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통합당 비대위 100일, 김종인이 가는 길
[심층분석] 통합당 비대위 100일, 김종인이 가는 길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0.09.01 1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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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100일을 맞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행보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통합당 지지율이 민주당을 한때 역전하면서 간단치 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

본지 <미래한국>이 김종인 비대위원장에 대한 평판을 수집한 결과, 전통적 보수 인사들 사이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박했다. ‘보수와는 코드가 안 맞는다’는 것이 근본적인 이유다. 반면, 중도적 입장의 인사들이 내놓는 평은 호의적이었다. (본지 12P 기사 참고)

이러한 양상은 지난 총선 패배 이후 통합당 지지자 대부분을 비롯, 보수 통합 차원에서 우리공화당과 기독자유당을 지지했던 우파인사들조차 대부분 황교안 전 통합당 대표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점과는 사뭇 다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에 대해서는 호오가 갈리는 가운데 지켜보자는 여론이 많다는 점에서 일단 통합당의 외연 확장이라는 당면 과제는 ‘기대’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러한 기대가 희망으로 발전하려면 아직은 넘어야 할 산들이 남아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산은 역시 내년 4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가 된다. 이 선거를 김 비대위원장이 승리로 이끌 경우 김종인 위원장은 보수의 구원투수에서 보수 대망론을 펼 수 있는 인물로 발돋움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있다.

물론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80대 고령을 문제 삼는 이들도 있지만 올해 11월 미국 대선에 도전하는 바이든 민주당 후보도 같은 연령대라는 점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나이는 큰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김종인의 ‘가로지르기’

김종인 위원장은 대단히 예외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11, 12, 14, 17, 20대 대한민국 국회의원(모두 비례)을 지냈으며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라는 거대 양당에 모두 영향을 끼친 정치 원로다.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선생이 그의 조부다.

김병로는 일제강점기 인권변호사로서 독립투사들을 무료변론했던 인물이었다. 대한민국 수립 초기 정당활동(한국민주당)까지 했던 조부의 유산 덕분에 정치와 인연을 갖게 된다. 그에게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타이틀도 있다.

2010년대 들어 보수와 진보 상관없이 진영에 위기가 닥치면서 해결사 역할을 했다. 이를 통해 킹메이커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많은 정치인들이 어려울 때 김종인을 찾아 도움을 구하고는 했다. ‘여의도 포레스트검프’라는 별명도 있는데 그만큼 그가 중요한 때마다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는 의미다.

박근혜, 문재인 두 대통령이 김종인의 손을 거쳤다. 두 사람 역시 직접 김종인의 자택을 찾아가 도움을 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종인은 이후 의견이 맞지 않아 양쪽을 모두 버렸다. 그의 배짱은 ‘싫으면 말고’에서 나온다. 미래통합당 황교안 당대표가 그에게 선대위원장 자리를 맡아달라 했을 때도 김종인은 ‘다 맡기는 것 아니면 안 한다’여서 초기에는 당에서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생각에 잠긴 김종인 비대위원장 / 연합

2020년 3월 김종인 위원장은 ‘영원한 권력은 없다’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박근혜, 문재인 두 사람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박근혜는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데다 자기 뜻대로 안 이루어지면 화를 내고, 동네 건달식 정치를 한다’고 비판했으며 ‘문재인은 천하가 자기 것인 줄 알고 방자하게 굴고 겉과 속이 다르며 주변 인간관계가 복잡한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내가 박 정권, 문 정권을 창출해 내는 바람에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줘 두 번 사과해야 한다’는 얘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는 ‘가로지르기의 고수’라는 평가가 붙을 만하다. 81년 전두환 정권의 민정당에서 공천 받아 국회의원을 시작했고 민자당 소속으로 14대 전국구 의원에 이어 2004년 새천년민주당에서도 17대 비례 국회의원을 했다.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박근혜의 새누리당을 탈당해 고사 직전의 새천년민주당 선거를 실질적인 승리로 이끌어 5선의 비례의원 빼지를 달았다.

이 승리는 2017년 탄핵 대선에서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토대가 됐다. 김종인은 박근혜 정권의 설계자인 동시에 그 설계를 집어 던지고 적진에 들어가 박근혜 탄핵의 판을 만든 주인공이 된 셈이다. 한마디로 그에게는 한국 정치판을 ‘가로질러’ 다녔다는 평가가 붙을 만했다. 하지만 ‘정치철새’라는 비판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의 선거 전략은 정치적 진영을 넘어 승리를 보장하는 황금의 손이 되었고 ‘승부사’라는 명칭이 따라 다녔다.
 

