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분석] 기독교 정당 높은 현실장벽 확인
[포커스분석] 기독교 정당 높은 현실장벽 확인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0.05.1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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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자유통일당 원내 진출 실패
종교의 현실정치 참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기독교 정당의 국회 진입의 벽을 실감케 했다.
종교의 현실정치 참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기독교 정당의 국회 진입의 벽을 실감케 했다.

4·15 총선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는 기독교 정당의 21대 국회 원내 진출 성공 여부였다. 결과는 또 한 번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기독교를 대표하는 기독자유통일당은 이번 선거에서 1.83%(51만3159표)를 얻는 데 그쳤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공직선거법 개정 이후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그 어느 때보다 원내 진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던 만큼 관계자들에겐 실망도 클 수밖에 없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의해 정당득표율 3%를 넘는 정당은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기독자유통일당의 경우 비례대표 후보를 내기 위한 3%에 턱없이 모자라는 득표율을 기록한 것이다.

기독자유통일당은 미래통합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호남지역 등 전국에 10명의 지역구 후보와 이애란 자유통일문화원 원장(비례대표 1번), 김승규 전 법무부 장관(비례대표 2번) 등 비례대표 후보 21명을 냈지만 지난 총선보다 못한 초라한 성적을 받았다. 기독교 정치세력화의 벽이 두껍다는 현실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만든 선거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나라 현대정치사에서 기독교 정당이 언제부터 존재했는지의 여부는 흥미로운 대목이다. 기독교연합신문이 소개한 이상규 백석대 석좌교수에 따르면 기독교 정당은 해방 직후 이북지역에서 기독교 지도자들이 공산당 탄압에 맞서 저항을 위해 창당됐다.

윤하영 신의주제일교회 목사와 한경직 신의주제이교회 목사가 1945년 9월 처음 주도해 만든 ‘기독교사회민주당’이 바로 첫 기독교 정당이다. 한경직 목사가 월남한 후 탄압을 받다가 결국 공산당에 의해 강제 해체됐다.

또 다른 기독교 정당은 1945년 11월 조만식 장로와 이윤영 목사가 주도해 만든 ‘조선민주당’이다. 이윤영 목사는 제헌국회 당시 이승만 임시의장 제안으로 대표기도를 했던 인물이다.

1947년 11월 김화식 목사를 중심으로 평양에서 추진되던 ‘기독교자유당’도 있다. 결성식을 하루 앞두고 공산당 내무서원에 의해 당시 지도부가 검거되면서 창당되지는 못했다. 이후 김 목사는 공산당에 의해 총살형으로 순교했다.

이번 총선에 도전한 기독교자유통일당은 기독교사회민주당과 기독교자유당의 역사를 계승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정치사에서 이후 기독교를 표방하는 정당은 나오지 않았다. 이른바 군사정부 시기 진보적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했지만 정당 운동으로 전개되지는 않았다.

1997년 김한식 목사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한 바른나라정치연합이 있었지만 기독교 정당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그러다 한국기독당(2004년)이 등장한 이래 총선마다 기독교 정당이 원내 진출을 노려왔다.
 

기독교 정당의 현실정치 참여 역사

기독교계의 원내 진입 시도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시작됐다. 17대 ‘한국기독당’을 시작으로 18대 ‘기독사랑실천당’, 19대 ‘기독자유민주당’과 ‘한국기독당’, 20대 ‘기독자유당’과 ‘기독당’으로 진출을 시도했다.

특히 20대 국회의원 선거(2016년 4월 13일)에서는 비록 원내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나름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독자유당의 경우 득표율 2.63%(62만6405표)를 기록, 새누리당(33.52%), 국민의당(26.73%), 더불어민주당(25.53%), 정의당(7.23%)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비례대표 당선 요건(지역구에서 5석을 당선하거나, 정당지지율 3% 획득)을 갖추지 못해 의석 확보에는 실패했다. 또 다른 기독교 정당인 기독당의 득표율은 0.54%(12만9978표)였다. 산술적으로는 두 정당이 단일화에 성공했을 경우 75만6831표를 획득, 원내 진출이 가능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 같은 지난 총선 결과가 시사하는 바에 따라 연대 혹은 합당 움직임이 있었다. 한국기독신문 2020년 2월 4일자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기독당과 기독자유당 사이에 합당 문제 논의가 오갔지만 기독자유당의 거부로 무산됐다.

기독당은 내부 분쟁 끝에 결국 3월 중앙선관위원회에 의해 사고정당으로 등록되면서 기독당 입후보 등록을 제한조치 당해 이번 선거에서 후보를 내지 못했다.

반면 기독자유당은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전광훈 한기총 대표회장이 세운 자유통일당과 합당해 기독자유통일당으로 이름을 바꿔 이번 총선의 유일한 기독교 정당으로 도전했다.

그렇다면 기독교 정당의 현실정치 세력화가 이렇듯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기독자유통일당의 경우 2016년 총선에서 3%에 가까운 2.64%를 얻었던 만큼 이번 총선 국회 진출 가능성을 크게 기대했다.

더욱이 전광훈 목사가 지난해 6월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면서 결집시킨 광화문 보수층의 영향도 이번 선거에 어느 정도 미칠 것으로 예상하면서 자신감 있는 모습이었다.

김문수 선거대책위원장은 총선 전인 지난 달 8일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기독자유통일당의 국회 진출을 자신한다”며 “최근 여론조사를 종합해보면 득표율 추이가 가파른 상승세”라고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전광훈 목사 구속 그리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법이 바뀌면서 군소 정당의 난립 등을 실패 원인으로 꼽지만 무엇보다 현실적 전략 부재와 인물난이 원인이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이동호 전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은 기독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와 선거가 어떤 것인지 너무 몰랐다. 국민들을 설득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같은 기독교인이라고 무조건 표를 주지 않는다”며 “왜 기독자유통일당을 찍어야 하는지 설득 작업이 부족했다. 또 영성과 지성, 경험을 고루 갖춘 엘리트들이 적었던 것도 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아프지만 철저하게 패인을 분석해서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좋은 기독교인을 영입하면서 저변을 넓혀 정당으로서 차근차근 체력을 키워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정교분리의 원칙이 한국 사회에 뿌리 깊다는 것도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유달상 기독교한국신문 기자는 “국민들의 머릿속에 깊이 뿌리내린 ‘정교분리원칙’의 관념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준 총선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유 기자는 “여기에 일부에서는 ‘교회가 정치에 왜 관여하느냐’는 것이었다. 전광훈 목사가 청와대 앞서 시위를 할 때도, 많은 목회자와 국민들은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던 것도 ‘정교분리원칙’의 관념 때문”이라며 “‘목사가 무슨 정치에 관여하느냐’고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그동안 기독교를 믿는 정치인 대부분은 기존 정당의 공천을 받아 원내에 진출했지만 이들은 기독교의 가치를 대변하지는 못해왔다는 점도 덧붙였다.

지난해 10월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발표한 ‘2019 주요 사회 현안에 대한 개신교인의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이 기독교를 표방하는 정당을 창당해 정치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개신교인 79.5%가 반대 입장을 보였고, 찬성은 5.2%에 불과했다.(보통, 모르겠다는 응답이 15.2%)

이 같은 결과는 교회 안에서도 10명중 8명이 기독교 정당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가리킨다.

또한 기독교 정당이 원내 진출에 성공할 경우 천주교와 불교 등 타 종교 혹은 이단들이 원내 진출을 시도하는 계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 경우 정치가 종교 단체의 대리전이 될 수 있고 지역갈등, 세대갈등에 이어 종교갈등까지 양산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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