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사랑 이후의 부부, 플라이시먼... 결혼과 이혼, 현대의 인간관계를 섬세히 관찰한 소설
[신간] 사랑 이후의 부부, 플라이시먼... 결혼과 이혼, 현대의 인간관계를 섬세히 관찰한 소설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0.09.2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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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매거진> 기자인 태피 브로데서애크너는 첫 장편소설인 이 책 《사랑 이후의 부부, 플라이시먼》(왼쪽주머니刊)이 출간된 후 영미권 언론 매체들과 문단의 극찬을 받았고, 책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미국, 영국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소설은 주인공 토비와 레이철 부부의 찬란했던 사랑과 결혼, 그 후 14년이 흐른 뒤 결혼에 위기를 맞게 된 이야기를, 마치 작가 자신과 같은 기자 출신이자 토비의 대학 친구인 화자 리비의 시선으로 그린다.

토비는 레이철과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혼을 하기로 한 걸까?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사랑과 결혼, 가족, 부부 갈등, 중년의 위기 등을 고찰한다. 직장 생활과 결혼 생활,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으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뇌하고 방황하는 인물들을 통해, 종종 폭소를 터뜨리게 하면서도 결혼 생활의 실존에 관한 통찰력 있고 마음을 울리는 시대의 초상을 그려낸다.

소설은 미국 뉴욕시에 사는 토비와 레이철 부부가 이혼 수속을 밟으며 자녀 해나와 솔리를 공동으로 양육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가정에 충실했던 남편 토비는 병원에서 간의학 전문의로 일하고 있고, 아내 레이철은 탤런트 에이전시(연예 기획사) 대표로 최상위 부유층이 되고자 하는 욕망에 시간에 쫓기며 일해왔다. 이제 별거에 들어간 토비는 심리 치료를 받으며 악몽과 같았던 결혼 생활에서 회복하려는 한편, 돌아온 싱글로 온라인 데이팅 앱에 빠져 여러 여자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레이철이 해나와 솔리를 새벽에 그의 집에 데려다 놓고는 사라져 연락을 받지 않는다.

아내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불안과 걱정으로 정신적인 고문을 받으면서도 아이들에게는 그런 기미를 보이지 않기 위해 미소를 지어 보이는 한편, 마치 모든 것이 다 잘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여자와 섹스팅을 하고 있다니, 그는 자신이 얼마나 미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 174쪽

토비는 레이철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려 애쓰면서 병원에서는 위중한 환자들을 진료하고, 아빠로서 의무를 다하며, 데이팅 앱에서는 여자들에게 인기를 누린다. 이혼 서류에 서명만 남은 토비에게 벌어지는 온갖 일들, 자신의 결혼 실패에서 교훈을 찾아내려는 주인공의 모습이 코믹하고도 비극적으로 그려진다. 작가는 언론인의 시각으로 데이팅 앱을 통한 만남이나 소셜 미디어의 폐혜, 성공과 사회적 상승, 인간의 성적 욕망 등을 풍자적으로 그려낸다.

대학 시절 한눈에 사랑에 빠져 결혼한 이들은 세월이 흐른 뒤 이혼 위기에 처해 있다. 도대체 이 부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소설의 화자는 대학 시절 토비와 친구가 된 기자 출신 리비이다. 제3자의 시선으로 볼 때 두 사람 중 누구의 잘못이 더 큰 것일까? 리비는 토비와 레이철 부부의 위기, 여전히 싱글로 지내며 자유분방한 삶을 즐기는 다른 친구 세스, 그리고 40대 초반 여성인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과 결혼, 맞벌이에 육아를 병행하며 벌어질 수 있는 부부간 갈등, 결혼과 이혼의 의미를 여러 각도로 조명한다.

또한 이혼은 건망증의 문제이기도 하다. 즉, 그런 모든 혼란이 있기 이전의 순간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며, 사랑에 빠진 순간들을, 떨어져 있는 것보다 함께 있는 것이 더 특별하다고 깨달은 순간들을 망각하는 것이다. 결혼은 그런 순간들을 기억하며 봉사하며 살아간다. - 495쪽

소설은 토비와 레이철의 찬란했던 사랑과 결혼의 그 화려한 출발 뒤에, 맞벌이 부부로 출산과 육아 등을 거친 뒤 세월이 지나서 어느 덧 서로에 대한 배려는 사라지고 두 사람 각자의 요구만 남은 현실과 추락을 그려낸다. 이 시대 속 결혼이라는 제도의 단층선들을 항해한다.

3부에서 리비는 우연히 레이철과 마주치게 되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너무 일찍 부모 없이 외할머니에게서 길러지고, 부유층이 다니는 학교에서 받았던 상처 등 레이철의 성장과정과 그녀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 부부의 결혼과 이면, 남편의 계속되는 이혼 요구에 순간적으로 유혹에 굴복하고 만 실수 등이 드러난다. 작가는 후반부 리비의 독백을 통해, 이 시대에 여성으로서 겪는 현실, 직장 생활과 부부 관계, 자녀 양육을 해가며 우리가 선택한 배우자와 가족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어느덧 찾아온 중년의 위기 가운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실존적 고민을 가지고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 인생의 의미를 동정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열정적으로 그려낸다.

아내는 최고의 애인이나 영원한 애인이 아니다. 그녀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다. 그녀는 네가 너 자신을 재료로 해서 함께 만든 존재다. 그녀는 너 없이는 아내가 될 수 없고, 그래서 그녀를 미워하거나 배반하거나, 네가 그녀와 겪고 있는 고민에 대해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너의 괴사한 손가락을 욕하는 것과 같다. - 395쪽

리비가 자신이 쓰려고 한다는 소설의 결말처럼 이 책은 열린 결말로 끝난다. 이미 주인공들에게 매료된 우리는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자문하게 된다. 과연 토비와 레이철은 다시 합칠 수 있을까? 상대의 관점에서 용납하고 용서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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