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진보의 가면을 벗기다"... 고 박원순 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으로 본 여권의 미투 사례
"미투, 진보의 가면을 벗기다"... 고 박원순 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으로 본 여권의 미투 사례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0.07.27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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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피소 직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계기로 일각에서 여권의 성추문 과거사가 회자되고 있다. 유독 진보좌파 진영에서 성추행 등 성 관련 이슈가 자주 불거지는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성추문에 휩싸인 여당 소속 인사들은 광역단체장만 해도 안희정 충남지사·오거돈 부산시장에 이어 벌써 세 번째다.

이런 의문은 3년여 전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촉발된 후 좌파진영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일찌감치 제기됐었다. 2018년 1월 서지현 당시 통영지청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가 계기가 됐다. 서 검사가 촉발한 미투운동은 그해 3월 5일 안희정 전 지사의 비서였던 김지은 씨가 JTBC 뉴스룸에 출연해 폭로, 안 전 지사의 성폭력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문화·예술계 등 전반으로 확산됐다. 피감독자 간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는 2019년 9월 9일 상고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이 확정돼 법정구속됐다.

2020년 4·15총선이 끝난 뒤 불거진 오거돈 전 부산광역시장의 성추행 사건도 충격을 던져줬다. 오 전 시장은 지난 4월 말 기자회견을 열어 이달 초 여성 보좌진과 면담 중 불필요한 신체 접촉이 있었다며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함과 동시에 부산시장직에서 사퇴했다. 야당과 부산 정가에서는 집권 여당이 성추행 사건을 사전에 파악하고도 총선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사전 조율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 외에 더불어민주당 출신 인사들의 미투 사건도 여럿 있었다. 안희정 전 지사 성폭력 폭로와 비슷한 시기 민병두 의원도 노래방에서 한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민 의원은 의혹 제기 이후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가 두 달 만에 사퇴를 번복했다.

정봉주 전 열린민주당 최고위원도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장에 출마하려다가 성추행 의혹이 보도되면서 정계 은퇴를 선언한 바 있다. 그는 호텔에서 대학생을 성추행했다는 혐의를 받았지만 1심 재판에서 명예훼손 및 무고와 관련해 무죄를 선고받고 2심 재판을 받는 중이다.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영입 인재 2호’로 발탁한 원종건 씨(27)가 미투 고발이 나온 지 하루 만에 총선 출마 포기를 선언하는 일도 있었다. 총선 과정에서는 경기 안산 단원을에 출마한 김남국 후보가 팟캐스트에 출연해 여성에 대한 품평회를 열었다는 논란을 사기도 했다.

좌파진영 문화예술계 인사의 미투 사건도 크게 논란이 됐다. 연극계 거장으로 군림해왔던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2018년 2월 14일 미투로 극단 단원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사실이 폭로됐다.

이 씨는 연희단거리패 창단자이자 실질적인 운영자로 배우 선정과 퇴출에 영향을 주는 권력을 이용해 2010년 7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6년 동안 여성 극단원 10명을 상대로 상습적인 성폭력을 저지른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대법원은 2019년 7월 24일 상고심 선고에서 유사강간치상, 상습강제추행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 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 회견’에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낸 것이라며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 연합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 회견’에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낸 것이라며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 연합

미투 열풍에 여권에서 쏟아진 미투 사건

미투운동이 한창이던 2018년 2월엔 고은 시인의 성추행 의혹이 제기돼 파장이 일었다. 시 ‘괴물’을 통해 고은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최영미 시인은 이어 언론 등과의 인터뷰에서 그의 성추행이 상습적이었다고 주장했다. 고은 시인은 이 같은 주장을 부인하며 10억여 원의 거액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그러나 2심 법원은 고은 시인이 최영미 시인과 박진성 시인, 언론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고은 시인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에 앞서 1심 재판부는 당사자들의 주장과 증인들의 진술, 증거 등을 검토한 결과 최영미 시인이 “1994년 한 주점에서 고은 시인이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고 폭로한 내용은 사실이라고 판단했고, 2심도 동일한 판단을 했다. 고은 시인은 항소심에서 패소한 뒤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다.

2018년 미투 열풍에 영화배우 조민기는 형사 입건 당했고 이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해 생을 마감했다. 또한 김기덕 감독과 조재현 역시 미투 파문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시절 미투 열풍이 거세게 불거진 시기에 임명 당시부터 논란을 빚었던 여성 비하 발언이 재조명받으면서 곤욕을 치렀다.

여권에서 성추문 이슈가 지속적으로 불거지면서 ‘미투는 좌파진영에서만 나온다’는 말이 돌자 당초 좌파진영은 이를 보수우파 진영의 정치 공세로 치부했다. 미투 열풍 당시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의 SNS 글을 소개한 한겨레신문의 경우가 대표적인 하나의 사례이다. 박진 활동가는 2018년 3월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왜 좌파진영에서만 벌어지냐고?’라는 글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이 글에서 우파진영에서 미투 폭로가 나오지 않는 이유를 ‘보수진영에서는 (피해자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박 활동가는 “나는 이 일이 이곳과 저곳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사회 여성의 9할이 겪는 일이고, 피해자가 있다면 가해자의 범위도 그만큼 넓은 일이다”고 밝힌 뒤 “그럼에도 (소위 우파진영에서는 미투 폭로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그는 이어 “소위 진보진영, 좌파진영의 가해자들에 대해서 말할 때, 그것을 지켜줄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믿음이 있다. 미투는 폭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이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그들(우파) 속에는 용기를 낼, 감히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구도 없다는 절망이 있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미투로 드러난 진보의 민낯

이 같은 주장은 좌파진영에서 각종 성폭력 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가 오히려 반대로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문 사건을 둘러싸고 보인 여권의 반응은 이러한 분석과는 달랐다. 진보좌파 진영에서는 박 시장을 추모·애도하는 목소리는 곳곳에서 쏟아졌지만 성추행 피해를 호소한 전직 비서와 관련해서는 언급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청각장애학생 성폭행 사건을 다룬 소설 ‘도가니’ 저자 공지영 씨는 7월 11일 트위터에 서울시 온라인 분향소 링크를 공유하며 “바보 박원순”이라며 “잘 가요. 주님께서 그대의 인생 전체를 보시고 얼마나 애썼는지 헤아리시며 너그러이 안아주실 테니”라고 했다. 공 씨는 박 시장 조문을 하지 않겠다고 한 정의당 의원들을 향해 ‘어디서 그렇게 못된 거만 쳐배워서’ ‘뭔 놈의 대단한 정의 나셨어’라고 쓴 다른 트위터 글을 리트윗했다.

공 씨가 언급한 정의당 류호정·장혜영 의원은 박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직 비서를 향한 2차 가해를 우려해 조문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러자 정의당 내에서 조문 거부를 비난하며 탈당하는 당원들과 두 의원을 지지하는 당원들 간에 대립하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지지층 반발에 심상정 대표가 나서 공식 사과했다.

진보좌파 진영이 그동안 강조해왔던 성인지(性認知) 감수성, 피해자 중심주의는 이번 사건에서 실종되다시피 했다.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은 진보좌파의 민낯을 들추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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