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진단] 경작하고 지키는 일, 새로운 농업을 향하여
[전문가진단] 경작하고 지키는 일, 새로운 농업을 향하여
  • 이명헌 인천대 교수
  • 승인 2020.07.06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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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창2:15)”

농업은 인간이 가진 최초의 직업이자 산업이었다. 하나님이 처음 사람 아담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살게 하셨을 때 그를 그냥 먹고 놀게 하지 않으셨다. 그 동산을 경작하고 지키는 일을 주셨다. 아담의 첫 두 아들의 직업도 각각 양 치는 일과 농사하는 일이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 속에서 농업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가장 기초가 되는 활동이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소명의 핵심, 즉 피조세계를 일구고 지키는 일의 본질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활동이기도 하다.

아담 이후로 인간의 경제 활동은 점점 다양해져 왔고 그 범위도 세계화되어 왔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비중이 커지면서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크게 낮아졌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한두 세대 전까지만 해도 인구의 절대다수가 농촌에 살면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지만(1970년 취업자의 5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음) 지금은 농업종사 인구는 전체 취업인구의 5%에 불과하게 되었고 GDP에서 차지하는 농업의 비율도 2%를 밑돌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화학기술과 기계기술이 농업에 적용되면서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에 훨씬 적은 수의 농업종사자가 이전보다 훨씬 많은 농산물을 생산해내고 있다. 게다가 무역이 자유화되고 수출 강국이 되면서 우리나라에서 충분히 생산해내지 못하는 농산물들은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서 사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동산을 열심히 ‘경작’했지만 ‘지키지’ 못한 농업

그렇다면 농업은 이제 대부분 국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주변적 경제 활동이 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우선 농업은 우리가 사는 환경에 큰 영향을 주고 그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인간이 영위하는 경제 활동 중에서 농업만큼 자연환경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산업은 없다. 농업은 하나님이 주신 땅과 물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산업이면서 동시에 거기에 여러 가지 물리적, 화학적 영향을 끼치는 활동이기도 하다.

인구가 적고 인간이 가진 기술이 미미하던 시절에는 그런 농업 활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았지만 많아진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화학적, 기계적 기술을 집약적으로 사용하는 오늘날의 농업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게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다. 많은 인구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근현대 농업이 걸어온 길은 안타깝게도 땅과 수질을 오염시킬 뿐 아니라 그렇게 해서 생산된 농산물을 안심하고 먹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열심히 ‘경작’해왔지만 잘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많은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그리고 무역자유화 과정에서 농민들의 소득 유지를 위해 생산증가를 위한 정책이 적극적으로 시행되어 왔다. 그 결과 농지면적당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량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하게 되었고 밀집형, 공장형 축산으로 인해 악취, 분뇨, 전염병 문제도 심각해졌다.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도 매우 높아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앞 세대들이 기억하고 있는 마을 개울에 헤엄치던 물고기와 뒷산에 뛰놀던 온갖 작은 동물들은 사라진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도시 주민들은 이처럼 농업이 환경에 주는 압박에 대해 둔감할 수 있지만 눈을 감고 있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도시는 농촌으로부터 어떤 철의 막으로 차단되어 있지 않고,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바로에게 7년 풍년 후에 그 풍년을 기억할 수 없게 하는 7년 흉년이 있을 것을 꿈으로 보이셨던 것처럼(창 41:30), 오늘날 먹을 것이 넘쳐나는 영양 과잉의 그늘 아래 환경 붕괴로 인한 개인과 지역은 물론이고 인류 전체 생존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많은 학자가 경고하고 있다.

농업과 농촌에 새롭게 주목하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의 새로운 필요를 채워주는 일을 농업과 농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농업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산업이었고, 농촌은 그런 농업이 이루어지는 곳이자 그런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이 사는 곳이었다.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소득수준도 빠르게 상승하던 과거에는 그런 농산물 생산의 기능이 농업과 농촌에 대해서 사회가 기대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다.

