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예술에 대한 여덟 가지 답변의 역사
[리뷰] 예술에 대한 여덟 가지 답변의 역사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0.09.05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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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진엽은 예술과 아름다움을 연구하는 미학자이자 철학자, 예술비평가.  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 교수, 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미학을 전공하였고 미국 템플대학교에서 철학과에서 예술에 대한 여러 해석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학』 선집을 편집하였고 쓰고 옮긴 책으로 『다원주의 미학』, 『프라그마티즘 미학』, 『삶의 미학』 『미술을 넘어선 미술』 등이 있다.

코로나19가 세계를 덮친 2020년 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 작가 호크니는 꽃나무와 수선화를 그린 자신의 새 그림을 SNS에 공유하며 말했다. “그 무엇도 오는 봄을 막지 못합니다.” 에프게니 키신, 요요마, 조성진, 코티에 카퓌송……. 세계 최고의 연주자들 또한 자기 집 거실에서 소박하게 촬영한 연주 영상을 아무런 조건 없이 유튜브로 세상에 실어 보냈다.

많은 이들이 여기에 큰 위로와 격려를 얻었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해도, 생업이 위협받아도, 예술이 있다면 고통은 얼마간 완화된다. 예술이 있다면 현실이 아무리 바닥을 쳐도 우리는 최소한의 품위를 잃지 않을 수 있으니까.

괴테가 말했듯, 가장 곤란한 순간에도, 가장 빛나는 순간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예술이니까. 이 책은 바로 그 ‘예술’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예술이란 무엇인지, 무엇이길래 그토록 우리의 마음을 고양시키고 어떻게 더 나은 삶을 경험하게 해 주는지를 다양한 예화와 사례를 통해 쉽고 재밌게, 그러면서도 진지하고 깊이 있게 풀어 내렸다.

청계천에 거대한 다슬기 모양의 조형물을 세운 현대 미술가 올덴버그. 그가 만든 지름 2미터짜리 초대형 햄버거 옆에 미대생들이 케첩병을 세웠는데 햄버거만 예술 대접을 받고 케첩병은 예술이 아니라며 철거당했다. 붓 쥐는 법을 훈련받은 침팬지 콩고의 작품은 잭슨 폴록의 추상화를 연상시켰는데, 실제로 전시회를 열었더니 사람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무대에 오른 피아니스트 존 케이지는 4분 33초 동안 건반에 손을 올려놓기만 하고 가만히 있다가 무대 밖으로 사라지고는 자신의 퍼포먼스가 ‘우연의 음악’이라고 큰소리쳤다.

인공지능 프로그램 오비어스가 그림 초상화가 앤디 워홀의 작품보다 몇 배나 비싸게 팔리는 지금, 현대미술과 실험 음악이 흔들어 온 예술의 경계는 이제 디지털 아트로, 다시 인공지능 예술로 옮아가며 ‘창작자’라는 예술의 핵심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그럼에도 어떤 사진이든 원하는 화가의 화풍으로 바꿔주는 인공지능이 출력한 ‘고흐 스타일’의 튀빙겐 풍경은 여전히 아름답고 낭만적이다.

우리는 왜 어떤 것은 아름답게 느끼고 어떤 것은 아름답지 않은 데도 예술이라고 받아들일까? 도대체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예술이 아닐까? 저자는 그 답을 찾기 위해 플라톤, 칸트, 그린버그 등 철학자와 미학자들의 이론을 통해 ‘모방론’, ‘표현론’, ‘형식론’, ‘제도론’부터 ‘다원론’, ‘진화심리학’, ‘경험주의’. ‘예술정의불가론’에 이르기까지 예술을 이해하는 여덟 가지 방법을 하나하나 알려준다. 예술과 아름다움을 만나는 이 여덟 갈래 길을 따라 이집트 벽화부터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까지, 벌거벗은 비너스부터 게릴라걸스의 퍼포먼스까지 예술의 역사가 넓고 깊게 펼쳐진다.

예술은 언제나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나은 삶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래서 더 알고 싶고, 그만큼 더 아는 척하고 싶지만, 제대로 된 예술 입문서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예술에 대한 여덟 가지 답변의 역사』는 개별 예술 작품을 해설하는 책이나 명화 읽기에 집중하는 책들이 줄 수 없는 깊이와 시야를 보여준다는 점에 그 특별함이 있다.

책 한 권으로 예술의 모든 이야기를 훑어볼 수 있을까? 이 책이라면 가능하다. 친절한 서술과 예술사를 가로지르는 명료한 구성 덕분에 복잡한 미술사조가 자연스럽게 구조화되고, 다양한 예술 양식이 저절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길어 올린 예술에 대한 답변들을 따라가다 보면, 누구나 이 책 한 권만으로도 예술에 대한 훌륭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다. 청소년을 위한 책으로 만들어졌지만, 출간 후 초등학생부터 성인 독자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랑받으며 20쇄를 거듭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 책은 『예술에 대한 일곱 가지 답변의 역사』의 개정판으로, 기존의 책에 새로운 답변을 하나 더 더하고 인공지능 시대에 맞게 내용을 대폭 보완하였으며 풍부한 이미지를 추가하여 예술의 ‘도레미’를 일러주는 입문서로 재탄생했다. 예술의 세계에 처음 발을 내딛고 싶은 이들을 위한 아름답고도 유용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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