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中共과의 3차?戰 피하려, 후방폭격 반대
워싱턴, 中共과의 3차?戰 피하려, 후방폭격 반대
  • 미래한국
  • 승인 2006.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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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를 기리며 <27> 정일화 鄭逸和·편집위원
▲ 정일화 편집위원
맥아더, 中共軍 개입時 후방기지 폭격으로 대처 계획毛, “참전하면 백가지 이익, 불참하면 백가지 不이익”중국은 한국전에 뛰어들면서 “한반도에 미군이 들어서면 중국이 해롭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쟁논리로 볼 때 해롭게 된다는 주장이 전쟁을 일으키는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 중국은 지금도 한국전에 뛰어든 것을 “입술이 망하면 이가 시리기 때문에(脣亡齒寒)”이라고 버젓이 말하고 있다. 당당한 독립국인 이웃 나라를 마치 자기 나라의 한 부분인양 입술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논리일 뿐 아니라 이웃 나라가 망하면 자기 나라가 불리해진다는 것을 이유로 전쟁을 한다는 것도 이치에 어긋나는 논리이다. 자기가 불리하면 전쟁을 일으켜 얼마든지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논리이다. 중국은 “북한이 망하면 중국이 불리해지기 때문”이라는 애매한 이유를 붙여 한국전에 뛰어든 결과 중국군 1백만 명을 죽이고 한국인 3백만 명이 죽게 되었지만 그런 끔찍한 전쟁의 경과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이 없이 그저 순망치한이라는 말 하나로 전쟁도발의 정당성을 말하고 있다. 맥아더는 처음부터 중공이 전쟁에 뛰어든다면 이는 미국과 중국이 벌여야 하는 전혀 새로운 전쟁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워싱턴에서 처리해야 할 문제이며 워싱턴의 결심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워싱턴은 엉터리 논리를 갖고 도발하는 중공의 공산주의팽창세력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둘째는 중국은 지상군은 풍성하다 해도 공군과 해군이 열악하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하는 경우 결정적으로 불리하다. 때문에 전쟁도발이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할 만했다. 만주와 중국 본토를 미군이 폭격할 경우 무엇으로 대항할 것인가.맥아더의 이런 판단은 지금 봐도 확실한 잘못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실제로 중공군은 대거 한국전에 뛰어 들었다. 중공군이 20만~30만에 이르는 대 병력을 이끌고 압록강을 넘었다는 사실과 맥아더는 이를 초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지금까지 맥아더는 일방적으로 비판되어 왔다. “전쟁에 진 장군은 입이 없다”(敗將無言)는 말을 “전쟁에 진 장군은 입이 없어야 한다”는 식으로 풀이하면서 혹독한 비판을 해온 것이 사실이었다.맥아더는 제1차 중공군 개입이 있은 지 상당 기간이 지나도록 “그럴 리가 없다. 다시 확인하기 바란다”라고 중공군 대거 월경을 의심했다. 심지어 전선에서 중공군 포로를 잡아 심문한 자료를 보낸 후에도 중공군의 대거 월경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속한 대응을 하는 데 미적거렸다.
맥아더 사령부는 이미 중공군 제4야전군 중 20만~30만이 만주지역에 이동되어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주은래 중공 수상이 “미군이 압록강으로 접근하면 우리는 개입한다”라는 위협도 충분히 듣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관계나 전쟁개념의 입장에서 중공군 개입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맥아더가 중공군 개입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대신 중공군은 손쉽게 국경을 넘어 전쟁에 뛰어 들었는가의 문제는 결국 중공군측에 그 이유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맥아더의 합리적인 판단은 중공군이 전쟁에 뛰어들지 못한다는 것이었지만 모택동은 맥아더의 합리적 판단을 무시할 수 있는 어떤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중공군을 들여보낸 것이 아닌가. 모택동은 10월 17일 중공군의 대거 월경을 최종 지시하면서 “우리가 전쟁에 뛰어들면 백 가지 이익이 있고 전쟁하지 않으면 백 가지 불이익이 있다”고 공언했다. 모택동의 발언은 적어도 중공군은 맥아더의 평가와는 다르게 편안한 자세로 전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음이 확실하다. 중국 본토는 물론 만주도 맥아더의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폭격당하지 않을 것이며 압록강을 넘은 중공군은 어떤 안전지대를 확보한 후 전쟁에 뛰어드는 것과 같은 자신감이 엿보인다. 실제로 중공은 맥아더의 판단과는 전혀 다르게 중공군이 한국전에 뛰어 들어가도 중국본토는 고사하고 중공군 지원기지가 설치된 만주지역도 폭격할 수 없었다. 팽덕회 중공군 사령관의 충실한 친구였으며 부사령관이었던 홍학지(洲學智)의 회고록 ‘중국이 본 한국전쟁’(1992. 고려원 출판사)에 의하면 중공군은 10월 19일 일제히 압록강을 건넜는데 이날 팽덕회 사령관은 북한에서 건너온 박헌영 부수상과 함께 본부요원들보다 좀 일찍 떠났고 21일 평북 대유동에 마련된 중공군 사령부에서 합류한 것으로 되어 있다. 홍은 팽덕회가 그동안 어디서 뭘 했는지를 물었다.그는 압록강을 건너와 첫날 수풍발전소에서 자고 여기서 김일성을 기다리다가 연락이 되지 않아 평북 대동에 있는 옛 금광지대인 대동의 김일성 사령부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가 김일성의 근거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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