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 세상의 모든 딸, 엄마, 여자를 위한 자기 회복 심리학
[리뷰]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 세상의 모든 딸, 엄마, 여자를 위한 자기 회복 심리학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0.09.1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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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우란은 정신 분석 상담 전문가. 동국 대학교 교육 대학원 상담 심리학 석사를 마치고 서울 불교 대학원 대학교 상담 심리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안산 정신과 병원 심리 치료실, 서울시 청소년 상담지원 센터 등을 거쳐 현재 심리 클리닉 ‘피안’에서 전문 상담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1만여 회 이상 심리 상담 및 꿈 분석을 진행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니던 대학교를 중퇴, 수도원에 입회해 10년을 살며 영성과 심리를 공부했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이들의 고통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소명으로 여기며 살았다. 이후 인간의 삶과 마음에 대한 멈추지 않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환속했다.

10여 년 수도원 생활에서도 끝끝내 찾지 못했던 ‘나’의 혼란과 고민의 정체를, 정신 분석을 받고 또 공부하며 경험할 수 있었다. 닛부타의숲 정신 분석 클리닉에서 상담가로 3년간 개인 분석 및 꿈 분석을 진행했고, 현재 LPI(Lacanian Praxis Institute)에서 본격적인 라캉 정신 분석을 수련 중이다. 그간 분석가와 피분석자로서 체화한 경험을 상담실이라는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초등 자존감의 힘》(공저)이 있다.

아기인 남동생이 엄마 품속에서 자고 있고, 동생보다 겨우 한 살 많은 누나도 아직 어린 아기이지만 엄마는 동생 옆에서 동생 귓불을 만지며 잠들게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동생 귀가 퉁퉁 부어 있다. 이 한없이 외롭고 애처로워 보이는 여자아이는 영지 씨가 상담실에서 기억해 낸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이다.

한편 여자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시간이 남자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시간보다 30%가량 부족하다는 프로이트를 비롯한 정신 분석학자들의 연구 결과도 있다. 이는 딸들이 출발부터 결핍을 안고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렇듯 더 손이 많이 가는 오빠, 남동생, 심지어 아빠(남편)라는 존재 곁에서 감정적으로 소외된 어린 딸의 외로움은 그저 소외나 외로움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엄마에게 남겨진 감정 찌꺼기들이 고스란히 그녀(딸)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여성이 어린 시절에는 부모, 특히 엄마에게 맞추며 살다가 결혼해서는 남편, 아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양보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정작 딸에게는 감정적인 배출을 서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 책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는 엄마의 감정적 소외 속에 자란 딸이 엄마가 되어 또다시 자신의 딸을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되풀이되는 엄마, 딸, 여자의 완고한 심리적 결합 현상을 파헤친다. 어릴 적 엄마에게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받은 상처를 기억해 내고, 그것이 현재 엄마 역할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깨닫고, 그러고 난 다음 엄마 자신과 딸아이의 인생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따뜻한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1.

열심히는 하는데 어느 선은 도저히 넘을 수 없다고 하소연한 한 고등학생 여자아이가 있다. 아니, 넘어야 할 선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겠어서 답답하다고 했다. 집안 분위기도 대체로 허용적인데, 왜 이 여학생은 답답함을 느끼는 것일까?

그것은 엄마의 말투에서 비롯되었다. “난 그저 네가 잘됐으면 좋겠어. 그게 전부야” 같은 표현들이다. 아이는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건지, 엄마가 원하는 ‘선’을 가늠할 수 없어서 답답하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엄마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른다는 데 있다. 엄마 자신도 모르는 욕망과 기준을 딸아이가 좇으려 하니 그야말로 답답하고 숨이 막힐 수밖에 없다.

#2.

한 30대 여성은 어릴 적 꽉 막힌 남편과 빠듯한 살림으로 불행한 삶을 산 엄마 밑에서 자랐다. “그냥 있어, 뭘 자꾸 하려고 해, 그냥 가만히 있다가 시집가면 되지” 같은 엄마의 말을 반복적으로 들으며 그녀는 마음에 큰 통제의 선이 그어지는 듯했다.

엄마의 알 수 없는 통제와 금지에도 그녀는 좋은 직장을 구하고 남자친구도 생겼다. 그러자 이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외로운 엄마를 두고 떠나야 해서일까? 하지만 이 여성의 마음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면 뜻밖의 진실을 만나게 된다. 바로 엄마보다 더 행복해지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었던 것이다.

이런 사례는 상담실에서 만나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에 단골로 등장한다. 상담실에서뿐만 아니라, 아마도 우리 주위 모든 여성들의 마음속에게는 크고 작은 상처로 겹겹이 쌓여 있을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바로 엄마의 시선이다. 나는 지금 나의 고유한 시선으로 보고 있는가, 어릴 적 마음속에 자리 잡은 엄마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가? 진정한 자신의 시선과 마음속 엄마의 왜곡된 시선이 뒤엉킬 때, 즉 두 시선의 어긋남은 엄마로서 여성의 삶에 이러저러한 문제를 일으키고, 그 여파는 주위 친밀한 가족에게까지 미친다.

그러기에 지금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나의 시선과 엄마의 시선을 분리해 내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엄마를 ‘죽이는’ 것이다. 그렇게 엄마를 놓아 보내야 비로소 나도, 내 딸아이도 감정의 대물림을 끊고 자신의 고유한 삶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갈 수 있다.

책은 ‘엄마는 엄마면 되고, 남편은 남편이면 되고, 딸은 딸이면 된다’고 단언한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욕구를 타인에게 요구하는 대신,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 자신의 진짜 욕구가 무엇인지 성찰하고 그것을 스스로 실현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의 거리 두기이다.

사랑의 거리 두기란 상대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데 나태하지 않으면서도, 그 사람의 삶 자체에 대해서는 무책임한 것이다. 마음은 살피되, 나의 욕구를 투사하지 말라는 뜻이다. 특히 어려서부터 특유의 심리적 유대로 연결되어 있는 엄마와 딸의 관계에서 이 문제는 핵심이다. 엄마와 딸의 온갖 감정이 뒤엉켜 붙어 만들어진 애증은 떨어져야 할 때 제대로 떨어지지 못해 쌓인 감정 찌꺼기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끈끈한 심리적 유대가 엄마와 딸을 꽁꽁 묶어 두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사랑의 거리 두기가 가능할까? 책에서는 두 단계로 시도해 볼 것을 권유한다. 첫 단계는 딸을 떠나보내는 상실을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것이고, 둘째 단계는 딸의 빈자리를 온전히 나로 채우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이 과제는 어쩌면 오랜 시간 수련하듯 훈련해야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엄마와 딸이 여자의 한계를 넘어 한 인간으로 살고자 한다면, 꼭 필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실 익숙하지 않을 뿐, 일단 한 발을 내딛기만 하면 자신의 삶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갈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그 첫 발을 함께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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