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논단] 김정은을 조종하는 최룡해와 태자당
[미래논단] 김정은을 조종하는 최룡해와 태자당
  • 김광동 미래한국 편집위원·나라정책연구원장
  • 승인 2020.06.04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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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다시 모습 드러낸 김정은.
5월 1일 다시 모습 드러낸 김정은.

김정은이 20여 일간 잠적했다 5월 1일 깜짝 등장한 사건은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건강 문제로 불가피한 치료를 받았는지, 건강 상태와 상관없이 다른 의도적 계획에 따른 것인지 당분간은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김정은이 전 세계를 향해 ‘주의전환 과시행동(distraction display)’을 펼쳐야 했던 의도를 보다 집중적으로 규명해봐야 한다.

과시적 행동은 동물들이 특정지역(A)에 있는 은신처나 새끼가 노출될 위험에 처했을 때, 그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다른 지역(B)에서 펼치는 과잉행동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김정은이 죽었냐, 안죽었냐를 논하다가, 결과적으로 틀린 예측을 했다며 오히려 탈북자 공격에 초점을 맞췄던 것은 주의전환 효과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의 분열과 탈북 활동가의 영향력 제거라는 의외의 ‘소득’까지 헌납시킨 준 격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김정은은 어차피 ‘카게무샤(影武者)’다. 통치적 상징일 뿐이기에 연출된 김정은의 행동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카게무샤를 연출시키는 집단의 의도와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 김정은이 최고독재자인 것은 맞지만, 북한을 통치할 능력이나 국제관계를 이해하고 대외적 전략을 펼칠 위인은 더 아니다. 역설적으로 김정은이 카게무샤가 아니라면 연출된 과시행동에 동원될 이유가 없다.

1984년생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이 갑작스런 중풍(stroke)에 처하자 2년에 걸쳐 연출 훈련을 받고 27세의 나이에 등장했을 뿐이다. 등장 당시를 회고해보면 ‘CNC 컴퓨터 천재’로 칭송되고, ‘대장동지 발걸음’ 같은 우상화 노래의 보급 같은 사전작업을 거쳐 등장했다. 권력을 장악, 행사할 힘을 가졌다면 그냥 등장하면 되지 굳이 뒤에서 만든 우상화 과정을 거칠 이유도 없었다.

김정은과 시진핑. 북한체제의 존속 여부는 김정은 변고 여부보다는 중국의 패권 관리와 장악력에 달려있다고 봐야 한다.
김정은과 시진핑. 북한체제의 존속 여부는 김정은 변고 여부보다는 중국의 패권 관리와 장악력에 달려있다고 봐야 한다.

김정은 체제 지휘하는 유일권력자

그럼 누가 ‘준비시켜’ 등장시키고 연출시키는 것인가? 물론 사망 전에 김정일의 결정인 것임은 틀림없다. 김정일은 2010년 중국을 방문 시 김정은을 수행시켰고, 중국으로부터 최종 책봉(冊封)까지 받도록 했었다. 그러나 그 외에도 핵심적으로는 세 명의 주역이 있다.

두 명은 여전히 핵심이고, 나머지 한 명은 처형되었다. 김정은 뒤의 핵심 중 하나는 김정일의 장남이자 김정은의 형, 김정철이다. 김정철은 김정은보다 세 살 많고 세상을 보는 눈도 있고 현실 감각도 있었지만 권력의 전면에 나서는 것을 양보했을 것이다. 권력에 대한 관심 자체가 적었고 음악에 대한 집착 등으로 권력 세계를 벗어난 삶에 대한 애착이 더 컸기에 김정은을 내세워 뒤에서 역할하는 것으로 만족했을 것이다.

다른 두 명은 물론 최룡해와 장성택이다. 최룡해와 장성택은 신정(神政)적 세습독재와 김정은 체제의 안착을 지휘해온 쌍두마차였다. 물론 ‘최고존엄’은 아니지만 최고권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최룡해다. 장성택은 김정일 동생 김경희의 남편이라는 신분과 무역 등 대외부문을 중심으로 김정일 체제를 꾸려온 핵심인물이었지만 김정은 체제의 안착과 함께 토사구팽(兎死狗烹)식으로 무장해제되고 참혹하게 처형되었다.

