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실리콘밸리로 간 노자... 글로벌 기업은 왜 도덕경에서 혁신을 배우는가?
[신간] 실리콘밸리로 간 노자... 글로벌 기업은 왜 도덕경에서 혁신을 배우는가?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0.09.12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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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영규는 노자와 장자, 주역, 그리고 고양이를 사랑하는 인문학자.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나왔으며 중앙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학교 총장, 한서대  대우교수, 중부대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이 책은 노자의 《도덕경》을 해석하면서 발견한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기업의 혁신 철학과 리더십에 관한 글이며, 현재 〈동아비즈니스리뷰〉에 장자의 사상으로 살펴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간관계와 리더십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또한 서울시교육청과 서울경제신문 산하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 프로그램에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는 《인문학을 부탁해》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아주 기묘한 장자 이야기로 시작하는 자존감 공부》 《존재의 제자리 찾기》 《관계의 비결》 《퇴근길 인문학 수업(공저)》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나의 리틀 포레스트》 등이 있다.


뜻밖에 뉴노멀 시대를 맞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개인의 위생에서 일상적 관습, 근무 환경, 산업 구조까지 개인과 집단이 크고 작은 문제에 부딪히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자 애쓰고 있다. 여기에 기후 위기까지 더해져 앞으로 또 어떤 위기를 맞을지 최악의 상황만이 그려질 뿐이다.

하지만 이는 누구의 탓도 아닌 바로 우리가 자초한 것이다. 현대인의 탐욕이 위기를 재촉했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욕심이 끝없기 때문에 더 크게, 더 많이 탐하고 소유하기에 급급했다. 그 대가가 지금의 위기로 드러나고 있다.

더 큰 위험이 찾아오기 전에 지금이야말로 노자의 《도덕경》을 통해 무위의 자세로, 비움의 미학과 상생의 지혜를 깨우쳐야 한다. 덜어내고, 나누고, 모두에게 이롭게 대함으로써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의 가장 혼란했던 상황 속에서 노자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무위의 철학을 먼저 실천하고 있던 실리콘밸리의 리더들의 리더십과 경영철학을 통해 배워보자.

노자는 강자나 약자 할 것 없이 최상의 미덕을 겸손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은 물처럼 되는 것上善若水(상선약수)’이라고 했다. 노자는 도를 물에 비유하여 바람직한 삶의 자세란 낮은 곳으로 쉼 없이 흐르고, 더러운 곳도 마다하지 않고, 다른 사물과 다투지 않는 물의 속성을 닮아서 겸손하고, 착하고, 평화로워야 한다고 가르친다. 또한 물은 앞서가는 물을 추월하려고 덜미를 잡지 않는다. 스스로를 드러내거나 으스대고 자랑하는 행동은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노자가 강조한 도의 자세를 애플을 둘러싼 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설명한다. 애플 창업 후 초기의 스티브 잡스에게서는 도에 상반된 자세가 엿보였다. 그는 동료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 주장하고 강요했다. 그의 태도는 결국 애플에서의 퇴출로 이어졌다. 반면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은 묵묵히 엔지니어로서의 위치에 만족했다.

실제로 애플 초기의 여러 기술은 그에게서 비롯됐지만,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대로 중용의 자세를 유지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동료들과 공을 나누었다. 스티브 잡스 사후 애플의 수장이 된 팀 쿡은 언론이 쏟아낸 애플의 부정적인 전망에도 개의치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에 집중했다. 잡스의 리더십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타운홀 미팅으로 소통을 강화했다. 그 덕분에 지금의 명성을 유지해나가고 있다.

노자는 리더가 자신을 낮추고 드러내지 않을 때 모두가 싸우지 않고 조화롭게 공존한다고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가 먼저 솔선해서 자신의 특권의식과 탐욕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겸손의 리더십은 한 사람의 승리가 아닌 모두의 승리가 되고, 더불어 나누는 상생의 미덕으로 이어진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없는 복지를 실천하는 스타벅스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으로 인류의 진보라는 대의를 향해 나아가는 스페이스엑스처럼 치열한 경쟁이 당연한 시대 속에서도 ‘너보다 나은 내’가 아닌 모두에게 이로운 존재임을 증명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혼자만이 아닌 모두의 위기가 된 지금 더욱 더 절실한 태도다.

