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처한 개인의 자유... 개인의 자유와 삼권분립
위기에 처한 개인의 자유... 개인의 자유와 삼권분립
  • 민경국 강원대 교수
  • 승인 2020.10.22 07: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이에크소사이어티 세미나

자유를 확립·유지하기 위한 정치제도가 삼권분립이다. 이 제도는 국가권력을 그 성격에 따라 입법권, 행정권과 사법권으로 삼분하고 이들 권력을 각기 입법부, 행정부와 사법부에 분속시키는 원리다. 이 원리는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유서 깊은 제도다.

존 로크와 몽테스키외 이후 수 백 년 동안 이념적 그리고 정치적 논쟁과정을 통해 권력분립제도가 형성된 것이다. 오늘날에는 그런 제도를 헌정론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여긴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의 진화와 함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서 문화적 진화의 선물이다.

이는 진화의 백미(白眉)가 아닐 수 없다. 인류의 뿌리였던 시기의 원시적 마인드로는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자유, 보편적 추상적 성격의 정의의 규칙, 법치 등 자유를 제도적으로 확립·유지하기 위한 제도들 가운데 하나가 삼권분립인 것이다.

그러나 본래 개인의 자유를 확립하여 이를 보장하기 위한 권력분립은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실패했다. 그것은 자유를 보장하기는 커녕 우리를 간섭주의·사회주의로 이끌어 가고 있다. 삼권분립에 고장이 난 것이다.
 

법의 지배를 통한 입법권의 제한

최근의 예를 든다면 세금 폭탄으로 주택 소유자를 징벌하는 ‘부동산 3법’, 거주의 자유를 제약하는 주택거래 허가제 등과 같이 주택공급 확대가 아니라 징벌적 세금과 규제를 통해 뛰는 집값을 잡으려는 입법이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하는데도 행정부, 사법부 어디에서도 이를 견제하는 곳이 없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강제단축, 세금 일자리 정책 등 경제적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정책을 견제하는 곳도 없다. 오히려 국회는 그런 정부 정책을 법률로 뒷받침한다. 헌법재판소, 대법원은 물론 검찰까지도 정부의 시녀(侍女)로 만들었다.

입법이라는 용어는 역사적으로 권력분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권력분립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입법이라는 말이 비로소 일반화되었다. 권력분립의 발단은 절대적 권력을 쥐고 있던 왕으로부터 국가권력을 의회로 이동하는 사건이었다.

이동의 역사적 사건은 찰스 1세 시절 절대군주의 권한을 의회로 이전하여 왕권을 제한하고 자유권을 확립했던 권리청원(1628)과 그리고 의원선거의 자유와 의회 내에서 언론의 자유 등을 보장하는 권리장전(1689)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입법이라고 말할 때의 법 개념이다. 입법부가 정한 것은 무엇이든 법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입법은 법의 지배와 연결되어 있었다. 법의 지배는 입법부가 모든 사인(私人)들과 정부를 동등하게 구속하는 정의로운 행동규칙만을 제정할 수 있게 하는 원칙이었다.

17세기 입법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법 개념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입법부가 정한 것이면 모두 법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입법이라는 용어는 공허하고 법 개념도 같은 말의 반복이라는 의미에서 순환적이다. 만들어져야 할 법은 모든 사람들을 동일하게 구속하며 어느 누구도 통상적인 절차로부터 면제되지 아니한다.

권력분립에서 입법의 이런 제한은 권력분립의 창시자에 속하는 존 로크에서 또렷하게 볼 수 있다. 그는 시민의 재산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이권분립’, 즉 입법권과 집행권(즉, 사법기능)의 엄격한 분리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려는 인간 본성의 야욕”을 억제하려고 했던 것이다.

입법권은 “특정한 방법으로 행사되어야 하며 그 권한을 행사하는 자는 보편적 규칙들만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로크의 믿음이었다. 사건이 생길 때마다 법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선포되어 확립된 법에 의해 개별사건을 다룬다. 이런 견해는 18세기 영국에서 지배적인 견해로 인정되었다.

권력집중과 독재를 막아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왕의 절대적 권력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던 인물이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몽테스키외(1689-1755)였다. 그가 눈길을 돌린 것이 영국이었다. 오랫동안 영국에 체류하면서 영국의 헌정질서를 관찰하여 모국에 적합하다고 여기는 혼합헌법적 권력분립 모델을 고안했다.

