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탱크로부터 듣는다 ] 인천국제공항 사태의 본질
[싱크탱크로부터 듣는다 ] 인천국제공항 사태의 본질
  • 백경훈 청사진 공동대표
  • 승인 2020.07.10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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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이 청와대 근처에서 비정규직 보안검색 요원들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며 팻말을 들고 항의 시위하는 모습. / 연합
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이 청와대 근처에서 비정규직 보안검색 요원들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며 팻말을 들고 항의 시위하는 모습. / 연합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가장 취약한 비정규직을 정면으로 배반하는 정책이다. 이 정책의 주 타깃은 월 300만 원 버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이다. 정규직화로 증가한 인건비, 복리후생비, 연금 등 부대비용의 부담은 하청기업, 협력업체로 흘러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 부담은 오롯이 일자리 피라미드 맨 아래층에 위치한 비정규직에게 축적된다. 비정규직도 다양한 형태가 있고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위한다는 정책이 도리어 극단으로 나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더 견고하게 하여 결국 일자리 피라미드 맨 아래층에 위치한 비정규직을 사지로 내몰고 기회 자체를 박탈한다는 것이다.
 

맨 아래층 비정규직을 사지로 내모는 상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세금을 더 투입하면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주장할지 모르나 이 또한 더 취약한 계층이 열악한 일자리를 전전하며 낸 세금이다. 피라미드 상위에 있는 공공부문 근로자들을 부양하기 위해 이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는 것은 정의로운 일인가, 공정한 일인가. 이 불공정의 악순환을 다른 주체도 아니고 국가가 주도한다는 것은 말이 되는가.

모든 부문의 일자리가 줄고 임금은 보장하기 어려운데 공공부문 일자리만 늘어난다면 그 울타리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질 것이다. 더구나 최근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사태’는 자율경쟁이 아니라 기존 공공부문 근로자들에게 정부가 특혜까지 줘 정규직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이러한 불공정한 상황이 수면 위로 명확히 드러났고 청년들은 이를 정면으로 목도하며 분노하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아니라 민간부문 비정규직이다. 월 300만 원 받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도 중요하지만 최저임금 아니 월 100만 원도 벌기 힘든 비정규직, 일자리 시장에서 밀린 비자발적 영세 자영업자가 훨씬 더 많고, 훨씬 더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다. 경제적 평등과 사회적 안전망 강화를 중시하는 문재인 정부가 구제하고자 하는 비정규직은 대체 어떤 비정규직인가.

예산이 있다면 맨 아래층에 위치한 이런 어려운 사람들부터 지원하고 도울 방법을 찾는 것이 먼저 아닌가.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일부 공공부문 근로자 처우 개선을 위한 정책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도리어 가장 취약한 비정규직의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정책이다. 안타깝게도 ‘비정규직 정규직화’로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야기 한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어갈 수 없다.

진짜 문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아니라 정규직이다. 자신들의 지위를 2중, 3중으로 특권계층화 시켜놓고 위험하고 어렵고 힘든 일은 외주, 하청, 비정규직에게 몰아주는 형태가 반복되며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더 견고하게 만들었다. 다른 나라에도 정규직 형태가 자리 잡고 있지만 우리나라 정규직이 가진 특권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우리 노동시장은 성 안과 성 밖으로 나뉘어 있다. 현 정부 들어 일관되게 정규직의 권한 혜택을 강화하며 성의 장벽을 더 높고 견고하게 쌓아 왔다. 그 과정에서 성 안에 진입하지 못한 열악한 일자리를 전전하는 사람들, 경력이 단절된 사람들,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도태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수도권에 사는 중상위층을 위한 맞춤정부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제도에도 이들이 가장 많은 혜택을 누렸다.

‘인국공 사태’는 결국 성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해결되더라도 영향을 받는 것은 극히 일부의 사람들이다. 성 안과 성 밖으로 나뉘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제2, 제3의 ‘인국공 사태’는 반복될 것이다.