김종인에게는 5선을 지낸 정치인이면서도 마치 정치인이 아닌 듯한 이미지가 투사되어 있다. 김종인의 특징은 역시 ‘내게 다 맡기든지, 아니면 말고’라는 정신이다. 자신의 명예나 권력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배짱이 자신만의 정치적 가로지르기를 가능하게 한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김종인의 정치적 수완이 남과 다른 이유인가, 아니면 그가 이길 수 밖에 없는 선택을 하기 때문인가. 이 미스터리한 문제를 풀어 보는 것은 단지 김종인이라는 한 인물을 분석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좀 더 깊숙하고 내밀한 한국 정치와 시대상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것이 된다.

1997년 IMF 금융위기를 넘어서던 2000년대 초반 우리 사회에는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사유의 흐름이 등장했다.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탈근대적 사고가 그것이다. 그 등장은 권위와 중심을 해체하는 ‘전복적 사고’라는 코드로 발현되고 있었다. 철학자 이정우는 이를 ‘가로지르기’라 명명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가로지르기는 이것저것 많이 하는 것도 아니요, 여기저기 방황하는 것도 아니요,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로지르기의 정신은 우리에게 주어진 격자가 특정한 시대 특정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 그 격자가 필연적이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 출발하며, 그런 격자에 저항하는 데서 출발한다.”
 

김종인이라는 시대성

1997년 IMF 위기는 한국 사회 곳곳에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을 가져왔다. 그 대표적인 경험을 들라면 건국 후 처음으로 ‘은행도 망하는’ 경제 질서의 변화였다. IMF 위기는 3년만에 극복되었지만 그 결과, 우리 사회에는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졌다. 과거,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이나 대기업에 취직하면 큰 과오가 없는 한 정년을 바라볼 수 있었다.

IMF 이전에는 대기업들이 규모의 경제와 금융 레버리지 경영을 추구했기에 투자와 고용을 계속 늘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은행과 대기업에 취직하면 삶의 플랜이 가능했고 안정된 가계를 꾸려 나가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1997년 IMF 금융위기는 이 모든 질서들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평생직장은 사라졌고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과 사오정(45세 넘으면 정리해고 대상)이라는 시중의 자조적 농담은 한국 사회의 불확실성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김종인은 이러한 한국 사회의 변화를 예리하게 잡아내 변화에 대한 비판력 없이 관성화된 산업화 보수 정치에 저항점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을 비롯 여러 발언과 논평을 통해 IMF 이후의 한국경제를 ‘신자유주의에 의한 재벌기업 집중화’로 표현했다.

문제는 이런 주장의 맥락이 좌파와 진보의 영역임에도 김종인은 그런 프레임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는 점인데, 그가 민정당 국회의원의 신분임에도 87헌법에 ‘경제민주화’의 개념을 박아 넣은 장본인이었다는 점, 그리고 박정희 정권에서 처음으로 의료보험제를 만들었고, 노태우 정권에서는 분양가상한제를 도입한 장본인이라는 평가 때문이다.

이로부터 김종인에게는 그의 주장이 가진 합리성 여부와 관계없이 ‘합리적 보수’라든지 ‘개혁 성향의 보수’라는 평가가 붙었다. 김종인식 가로지르기는 그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 5월 22일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종인 위원장이 사무실을 찾아온 주호영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 연합
지난 5월 22일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종인 위원장이 사무실을 찾아온 주호영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 연합

보수 정체성 재확립 실패하면 분열 불가피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향후 정치 행보가 성공적일지 판단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의 시대적 해석이 보수의 전반적 관점과 대치되거나 유리된 부분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비록 그의 진단이 옳다고 해도 그 대안과 처방이 민주당과 같은 방향에서 선명성 경쟁을 한다면 통합당내 저항도 그만큼 커질 수 밖에 없다.

여기에 강성 보수 지지층이 더 이상 가치 공유를 거부할 경우, 통합당은 내년 4월 재보선을 앞두고 한차례 내홍을 겪게 되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들이 존재한다. 만일 통합당이 계속 좌클릭을 할 경우, 그 정치적 이념의 공백을 채우려는 보수 정치 세력은 등장하기 마련이고 그 결과 신당이 창당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물론 지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광화문 태극기 시민들을 주축으로 하는 보수 세력은 이미 국민들의 평가로부터 배척되어 있기에 이들을 중심으로 영향력 있는 독자 정치 세력이 등장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다만 민주당이 미래권력을 두고 경쟁하며 분화하는 과정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어떤 선택을 할지에 따라 통합당도 내부 분화가 발생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어차피 보수의 차기 정권교체가 독자적 힘으로 어렵다면 선명 야당으로 남겠다는 정치공학적 계산이 통합당내 강성 보수들 사이에 공감적 연대로 발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비록 ‘나는 보수라는 이름이 싫다’고 공언하더라도 한국의 기존 보수 정치 세력의 공간을 비워두고 가겠다는 판단은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탄핵 이후 국민들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은 보수의 정치적 자산을 어떻게 재구축하느냐의 문제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를 버리고 가는 것도 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탄핵무효를 주장하는 보수의 핵심 세력들을 안고 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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