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새로운 전선(戰線) ‘부동산 계급’
[심층분석] 새로운 전선(戰線) ‘부동산 계급’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0.08.1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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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사세요?’ 대한민국에서는 이 질문 하나로 상대의 거의 모든 인상이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대한민국 어디에 사는지, 그가 사는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 월세인지의 정보가 그의 교육 정도와 사회적 위치, 경제적 성공 등을 가늠하는 잣대를 넘어 평판에 이르게 한다. 주거가 계급인 것이다.

지난 7월 10일 한국갤럽의 조사 발표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해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64%에 달했다. 이 수치로만 보자면 국민 열에 예닐곱이 문재인 정부의 규제 중심, 증세 중심의 집값 규제에 반대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응답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집값 안정을 위해 ‘규제강화 필요’ 응답이 50%,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30%였다. ‘세금 높여야’ 응답은 44%였고 ‘세금 낮춰야’ 응답은 33%였다.

본인 또는 배우자 명의의 집이 있다는 응답자는 58%였다. 이 여론조사는 한마디로 우리 국민들의 대부분은 높은 집값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그 대책에 대해서는 부동산 규제 강화 주장과 완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임을 짐작케 한다. 대한민국에 집이 있는 자와 없는 자들 사이의 의식이 부동산정책을 두고 정치적 대립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된다.
 

떠오르는 부동산 계급 이슈

올해 1월 서울신문과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 ‘공공의 창’이 여론조사회사 ‘타임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응답자 중 성인 76.0%가 ‘사는 집에 따라 사회·경제적 계급이 나뉜다’고 대답했다. 20대와 30대 응답자의 경우는 약 90%에 달했다. 부동산, 정확히는 집이 새로운 정치 이념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는 신호다.

이른바 부동산 계급(Housing Class)이 그것이다. ‘주택 계급’ 또는 ‘주거 계급’이라고도 불리는 부동산 계급론은 1967년 미국의 사회학자 렉스(Rex)와 무어(Moore)에 의해 제시됐다. 도시를 중심으로 희소하고 소망스러운 형태의 주택을 위한 경쟁이 그 본질이다.

렉스와 무어에 의하면 부동산 계급은 7층위로 나뉜다. 전체 주택을 완전히 소유하는 사람, 전체 주택을 소유하며 저당을 잡힌 사람, 공공기관에서 건설한 주택에서 사는 임대인, 철거되기를 기다리는 주택에서 단기간 동안 사는 공공주택 임대인, 개인소유의 주택에서 사는 임대인, 방을 세놓고 있는 주택소유자, 셋방에서 사는 사람 등이다. 이러한 영향에 따라 포털 등에는 대한민국 주택계급 분석들이 매년 올라온다.

강남은 황족, 여의도-목동은 왕족 등이 있고 최하위 지역으로는 노예와 심지어 가축 등급마저 있다. 물론 이러한 분류는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담론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존재는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런 주거 갈등을 집권 여당과 문재인 정부가 ‘적과 동지’를 가르는 정치적 전술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아젠다가 ‘1세대1주택’론과 ‘서울 공공주택 공급론’이다. 이 두 아젠다는 2021년 4월 서울시장 재보선 선거에 대단히 중요한 이슈로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의 높은 집값에 불만이 큰 서울시민들 사이에 부동산 규제 강화론과 완화론이 팽팽하게 맞서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2011년 무상급식 이슈를 둘러싸고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연상케 한다. 이 이슈가 주택이라면 어떻게 될까.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정부와 여당의 부동산 대책은 주택·주거 정책의 종합판”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실수요자는 확실히 보호하고 투기수요는 철저히 환수할 것’임도 천명했다. 그 방법론으로 제시된 것이 대출규제와 공급확보, 세입자보호 등이다.

외견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상당한 수준의 이슈 갈등이 내재한다. 우선 공급확보와 세입자보호라는 이 두 방향이 ‘서울-수도권 13만호 공공개발’과 이 13만호 물량의 50% 해당하는 6만호가 공공임대’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분노하는 부동산 민심. 정부의 거듭된 부동산 정책 실패로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우대를 받게 되었다/ 연합

文정부의 주택정책 본질은 ‘정치적’

문재인 정부가 현재까지 추진해 온 부동산정책은 집을 사지도, 팔지도, 임대하지도 못하게 하는 시장 소멸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거래절벽을 만드는 이러한 부동산정책의 배경은 단지 ‘부동산 불로소득’이라는 개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문재인 정부가 왜 부동산정책 실패로 정권교체마저 겪어야 했던 노무현 정부로부터 학습이 되지 않는지, 그리고 1가구1주택 정책과 달리, 민주당 의원들과 청와대 직원들에게 다주택 보유자들이 많았는지에 대해 먼저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문재인 정부의 주택정책은 민주당 안에서 이념적 정책으로 견지되어 온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위해 ‘정치적으로 설정’되었다는 관측이 설득력 있으며, 이는 서울과 수도권에 13만호를 재건축, 재개발로 공급한다면서도 약 절반에 해당하는 6만호 물량을 집값 안정과는 관계없는 공공임대로 공급하려는지 이유를 헤아리게 만든다.