이유는 매우 단순했다. 장석택과 그 주변이 오랫동안 대외사업을 맡아 달러($)를 통제해왔는데, 백두혈통을 내세운 김정철과 최룡해 중심의 태자당그룹이 장성택세력이 담당하던 대외부문을 빼앗아 독점적으로 장악하고자 했던 이권 투쟁이자 권력 투쟁이었다.

김정은 체제를 지휘하는 확고부동한 유일권력인 최룡해는 비교될 수 없는 최고실세이자 전체를 관장하는 연출가다. 최룡해는 김일성 오른팔인 최현(崔賢)의 아들로 이미 30년 전부터 최고권력인 김정일을 호위하며 권력 핵심부에 있었다. 최룡해는 김정일 사망 이전부터 장성택보다 훨씬 앞선 서열에 있었다.

2015년 인천아시안게임 때 최룡해가 황병서를 수행했다고 황병서가 실세인 것처럼 했던 것이나, 최룡해가 견책받고 지방에 가 있던 것도 모두 전체주의 사회가 연출하는 ‘주의전환, 과시행동’의 일부분이다. 최룡해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견제할 목적으로 북한이 사회주의국가의 축제인 ‘세계청년축전’(1989)을 개최할 때 사회주의청년동맹위원장 자격으로 북한 최대의 국제행사를 지휘했다. 전두환 정부에서 노태우가 올림픽조직위원장을 한 격이다. 물론 그때 좌파운동권 전대협(의장 임종석)은 임수경을 파견했었다.

계속된 국가장례위원회 구성을 보면 알 수 있듯, 7년 전인 2013년 최룡해는 이미 북한 권력서열 3위에 올랐다. 당시 오극렬(14위)이나 김원홍(15위)과는 차원이 달랐다. 김일성의 핵심 측근이자 백두혈통의 하나인 김책 아들 김국태가 서열 7위로 사망한 후, 최현 아들 최룡해는 형식적 상징 권력인 김영남과 박봉주를 이은 서열 3위에 위치했다.

당시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가 서열 6위였고 그 남편 장성택이 서열 19위였다. 그러나 최룡해는 곧 장성택이 ‘백두혈통’이 아니라는 명분을 내세워 숙청, 처형시켜버리며 지존의 위치에 올랐다. 물론 그런 권력구조는 태자당(太子黨)그룹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아들 김정철을 정점으로 최룡해-오세원-조성호-김철-오일정-강태성 등이 태자당의 핵심인데 그들은 모두 백두혈통이라 부르는 최현-오극렬-조명록-김원홍-오진우-강석주의 아들들이다.

김정은의 연출자 최룡해의 지위는 두 가지로 확인될 수 있다. 첫 번째는 누가 상국(上國)에 드나드는 자인가를 보면 된다. 최고지도자가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생사여탈권을 쥔 상국에 대신 드나드는 자가 핵심이다. 북한 내부 사정을 손바닥처럼 알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에 허세가 특사로 온다면 그 자체가 모독이고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2013년 당시 총정치국장이던 최룡해는 특사자격으로 최고 상국인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를 만났고 북한 상황을 보고하는 ‘영광’을 누렸었다. 최룡해는 연이어 2014년 제2 상국인 러시아도 특사 자격으로 가 푸틴을 만나 북한 상황을 보고했다. 물론 하이라이트는 중국이 대일본전 승전국임을 꾸며내고, 아시아의 맹주라는 이미지를 만들 목적으로 대대적으로 펼친 2015년 ‘전승절(戰勝節)’ 기념식이었다. 당시 푸틴-박근혜-나자르바예프 등 중국 주변의 최고지도자들이 섰던 천안문광장에 김정은을 대신해 섰고, 연이어 시진핑을 만나 환담한 것은 역시 최룡해였다.