그는 ‘법의 정신’의 제11편 제6장에서 국가권력을 기능적 관점에서 입법 사법 행정으로 분류하고 세 가지 국가권력을 국왕, 귀족, 국민에게 배분하는 권력분립을 제안했다. 권력분립모델은 칸트 전통의 엄격한 권력분립이라기보다는 권력분배의 성격이 강하다.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국민의회와 귀족의회의 존재다. 그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서로 독립적으로 입법 행정 사법에 표현할 수 있고 동시에 서로 독립된 양원제로 인하여 하나의 의회만 존재한다면 의회의 의결 대부분은 소수인 귀족들을 희생시켜 극단적인 경우 다수의 국민이 소수의 귀족을 노예로 만들 위험성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간단히 말해서 삼권분립에서 몽테스키외가 염두에 두었던 것은 국민의회와 귀족의회가 서로 견제하면, 자유를 보장하는 보편적인 입법이 가능하다고 봤다. 법치는 입법부의 입법, 사법의 판결 그리고 행정부의 집행 등 세 권력을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법치와 삼권분립은 서로 분리할 수 없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법치라는 정치적 이상은 자유주의의 핵심요소다. 삼권분립은 결코 민주주의의 요체가 아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날에는 삼권분립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오늘날 입법부는 의회민주주의 표상이다. 권력분립론이 생겨났던 초기에는 입법부란 행정부를 통제하는 역할을 하는 대의제 의회를 지칭했다. 그때 입법부가 만든 것은 개인의 재산을 건드리는 조세 문제를 제외하고는 정의의 법이 아니라 정부에 대한 명령이었다. 이는 정부에게 물적 인적 자원을 할당하는 일과 할당된 자원의 이용에 관한 지시와 감독으로 구성된 것이다.

행정부는 입법부의 결정을 이행하는 과제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규칙의 집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입법부가 내린 명령을 집행하는 것이다. 정의로운 행동규칙으로서 법은 법원의 판결을 통해서 형성되었다. 그 판결을 집행하는 것은 행정부였다.

그렇게 하다가 입법부는 명실상부하게 입법의 기능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이런 길을 터놓은 것은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이었다. 그러나 독립적인 양원제로서 입법부의 과제는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보편적 입법에 있었다.

18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입법부가 정한 법은 행정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법원으로 넘겨졌다. 그런 법은 행정부가 이행하는 것은 아니다. 사법으로서 정의의 법은 행정부가 아닌 사법부가 이행할 성격의 법이다.

개별 사건들에 대한 소송이 제기되었을 때에 비로소 법정에서 정의로운 행동규칙을 적용하여 판결한다. 법원의 판결은 누가 집행하는가? 그 집행은 인적 물적 자원을 입법부로부터 지정받은 행정부의 과제다. 그리고 그 과제의 집행을 통제할 과제는 입법부가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의회가 법을 제정하는 권력을 획득하게 되면서 입법부가 명실상부하게 되었던 것이다.

입법부의 입법권은 정의로운 행동규칙에 의해서 강력하게 제한되었다. 입법권을 법치와 연결시킨 것이다. 이에 따라 입법부가 모든 사적 인간과 정부를 동등하게 구속하는 정의로운 행동규칙만을 제정할 수 있었다. 정부는 엄격하게 법 아래에 있었다. 권력분립은 법치와 분리할 수 없는 통일된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법 아래에서의 정부와 입법에서 말하는 법 개념은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그런 변화를 초래한 장본인은 두 가지다. 첫째로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국민주권 사상이 권력분립에 침투했다. 이에 따르면 주권자로서 국민이 원하면, 그리고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과 의회의 다수가 정한 것이면 무엇이든 법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확산되었다.

주권이란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권력을 말한다. 따라서 국민이나 그 대표인 의회의 권력을 어떤 도덕적인 이유로 제한하는 것은 주권이라는 개념의 모순이다. 그런 이유로 권력분립과 한 덩어리였던 법치를 걷어차 버렸다. 이로써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유서 깊은 제도가 내용을 전부 갉아 먹힌 빈껍데기가 되었다.

권력분립을 형해화한 두 번째 요인은 19세기 중반 제레미 벤덤과 제임스 밀 등이 주도했던 정치적인 지적 운동이었던 철학적 급진파의 등장이었다. 급진파가 지향했던 것은 행복원리에 따른 개혁이었다. 곡물법폐지를 비롯해 보통·비밀선거의 도입을 주장했다. 제레미 벤담은 입법에 전권을 줘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최고헌정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국가구성원들의 이익과 안전을 더 잘 증진시켜 준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입법에 대한 어떤 제한도 행복의 원칙과 모순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만들면 무엇이든 법이 된다는 뜻에서 그런 목소리는 바로 다름 아닌 입법만능주의다. 그는 ‘차티스트 운동’에 가담하여 선거법개정을 통해 의회주의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지만 입법을 제한하는 법치를 제거함으로써 삼권분립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자유주의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던 것이다.