노자의 도는 말장난 같다. ‘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항구적인 도가 아니道可道非常道(도가도비상도)’라든가 ‘있음이 이롭게 되는 것은 없음이 쓸모가 있기 때문有之以爲利(고유지이위리) 無之以爲用(무지이위용)’이라는 말이 그렇다. 노자에 따르면 최고, 최상, 최후의 혁신이란 가장 작은 것, 가장 소박한 것, 가장 심플한 데 있다.

그 가르침대로라면 혁신의 종착지는 무無여야 한다. 산업이 고도화된다는 것은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적 수준이 가장 복잡한 단계에 도달했다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함에서 혁신을 찾아야 한다는 말은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혁신이란 상식을 뒤집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것을 생각하면 노자의 가르침에서 혁신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이를 빠르게 간파한 것이 구글이다. 구글은 닷컴 태동기부터 독자적인 노선을 걸으며 버블 이후 지금까지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한 화면에 담을 수 있는 가장 많은 정보를 펼쳐놓은 야후와 대조적으로 구글은 작은 검색창 하나만 띄웠다. 하지만 텅 비어 있는 듯한 그곳은 무한한 정보를 품고 있었다.

또한 애플도 비움으로써 혁신을 채웠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 제품에 미니멀리즘을 구현했는데, 디자인뿐만 아니라 복잡한 기능도 단순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여 수많은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아마존웹서비스도 누구든 제약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개방된 플랫폼을 만들어 혁신을 창출해내고 있다.

혁신은 기존의 것을 끊임없이 비워냄으로써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노자의 ‘도가도비상도’처럼 혁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미 혁신이 아닌 것이다. 그 의미를 실천한 이들이 실리콘밸리에 있다. 노자가 말한 혁신이라는 ‘계곡의 신은 죽지 않았다谷神不死(곡신불사)’. 혁신의 기운이 쉼 없이 샘솟고 있는 계곡, 그곳이 바로 실리콘밸리다.

《도덕경》을 읽다 보면 현대의 도덕률과 배치되는 부분을 볼 수 있다. 노자는 유교에서 강조한 덕목인 인仁, 의義, 효孝, 충忠의 어질고 의로운 개인,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식, 자식을 자애로 보살피는 부모, 국가에 충성하는 신하를 비판한다. 인위적인 도덕률을 도입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연을 닮은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한다면 굳이 정의와 불의를 구분할 필요도 없고, 부모와 자식, 가정이 제자리를 지키며 화목해지고, 무위의 리더십으로 나라를 다스리니 저절로 질서가 잡혀 충성스러운 신하가 필요 없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에서 가능할지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마스크 하나로 주먹다짐까지 하는 혼란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럴수록 무위의 리더십으로 널리 포용해야 한다는 것이 노자의 가르침이다.

무위의 리더십으로 혁신을 이끌어낸 사례는 실리콘밸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불통의 리더십으로 퇴출됐던 스티브 잡스가 소통의 리더십으로 복귀하면서 애플을 부흥기를 이끌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또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등에 밀려 생존의 위협을 받았던 IBM을 회생시킨 루이스 거스트너의 리더십도 대표적인 무위의 리더십이다.

그는 직원들의 의견을 경청할 뿐만 아니라 실무진들이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업무를 추진할 수 있도록 권한을 전폭적으로 위임한 것으로 유명했다. 휴렛팩커드도 큰 단위의 목표만 정한 후 세부적인 업무 추진 방식을 직원들에게 위임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디스플레이 모니터를 개발하는 척 하우스라는 책임연구원이 시장성이 없다는 상사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판단력을 믿고 제품을 개발해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누군가는 노자의 철학을 이상적인 말뿐이라며 비판할 수도 있지만 2500년간 현실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는 일상의 지혜다. 리더가 자신의 선악(인, 의, 효, 충)으로 조직원을 구분하고, 평가하고, 그들의 의견과 비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독단적인 리더십을 펼치면 이에 기생하는 충신들만 늘어간다. 그동안 회사나 각종 권력기관에서 목격한 크고 작은 부패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누구도 제대로 품지 못하는 리더는 널리 존중받을 수 없다. 지금처럼 혼란이 가득한 때, 우리 집에도, 우리 회사에도, 우리 동네에도 모든 것을 두루 조화롭게 담는 리더의 그릇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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