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분석] 기본소득 어떻게 할 것인가..."기본소득은 저소득층 복지가 아니다"
[전문가분석] 기본소득 어떻게 할 것인가..."기본소득은 저소득층 복지가 아니다"
  • 최한수 경북대 교수
  • 승인 2020.06.12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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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의 소득 보장이 주요한 정책 목표라면 기본소득제는 적합한 정책 수단이 아니다.

기본소득은 현재 사회안전망에서 소외 받는 계층까지 혜택을 준다는 점에서 포용적인 복지시스템이며 기본소득의 현금급여로 인한 노동공급 감소가 크지 않는 등 새로운 복지제도로서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미래의 새로운 복지제도의 근간이 기본소득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하고 있지 못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본소득처럼 대안적 복지제도의 등장 배경으로 세계적·한국적 요인이 존재한다.

전 세계적 요인으로 AI로 인한 급격한 일자리 감소(이른바 AI apocalypse), 불완전 노동의 일상화로 인한 근로연계 사회안전망의 한계,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미흡한 재분배 대책 등이 그것이다. 다만 여러 연구 결과들은 기본소득 지지 담론의 대중적 근거인 AI apocalypse 담론은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10~20년 안에 현실화될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비효율적인 현물 중심의 복지사업보다는 직접적인 현금 지급이 효율적일 수 있다

기본소득은 보편적 성격으로 기존 제도에 비해 재정부담이 큰 제도이지만 기본소득을 위한 설득력 있는 재정 조달 방안과 정치적인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기본소득을 도입했을 경우 가구유형과 그 소득분위에 따라 제도의 수혜군과 소외군의 분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세금-편익 모델로 분석해 본 결과 기본소득이 도입될 경우 빈곤층 중에서도 소득분포가 가장 낮은 1~2분위 가구는 가처분소득이 줄어드는 반면 그 이상부터 중위소득가구의 경우 가처분소득이 증가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기본소득에 대한 OECD 보고서가 지적한 것처럼 ‘기본소득’이 빈곤층의 생활수준을 개선하기 위한 최적의 제도가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저소득층의 소득 보장이 주요한 정책 목표라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기본소득은 적합한 정책수단이 아니다. 다만 선별복지의 경우 발생하는 문제점, 특히 선별 과정에서의 낙인효과나 비효율성 문제 등을 보완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최한수 경북대 교수

기본소득 효과, 시간을 두고 검증해야

우리 사회가 처한 사회경제적 조건 및 대안적 사회복지제도로서의 기본소득에 대한 연구 결과를 고려했을 때 아직까지 ‘지금 한국 사회에서 기존 복지제도의 보완과 수정이 아닌 기본소득이 반드시 필요한가’에 대해 모두가 납득할 만한 수준의 근거를 찾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기본소득과 같은 대안적 복지제도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 사회경제적 조건의 변화에 현행 복지시스템이 좀 더 빠르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기본소득이 제시하는 합리적 핵심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먼저 현행 복지제도의 포용성을 높이기 위해 저소득층에 대한 소득보장의 수준을 높이고 근로가능연령층과 (차상위 및) 중위소득계층을 사회안전망 안으로 포함시킬 정책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둘째, 소득 및 자산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정책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복지프로그램으로서 현금수당을 보다 확대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OECD 국가 간 비교, 현물수당 중심의 기존 복지사업의 비효율성 그리고 기존 연구에서 밝혀진 현금수당의 장점을 고려하면 지금보다 현금수당을 늘리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단 이 경우 지역·연령 기반 실험을 진행하고 성과평가 후 도입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현금수당이 갖고 있는 불가역적인 특성과 재정 부담을 고려해 다음의 원칙과 절차를 통해 도입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먼저 정책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즉 왜 특정계층에게 (무조건적) 현금수당을 지급하려 하는가에 대해 보다 분명한 측정가능한 목표가 필요하다. 청년과 같이 근로가능연령을 상대로 지급되는 수당의 경우 그 정책 목표가 청년 구직자가 직면한 신용 제약을 완화하여 구직자와 회사간의 잡 매칭(job matching)의 질을 개선하자는 것이 주된 목표인지, 아니면 청년 구직자를 둔 가구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자는 것인지, 아니면 청년 구직자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자는 것인지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아울러 전면적인 도입보다는 단계적 도입을 고려하고 성과 측정 프로그램을 현금수당의 주요한 일부분으로 고려해 이것이 취약한 경우 중앙정부는 도입에 유보적 입장을 보일 필요가 있다. 한편 제도를 시행하기에 앞서 반드시 정책적 타당성에 대한 검토→ 모의실험의 설계 →평가방법의 고안(데이터 확보) 3단계 절차를 지키도록 규칙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핀란드의 사례처럼 정부가 법률을 제정해 기본소득의 혜택을 받을 집단을 무작위 배정하는 무작위 통제 실험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라도 전면적 도입보다는 전체 정책수혜 대상자 중 무작위로 정책의 혜택을 먼저 받을 집단과 나중에 받을 집단을 선정하는 단계적 무작위 통제실험(Phase-in Randomization)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자치단체별로 추진되고 있는 매우 낮은 수준의 일회적 현금수당은 이런 관점에서 보다 정교하게 재설계될 필요가 있고 여기에 재정 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외국의 사례처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긴밀한 대화를 이어나가야 하고 필요한 경우 중앙정부는 제도 설계에 필요한 조언을 제시하고 필요한 사항을 법률화시킬 필요가 있다. 예컨대 각종현금수당의 기획 및 평가방법에 대한 법률과 같은 것이다. 다음으로 현금수당이 도입되는 만큼 유사한 목적을 갖고 진행되는 현물급여는 평가에 따라 통폐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종합하면 복지와 관련해 선별비용이나 전달비용이 어느 정도이며 그것이 기본소득의 도입을 정당화할 정도로 심각한지에 대해 판단 근거를 찾아야 한다. 복지제도가 다기하고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을수록 수급자격을 갖췄으나 신청을 하지 않아 급여를 받지 못하는 누락자(non-take up)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물급여를 전달하는 복지체계의 효율성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어야 한다. 현재의 복지제도에서 요구하는 자산 조사 등의 절차가 지원자로 하여금 복지급여의 수급을 위해 자신이 문제(guilty)가 있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심리적으로 상처와 굴욕감(stigmatization)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민주연구원 발제 요약>

최한수 경북대 교수
피츠버그대 경제학 박사
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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