둘째로 최룡해가 거쳐가고 담당하는 보직을 보면 된다. 최룡해는 태자당을 만든 근간이 사회주의청년동맹을 이끌며 36세에 북한 최대 행사인 세계청년축전을 완수했다. 북한 최고의 핵심보직인 당 총정치국장과 당 조직지도부장을 거쳤다. 현재는 정치국 상무위원-인민군 차수-당 중앙위 부위원장-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으로서 누구도 가보지 못했던 당-정-군 및 최고인민위 모두에서 카게무샤 김정은의 바로 뒷자리에 버티고 있다. 물론 최룡해를 떠받들어온 주변 인물인 리만건-김수길 등이 최룡해를 이어 당 조직지도부장과 총정치국장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김정은의 변고 여부를 포함해 북한체제를 보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김정은의 유고(有故)가 북한체제의 존속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카게무샤인데 카게무샤가 죽으면 다른 카게무샤로 채워질 것은 당연하다. 김정은 유고시 동생 김여정이 카게무샤역을 당분간 대신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져온 신정 세습체제를 새삼 바꿀 필요도 없고, 김여정은 김정철-최룡해그룹이 통제할 수 있는 적임자이기 때문이다. 김여정은 김정은 유고에 대비해 이미 2011년부터 핵심 보직인 당서기실 실장과 당 제1 선전선동 및 조직지도부 부부장을 거쳤고 현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자, 정치국 위원이기도 하다.

둘째, 북한독재를 움직이는 핵심그룹은 소위 태자당이자, ‘백두혈통’들이다. 물론 그 뒤에는 중국 공산당이 있다. 백두혈통이란 김일성 및 김일성과 함께 했던 소위 ‘혁명동지’들의 자제들을 포함해 맏형 김정철과 김여정 뿐만 아니라 최룡해 등 소위 성골(聖骨)세력들을 일컸는다. 장성택을 처형할 때 조선노동당이 제시했던 논리를 보면 김일성가계를 중심에 두고 백두혈통 적자만이 권력을 가져야 하고 백두혈통이 아닌 곁가지 장성택과 같은 부류는 왜 배반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더 나아간다면 백두혈통 논리는 최룡해의 논리이기도 하고 북한을 지배하며 봉화그룹으로 불리는 태자당 성골(聖骨)집단들이다. 더 나아간다면, 북한을 중국의 종속국가로 만들어내고 중국을 지배하는 시진핑에 충성하며, 중국공산당 태자당그룹과 연결시키는 고리집단이기도 하다.

셋째, 김정은-최룡해-김정철그룹의 독재체제가 70년간 유지된 것은 중국공산당 정부의 후견이 결정적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어 미국과 한국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중국의 보호와 후견으로 가능한 것이다. 북한이 중국에 충성하고 후견을 받으며 세습독재가 유지되어온 것은 중국이 부여한 ‘소임’을 차질없이 충실히 다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 ‘소임(所任)’이란 한미동맹을 폐기시키고 미군을 한반도에서 떠나게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전체를 중국 패권의 범위 내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변방(邊方)의 독재체제가 그 소임을 다하는 한 중국은 북한을 엄호하며 유엔과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버텨낼 수 있게 하는 후견적 역할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이 북한에 의해 곧 공산화될 것이라고 거론하다가 갑자기 김정은 유고 여부에 따라 북한이 마치 곧 붕괴되어 급변사태가 도래될 것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너무 거리가 있는 판단이다. 왜냐하면 북한의 존속과 관련된 대부분의 문제는 북한에 대한 중국 패권관리와 장악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정은의 변고 여부와 상관없이 북한체제의 연속성은 유지될 것이고, 러시아의 체제 변화로 동유럽에 변화가 왔던 것처럼, 장기적으로는 공산당 독점권력 상태의 중국에서 변화가 시작되면서 북한 전체주의의 변화도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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