우리 노동시장에는 벽이 아닌 사다리가 놓여야 한다. ‘인국공 사태’가 이렇게 비화된 것도, 경직되고 폐쇄적인 노동시장의 문제가 곪아 터져 나온 것이다. ‘인국공 사태’가 해결된다고 해도, 우리가 처한 노동시장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보이는 불공정에 대해서만 분노할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불공정, 그 뿌리가 어디 있는지 찾고 뽑아내야 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관련 브리핑을 마친 구본환(원안) 인천국제공항공사사장에게 직원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 연합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관련 브리핑을 마친 구본환(원안) 인천국제공항공사사장에게 직원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 연합

성 안의 정규직만을 위한 진입규제정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의 폐해는 얼마 전 강사법 개정으로도 확인했다. 강사법은 4대보험, 방학 중 급여지급 등 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법이다. 하지만 결과는 소수의 강사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정부는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해 올해 809억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강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강사법을 만들었지만 도리어 실업자를 양산하는 상황이 되니 막대한 세금을 들여 실업을 돌려막기로 막겠다는 것이다. 강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막대한 세금을 들이는 이 조삼모사적 상황을 국민들에게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을까. 선한 의도만 가지고 정책을 만들어 내기에는 현장의 이해관계와 상황이 너무도 복잡하다.

현재 진행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류의 정책으로는 근본 문제 해결에 다가갈 수 없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에 대한 처우 개선에 대한 노력과 결과도, 결국 공공부문 비정규직 극소수의 이야기일 뿐이다. 한국사회 노동시장의 근본 문제들을 건드리지 못한다. 특히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는 많은 이해 당사자와 복잡한 경제 상황, 산업 시장이 얽혀 있는 문제이다. 눈앞에 보이는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이 이뤄진다고, 비정규직이 제로인 세상이 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내 정규직 전환에 대한 것도 구체적 계획과 집행능력의 부재로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에서, 훨씬 더 복잡한 이해관계와 상황이 얽혀 있는 민간으로의 확산은 요원한 상황이다. 우리가 선한 의도로 정책을 폈으니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운동권식 요행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국정을 책임지는 이들이라면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이 어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책임지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로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정책 이름에서부터 비정규직은 비정상, 정규직은 정상으로 간주해 세상의 모든 일자리를 정규직 아니면 비정규직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구분을 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일자리의 기준을 정형화된 공공부문 정규직 일자리로 보고 있다.

기술과 산업 변화에 발맞춘 노동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동안 경제 발전을 끌어온 대량생산 포맷의 거대한 기업과 공장, 정형화 된 노동력은 오히려 시대 적응과 혁신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앞으로 기업과 노동의 형태는 갈수록 세포화 되어갈 것이다.

작고 가볍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려고 할 것이다. 필요에 따라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협업해 갈 것이다. 시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할 것이다. 이것은 시장경제가 진화된 형태로 긱경제(Gig Economy), 공유경제라는 이름으로도 나타난다. 상대적이고 지속적으로 기존 노동의 비중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노동정책 패러다임 전환 필요

민간 부분의 일자리는 이렇게 요동치고 있는데, 공공부문 일자리만 기존의 형태를 유지하고 권한을 독점한다면, 일자리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될 것이다. 공공부문에서부터 경직된 임금과 고용 형태의 변화를 선도해 가야 한다. 정규직화가 필요하다면, 정형화된 정규직으로의 전환이 아니라 다양화된 정규직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다. 청년들이 바라는 것은 모두가 공무원인 세상이 아니라 공무원, 공기업 정규직 아니어도 살 만한 세상이다.

앞으로는 프로젝트성 일자리들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일자리가 아니라 일거리를 중심으로 흐름이 바뀔 것이다. 프로젝트에 따라 사람이 모이고 흩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 될 것 같다. 이미 프리랜서를 비롯해 독립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수는 통상 300만~5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정부의 역할은 무조건 정규직화 같은 듣기 좋은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시장 변화에 맞는 제도와 정책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이런 세상을 만들자’라는 구호보다 현재 우리가 어디에 발 딛고 있는지, 어떤 변화가 예정돼 있는지 살피면서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현실적인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일자리 형태가 바뀐다면 노동시장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고, 노동시장에 진입해야 하는 청소년과 청년들을 어떻게 교육할지 종합적인 정책까지가 나와야 한다.

기술의 진보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산업, 노동, 사회, 문화 각 분야의 변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전 방위적인 대격변의 파고 위에서 과도기의 혼란을 최대한 짧게, 최소화하는 데 정부의 역할이 있다. 기술과 산업의 발전을 기업과 시장의 역할로 본다면, 이를 소화할 노동시장을 만들어가는 것은 정부의 당면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일자리 정부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의 할 일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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