이러한 의문에 답을 주는 것이 바로 ‘부동산 계급론’이다. 진보진영의 노동계급 투쟁이 사실상 국민 동의를 얻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고 이제까지 추진해 온 소득주도성장의 결과가 부진함에 따라 새로운 사회 변혁 아젠다로서 유럽에서 각광 받는 ‘주거 계급’의 이슈를 내년 서울과 부산 등의 보궐선거에 점화하겠다는 정치적 판단이라는 의심을 사는 배경이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국회 전체 의석 300석의 60%에 해당하는 사상 초유의 거대 여당으로 탄생한 배경에는 사실 민주당의 주거 공약도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있다. 당시 민주당은 ▲수도권 3기 신도시 교통 중심지에 ‘청년·신혼 맞춤형 도시’를 조성해 청년·신혼주택 5만호 공급 ▲광역 및 지역거점도시 구도심에 ‘청년·신혼 맞춤형 도시’ 및 택지개발로 청년·신혼주택 4만호 공급 ▲서울 용산 등 주요 코레일 부지와 국공유지 등에 청년·신혼주택 1만호 신규 공급 ▲신혼·청년부부에 대한 주택 구입자금 지원 확대 ▲청년과 신혼부부 각각 100만 가구에 공공주택과 맞춤형 주거금융 지원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수도권 3기 신도시와 지하철·GTX 역세권 등 택지개발지구 내 대중교통 중심지에 청년벤처타운과 신혼부부특화단지가 연계된 ‘청년·신혼 맞춤형 도시’를 조성하고, 청년·신혼주택 5만호를 공급하겠다는 것과 역세권 인근 지역에 청년벤처타운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행복주택 등 청년주택을 공급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이렇듯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약속했던 총선 공약은 그러나 지금 도저히 실행할 수 없는 공약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당장 202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부동산은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된다. 결국 민주당이 이를 돌파하는 해답으로 2013년 뉴욕시장 선거에서 등장한 부동산 계급론이 주효하리라는 예상은 무리가 아니다.

주거 이슈로 뉴욕시장 탈환한 美민주당

2013년 11월 뉴욕시장 선거에서 20년 만에 민주당이 뉴욕시를 탈환하는 사건이 벌어졌다.빌 더블라지오 민주당 후보가 공화당의 조셉 로타 후보를 압도적 표차(73% 대 24%)로 누르고 109대 시장으로 당선됐던 것. 당시 선거의 향방을 가른 것은 주거 이슈였다. 민주당 캠페인의 핵심을 요약한다면 ‘줄리아니와 블룸버그라는 두 명의 공화당 친기업 보수파 시장의 지휘 아래 뉴욕 경제의 외관은 번성했다. 고층건물은 늘었고, 맨해튼의 집값은 최고가를 경신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중산층은 무너졌고, 양극화는 극심해졌다’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 후보 더블라지오는 선거 내내 자신의 아젠다를 ‘두 도시 이야기’로 집약시켰다. “부자들이 더 부유해지는 와중에 중산층 뉴요커들은 어려움을 겪고 뉴욕 시민의 반 이상이 빈곤선 근처에서 맴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해결책으로 내세운 것은 ‘부자 증세’다. 소득 기준으로 뉴욕 시민 가운데 상위 1%에 해당하는 연소득 50만 달러 이상에 대한 소득세율을 당시 3.876%에서 4.41%로 올리겠다는 것이었다. 법인세 유예, 상업용 건물 건축에 대한 재산세 경감 혜택도 없애겠다고 했다. 이렇게 확보한 세금으로 서민용 주거시설 20만 채를 짓고, 맞벌이 부부 자녀들을 돌볼 유아원 시설과 방과후 프로그램을 늘려 서민들을 지원한다는 구상이었다. 재계와 보수진영에서 ‘포퓰리스트’라는 비난이 터져 나왔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러한 부동산 계급론은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대단히 유력한 공공주택 공급사업의 근거를 헌법에서 확보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35조(환경권, 쾌적한 주거생활의 보장) 제3항에는 “국가는 주택개발 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의 이 조항에 대해 일반적인 해석은 국가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쾌적한 주거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정책을 수행할 의무가 있으며 특히 자신만의 능력으로 ‘쾌적한 주거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계층(저소득층, 사회적 약자 등)에 대해서는 정부 정책의 직접적인 수혜대상이 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헌법의 이러한 조항에 대한 해석은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로서는 서울과 수도권에 주택 공급 확대로 내세운 13만호 중 6만호에 해당하는 공공임대 공급에 민간 재건축, 재개발 조합들의 참여를 강제화할 명분을 줄 수도 있다. 민간 조합들이 수익성을 이유로 참여에 미진할 경우, 공익을 내세워 보다 강력한 제제조치와 불이익으로 공공임대를 수용하게 만들고 이를 거부할 경우 이 조합들을 ‘공공의 적’으로 상정할 가능성도 지금으로서는 충분해 보인다. 이렇듯 주거 문제가 정치적 전선을 형성해 이슈로 점화되면 사유재산권 보호 차원에서 주장되는 ‘종부세 인하’는 대한민국 상위 5%를 위한 기득권 이기주의로 매도당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포퓰리즘 공세에 대비한 선제적인 대안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가령 종부세 최고세율을 높이더라도 매매 활성화를 위해 현행 60%에 달하는 다주택자의 양도세를 인하하거나 공공 재개발·재건축 시, 조합이 단독으로 책임지는 세입자 보상과 이주대책에 공공사업관리도 책임을 지도록 도시정비법 개정을 확보하는 것이다.

지난 용산참사가 바로 이런 공공개발로 발생한 갈등 문제였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깨닫게 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사유재산권과 공익이 충돌하는 공공개발이야말로 부동산 계급투쟁에 꺼지지 않는 불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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