그러나 소득수준이 이미 상당히 높아졌고 인구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으며, 많은 사람들이 영양 과잉을 걱정하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농산물을 이전보다 더 많이 생산해내는 것이 더 이상 사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우선순위 1번 과제가 아니게 되었다. 대신, 보다 여유 있게 살 수 있는 곳(정주), 쉴 수 있는 곳(휴양), 도시문화가 주지 못하는 즐거움을 주는 곳(관광), 자연과 교감하면서 몸과 마음이 나을 수 있는 곳(치유)으로서의 농촌 그리고 그 농촌을 농촌답게 해주는 농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통계를 보면 2003년부터 2016년까지 우리나라 가계 평균 먹을 것과 마실 것의 소비량은 16% 정도 줄어든 반면 보건, 오락, 문화 등에 대한 실질지출은 40~50%나 증가했다. 이렇게 증가하고 있는 서비스들에 대한 수요를 농촌이 어떻게 받아주는가에 따라서 국민의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사양(斜陽)산업이자 사양지역이라고 생각되던 농업과 농촌에서 새로운 소득과 일자리가 창출될 가능성도 열려있다. 최근에 발표된 네덜란드의 연구에 따르면 그 나라의 경우 농산물 생산이 아닌 농업의 ‘다기능성’ 발휘를 통한 매출이 약 5억 유로로 농업생산 부가가치의 약 4% 정도가 되고 잠재적으로는 그 네 배 규모까지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새로운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도 앞에서 말한 ‘지키는’ 농업이 중요하다. 환경이 오염되고 농촌 고유의 아름다움을 상실하고 공동체가 파괴된 농촌은 그러한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켜줄 수 없기 때문이다.
 

농업과 농촌에 새롭게 주목하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의 새로운 필요를 채워주는 일을 농업과 농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업과 농촌에 새롭게 주목하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의 새로운 필요를 채워주는 일을 농업과 농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식년을 지키는 농업: 요셉이 필요하다

이처럼 피조 세계를 ‘지키는’ 농업을 위한 열쇠도 성경 안에 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해주신 하나님은 그들이 약속으로 받을 땅에 들어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규례를 정해주시면서 그들의 경작을 7년마다 쉴 것을 명하셨다.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레위기 25:4)” 인간을 부양하기 위해 ‘노역’하고 있는 땅을 쉬게 해주는 것, 이것은 우리의 생존이 우리의 노력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음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이다.

이 고백의 실행 여부가 나라의 존망을 좌우한다. 역대기(歷代記) 기자는 유대왕국이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기에 멸망하였고, 멸망하여 땅이 안식년을 지키게 된 후에야 바사왕 고레스 때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귀환이 이루어진 것으로 기록하고 있을 정도이다.(“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역대하 36:21)”)

오늘날 5000만이라는 적지 않은 인구를 부양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농업을 문자 그대로 7년마다 쉬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땅에 농사로 인해서 가해지는 압력을 1/7만큼 줄어들게 할 방법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지혜로운 정책이 필요하다. [성경에 나오는 가장 오래된 ‘국가정책’도 요셉이 이집트에서 행한 농산물 비축과 방출을 통한 가격 안정정책이었다.(창 41:33-36)] 자신의 삶을 위해 소득이 필요한 농민들이 땅에 가하는 압력, 즉 화학비료, 농약, 가축분뇨 등을 자발적으로 줄이기는 매우 어렵다.

레위기 계명을 받은 것이 이스라엘 공동체였던 것처럼 땅에 가하는 압력을 줄이라는 명령도 농민들만이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받고 있는 것이다. 그 계명이 지켜질 수 있도록 어떻게 하면 땅이 안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게 하고(연구정책), 그 방법을 농민들에게 알리고(보급정책), 그 방법을 지키는 농민들에게 합당한 경제적 대가를 지불하는 정책(지불정책)이 필요하다. 그런 연구를 하고 알리는 사람, 그런 방법을 실천하는 농민, 그런 실천에 대해 기꺼이 세금을 내고 응원하는 소비자와 국민, 그들이 모두 오늘날의 요셉이다.

※기사는 <월드뷰>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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