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데이터 주권, 내일이면 늦는다
[이슈분석] 데이터 주권, 내일이면 늦는다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0.08.0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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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의 경제·사회적 가치가 높아짐에 따라 데이터 경제의 민주화와 함께 국가·개인의 ‘데이터 주권(Data Sovereignty)’개념이 중요하게 부상하고 있다. 데이터 주권이란 신체나 재산의 권리처럼 개인에게 정보 권리를 부여해 스스로 자신의 데이터가 어디서,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사용될지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국가 차원에서는 자국의 데이터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개인은 데이터 자기결정권을 확대하기 위해 데이터 주권을 인식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30일 인도 정부는 틱톡과 위챗, 포토원더 등 중국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59개를 금지 조치했다. 인도 전자정보기술부는 성명을 통해 “인도 정보기술법 제69A조에 따라 위협의 긴급성을 고려해 중국 앱 59개를 차단하기로 했다”며 “인도의 주권과 안보, 공공질서를 침해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중국의 IT업계는 인도의 이 조치로 13억5000만 명의 인구를 기반으로 하는 데이터 시장을 잃었다. 그로부터 약 1주일 후인 7월 8일 구글은 중국을 비롯해 ‘데이터 주권 민감지역’에서 추진 중이던 클라우드 사업 ‘아이솔레이티드 리전’(Isolated Region)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구글은 검색 엔진 광고 외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에 거액을 투자해왔다. 중국의 국가주의적인 데이터 주권 관철로 더 이상 중국내 사업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이러한 자국 국민의 정보를 보호한다는 데이터 주권의 흐름은 이미 지난 해 유럽에서 강력하게 대두됐다.

2019년 11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페터 알트마이어 독일 경제장관은 잇달아 유럽연합(EU)이 데이터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EU가 미국과 중국에 데이터 주권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면서 데이터 주권에 대한 강화 방침이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결국 EU의 데이터를 쓸어 담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과 EU 간에 분쟁과 갈등은 예고되어 있고 이러한 배경으로 트럼프 미 행정부와 EU 간에 새로운 무역 갈등의 여지를 만들어 내는 중이다.

이러한 데이터 주권의 문제는 근대국가의 주권과 맞물려 세계 질서에 새로운 변화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상배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최근 ‘네트워크 시대 정보주권과 국가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공개 토론문을 통해 근대국가의 주권 개념이 빅데이터로 인해 상당한 도전에 처하고 있음을 주장했다.

김상배 교수는 ‘빅데이터 시대에는 데이터·정보 자체의 생산자나 소유자로부터 데이터·정보 사이의 패턴을 읽는 활용자로 권력이 이동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따라서 ‘이러한 빅데이터 권력이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데이터·정보의 패턴을 읽는 차원을 넘어 이를 바탕으로 감시권력이 작동할 가능성을 증대시켰다는 사실 때문’이라는 것. 쉽게 이해하자면, 우리는 의식하지 않고 IT 기기를 이용해 행동하지만, 이러한 데이터들이 수집되면서 우리의 행동은 관찰되고 분석되고 필요할 경우, 이러한 빅데이터 해석력을 가진 이들에 의해 우리 자신도 모르게 통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일단 국내에서는 개인의 정보 주권이 문제가 되고, 국가 간에는 외교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김상배 교수는 근대국가의 주권론으로는 이러한 빅데이터 주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결국 국가 주권 개념이 네트워크화 될 수 밖에 없음을 예상한다. 한마디로 데이터가 산업의 양상을 바꾸기도 하지만 국내 정치질서와 국제 질서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데이터 주권에 관해 현재 국제 표준을 제시하고 있는 진영은 EU다.

2018년 5월 시행된 EU의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그리고 2017년 6월부터 시행중인 중국 네트워크보안법 등을 보면 각국이 정보 주체의 권리 강화와 자국 데이터 보호를 위해 어떻게 법제도를 정비하고 있고 어떤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지 알 수 있다.
 

한국은 세계 5위의 데이터 생산량을 자랑하지만 국내 클라우드 시장의 약 70%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과 같은 미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5위의 데이터 생산량을 자랑하지만 국내 클라우드 시장의 약 70%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과 같은 미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데이터주권 확보 경쟁’

EU의 GDPR은 잊힐 권리와 데이터 이동권 등을 새롭게 보장해 기존 데이터보호지침에 비해 정보 주체의 권리를 강화했고, EU 시민의 데이터를 해외로 이전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개인의 데이터 권리보다는 국가의 데이터 권리를 더 앞세운다.

중국의 네트워크안전법은 중국에서 생성된 데이터의 중국 내 저장을 강제하고 정부가 요구하는 기술적 협조를 기업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의 요구가 있을 경우 기업은 데이터 암호해독 정보도 제공해야 한다. 이렇듯 각국이 데이터 주권을 강화하는 목적은 결국 데이터 보호와 데이터 산업 활성화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각국은 관련 법제도 정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데이터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개인 중심의 데이터 활용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2017년부터 시행한 개정 개인정보보호법에서 익명가공정보 개념을 도입해 데이터 유통 시장의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정보거래 중개기업이 정보 주체의 위임을 받아 타당성을 평가한 후 데이터를 제공하는 새로운 데이터 유통 모델을 제시하면서 정보 주체인 개인 중심의 데이터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소비자 프라이버시 권리장전 등을 통해 개인의 데이터 주권을 소비자 권리로 규정해 데이터 산업 발전을 위한 신뢰 기반으로 삼아왔다. 그리고 데이터 주권과 활용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개인들에게 자발적으로 데이터 활용 과정에 참여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시범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5위의 데이터 생산량을 자랑한다. 하지만 국내 클라우드 시장의 약 70%를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과 같은 미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일단 구글이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올해 1월 구축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벌써 제3 데이터센터를 건설 중이다. 해외 IT 기업들이 이처럼 한국에 데이터센터 구축 경쟁에 나서는 이유는 국내 클라우드 시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국내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 규모가 지난해 2조3427억 원에서 2022년 3조7238억 원으로 3년 새 58.9%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에 세계 최초로 5세대(5G) 이동통신을 상용화하면서 데이터 이용량도 급증하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의 사정은 별로 좋지 않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수많은 데이터가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우려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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