민주주의야말로 벤담이 대변하는 다수의 행복을 보장한다는 이유에서 의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보통·비밀선거와 주기적 선거를 중시했다. 그리고 의회의 무제한적 권력을 허용한다. 민주주의와 관련해서 벤담의 공리사상은 주권재민 사상과 같다. 뿐만 아니라 입법에 전권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주권재민 사상은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이상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데카르트 전통의 설계주의적 합리주의의 미신을 전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절대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21대 국회. 전권을 가진 의회는 정부권력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권력을 확대시키고, 개인의 자유는 위축된다.
더불어민주당이 절대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21대 국회. 전권을 가진 의회는 정부권력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권력을 확대시키고, 개인의 자유는 위축된다.

법 아래에 있는 정부를 위해

입법의 한계를 설정하는 법치를 내쳐 버림으로써 이제 정부는 법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의회에서 만들어지는 법은 이제는 사법부가 아닌 정부로 간다. 법의 집행자는 사법부가 아니라 정부다.

예를 들면 입법부가 최저임금제, 경제민주화법, 임대차 3법(전월세신고제,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 부동산거래감시법, 토지공개념 3법(택지소유 상한제, 토지초과이득세법, 개발이익 환수제) 등을 제정하면 이 법을 이행하는 주체는 정부다.

의회에서 정한 것이면 어떤 행동이든 정부는 취할 자유가 있다. 원래 의회는 정부의 제왕적 권력을 통제하고 될 수 있는 대로 줄이려고 했다. 이것이 삼권분립의 취지였다. 그러나 전권을 가진 의회는 정부권력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권력을 확대시켜왔다.

전권을 가진 의회가 정한 행동이 많을수록 정부 활동의 규모는 더 커지고 그 결과 개인의 자유는 위축된다. 다수를 차지하는 의회와 정부의 상호간 지지를 통해서 정부의 규모는 커지고 민간영역은 줄어든다.

교조적 민주주의가 확산됨에 따라 흥미롭게도 동일한 의회가 두 가지 상이한 성격의 과제를 장악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국민의 대표가 모든 개인들과 국가기관들을 동등하게 구속하는 “정의로운 행동규칙을 제정하는 일을 넘어서 정부에게 할당할 재정적 물적 인적 수단과 서비스 공급에 대한 결정까지” 장악하게 되었다.

법을 정하는 의회가 동시에 행정부에게 명령을 발하는 권한까지도 갖게 되었다. 예를 들면 세법을 정하는 의회가 동시에 정부에게 어떤 공공재를 산출할 것인가를 명령하는 권한까지도 갖게 된 것이었다.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 입법기관이 현재 당면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가장 적합하게 보이는 법, 즉 처분적 법을 제정하게 되었다. 이는 유서 깊은 법의 지배의 종말을 초래하게 되었다. 권력분립이 실패했다. ‘자유의 보호벽’이 허물어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진정한 의미의 입법보다 차별적 편파적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임의로 처분적 법을 만들 관심과 의욕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대기업의 활동을 억제하여 중소상공인을 보호할 목적으로 제정된 경제민주화법, 소득재분배를 위한 입법, 최소임금 인상을 위한 입법 등이 처분적 법에 해당된다. 이런 내용의 입법은 보편적 법을 제정하는 입법부가 지닌 ‘최고 권력의 정당성’을 상실한다.

삼권분립을 어떻게 개선하는 것이 효과적으로 자유를 확립·보존할 수 있는가? 하이에크처럼 법의 지배원칙에 합당한 법만 제정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입법의회와 공공재의 생산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정부의회를 구성하는 양원제를 도입하고 있다. 구성원 선출과 구성원 후보자자격에서 몽테스키외의 혼합헌법과 비교할 때 연성혼합헌법이다.

하이에크의 설명을 종합하면 입법의회는 정치적으로 독립된 원로원, 내가 보기에는 일종의 ‘자연적 귀족’으로 구성되는 상원이다. 몽테스키외와 비교할 때 근본적 차이는 하이에크의 헌법모델에서 헌법기본조항에 무엇이 법이어야 하는가를 명시적으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반드시 양원제가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기존의 의회의 입법기능을 정의로운 행동규칙에 합당한 법을 찾아내는 데 국한하는 장치만을 제도화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그 장치가 헌법기본조항에 도입된 법다운 법의 조건이다.

민경국 강원대 교수
프라이부르크대 경제학 박사
전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하이에크소사이어티 2020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가을 정책심포지엄 위기에 처한 개인의 자유, 이대로 괜찮은가에서 발표한 자료를 요약, 발췌해 게재합니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