 해당하는 17억8000만 달러였다. 반면 미국과 영국에서는 그 비중이 24.1%, 23.4%에 달했고 의료 R&D 예산 규모 자체도 한국의 약 20배, 2배 수준이었다.

기업의 의료 R&D 투자 역시 2015년 16억4000만 달러로 독일의 1/4, 일본의 1/10, 미국의 1/40에 머물렀다. 의료 인력도 부족했다. 의료분야 R&D 인력은 2014년 기준 9328명으로 일본(4만1209명), 독일(2만7943명)과 견줘 1/3?1/5 정도였다. 의료 빅데이터 분석을 위한 인력 양성도 2010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할 정도로 속도가 늦은 것으로 진단됐다.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수집·활용하기 위한 제도적 준비도 늦은 상황이다.
 

의료법인 연구 사업화할 영리자회사법 마련해야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려면 병원이 환자 진료 서비스로부터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병원들처럼 의료기술 R&D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이로부터 발생한 이윤을 다시 환자 진료서비스에 투자해야 가성비 좋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지속 가능하게 제공할 수 있다. 실제로 연구중심병원인 고려대병원은 나름 의미 있는 성적을 거뒀다.

고려대 산학협력단의 소속이지만 고려대의료원에는 고려대 기술지주회사에서 분리된 별도의 의료기술지주회사가 있다. 일종의 ‘자회사’인 셈인데 이곳을 통해 창업의 길을 걷게 된 회사들이 벌써 9개에 이른다. 그 가운데 뉴라클사이언스는 전에 없던 신경계 질환 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성재영 고려대 의대 교수가 고려대 의료기술지주회사의 자회사로 창립한 곳이다.

외부에서 CEO와 CFO를 영입해 운영을 맡기고 연구자는 연구를 계속해나가는, 바이오메디컬 스타트업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2억5000만 원으로 창업한 이 회사는 현재 900억-1000억 원 정도의 자산 가치를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연구로 돈을 벌어들이고 그 돈이 다시 연구에 쓰이는, 사업화 최고의 ‘롤 모델’이 탄생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사업에는 복병이 있다. 현재 대학병원의 연구중심병원들은 병산협력의 연구 결과를 사업화하기 위해 대학이 아니라 병원법인이 지주회사가 되는 영리 자회사의 입법안을 요청하고 있다. 이유는 현행법에서는 연구중심병원들이 개발한 기술을 응용하거나 이전해 얻은 수익을 병원이 아니라 학교 재단에 귀속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학재단의 사업비 지출은 교육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고 대학병원은 복지부 산하라는 점이다. 여기에 의료법인인 병원이 R&D를 위한 자회사 설립에 ‘영리병원’이라는 부정적인 여론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이정렬 서울대 흉부외과 교수는 이러한 부정적 인식이 전적인 오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정렬 교수는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은 정확하게 말하면 의사의 영리병원의 허용이 아니라 의료법인이 영리 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 말한다. 이러한 법개정이 진정한 의료산업화의 시발점이라는 점에 대해, 연구중심병원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의 견해는 일치하고 있다. 문제는 이를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의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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