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법치 교육의 공론장, 배럿 美 대법관 청문회
자유와 법치 교육의 공론장, 배럿 美 대법관 청문회
  • 조평세 미래한국 편집위원·트루스포럼 연구위원
  • 승인 2020.10.24 10: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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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 대통령으로부터 연방 대법관에 지명된 에이미 코니 배럿 제7 연방항소법원 판사.
트럼프 미 대통령으로부터 연방 대법관에 지명된 에이미 코니 배럿 제7 연방항소법원 판사.

예상했던 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9월 26일 확고한 보수주의자인 에이미 코니 배럿 연방고등판사(1972~ )를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1933~2020)의 후임 대법관으로 지명했다.

1주일 후 트럼프 대통령과 상원 사법위원회 소속 공화당 의원 두 명이 코로나 확진 판정이 나면서 대법관 인준청문회 진행 여부가 잠시 불투명해지기도 했지만 금세 모두 회복되면서 청문회는 원래 예정대로 10월 12일 열렸다.

22명의 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3일 동안 각각 한 시간씩의 발언과 질의를 했다. 이제 상원 본회의로 넘어간 배럿 대법관 후보 인준 안건은 월말까지 최종 투표를 마칠 예정이다.

민주당은 코로나와 선거 임박 등의 여러 핑계를 대며 불만을 토로하고 11월 선거에 유리하게 이용하려 하고 있지만 100석 중 53석으로 가결 정족수를 확보하고 있는 공화당은 특별한 이탈만 없다면 무리 없이 인준에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청문회는 공화당에는 대국민 시민교육의 기회가 되고 있고 민주당에는 집요한 선거 캠페인이 되고 있다.

이번 배럿 후보 인준청문회 과정을 통해 확연히 드러난 것은 미국의 위대한 헌정공화주의 사상과 법철학이다. 사법위원장인 린지 그래험 의원은 12일 모두발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쪽(보수)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니 청문회 과정을 생략하고 그냥 바로 표결로 넘어가자고요. 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 청문회의 목적은 단순히 대법관을 인준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전 국민과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이 청문회는, 미국의 헌정주의와 공화주의 법철학에 대해 시민교육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실제로 미국인 수백만 명이 지켜본 3일 동안의 질의응답은 미국의 헌정공화주의, 삼권분립, 법철학, 정부론 등에 대한 놀라운 교양수업이 되었다.

공화당 사법위 의원들은 의도적으로 미국 중학생이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의 언어로 질문했고 배럿 후보도 법대 교수 시절 3년 연속 ‘최고의 교수 선정’ 출신답게 탁월하게 미국의 법정신을 풀어냈다.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수업을 진행 중인 대부분의 학교는 이 청문회를 시청했다. 배럿 후보의 자녀들도 장애아동을 제외한 6명 모두 참석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민주당의 비열한 공격

특히 공화당 벤 싸스 의원은 지난 몇 년간 미국 헌정주의의 핵심 원칙인 삼권분립과 사법독립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배럿 후보에게 비정치적이고 수동적인 사법부가 정책을 다루는 입법부 및 행정부와 어떻게 다른지 국민들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것을 요구했다.

또한 헌법이 고안되고 작성된 18세기 말 당시의 의도대로 읽고 원문에 충실해야 한다는 원문주의(originalism/textualism)와, 사회변화에 맞게 ‘실용적으로’ 헌법이 읽혀야 한다는 진보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살아 있는 헌법론’ (living Constitution)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따져 물었다. 좌경화된 학교와 언론 때문에 올바른 시민교육을 받지 못한 미국인들을 위해 미국의 역사와 국가관을 확실히 가르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법관 후보 리스트에 포함된 마이크 리와 조쉬 하울리 공화당 의원도 이번 ‘대국민 시민교육’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배럿 후보와 질의를 주고받으며 종교의 자유와 법치주의 등에 대한 기초적인 미국의 건국정신을 자세히 설명했다.

최소 수백만이 흥미롭게 지켜본 생생한 교육 현장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미국이 ‘다수의 폭정’을 가능하게 하는 ‘민주정(democracy)’이 아니라 ‘헌정공화정(constitutional republic)’이라는 사실, 즉 미국은 ‘사람의 정부가 아니라 법의 정부’이며 모두가 법 아래 동등하다는 것을 명백히 설파했다. 자유민주공화주의의 종주국인 미국 헌법의 천재성이 현저히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화이트하우스 민주당 의원은 10월 13일(현지시간) 보수주의자인 에이미 코니 베럿 연방대법원 판사 인준 청문회에서 기업과의검은돈 의혹을 주장하며 공세를 펼쳤다. / AP연합
화이트하우스 민주당 의원은 10월 13일(현지시간) 보수주의자인 에이미 코니 베럿 연방대법원 판사 인준 청문회에서 기업과의 검은돈 의혹을 주장하며 공세를 펼쳤다. / AP연합

흑인 입양 자녀 2명을 포함해 7명의 자녀를 두고 최상의 커리어를 쌓아오며 모든 동료들에게 칭송과 적극적인 추천을 받고 있는 배럿 후보를 공격할 명분은 많지 않다. 작년 브렛 캐버노 인준청문회 당시 민주당이 저질렀던 인격살인을 미국인들은 기억하며 주시하고 있었다.

게다가 많은 민주당원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높여가고 있는 배럿 후보다. 3년 전 연방고등법원 인준청문회 당시 배럿의 독실한 가톨릭 신앙심을 가지고 공격했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았던 경험도 있었다.

대신 사법위원회 소속 민주당 10명은 모두, “배럿 후보가 임명되면 수백만 명이 혜택을 누리고 있는 오바마케어가 폐지된다”는 취약한 논리로 국민들을 겁주는 비열한 전략을 구사했다. 그들은 오바마케어의 혜택을 받은 사례들의 사진들을 시각자료로 활용해 끊임없이 시청자들의 감정에 호소했다.

언론이 충실히 만들어낸 트럼프 대통령의 비인격적인 면모도 잊지 않고 부각시키며 배럿 후보가 공화당의 사주를 받아 오바마케어 등의 진보정책을 무산시키려 한다는 식의 주장을 쉬지 않고 암시했다.

사실 배럿 후보가 대법관으로 임명된다면 실제로 가장 먼저 참여하게 될 대법원 심리가 11월 10일 오바마케어의 위헌성 판결(california v. texas)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으로서는 아주 타이밍이 좋은 공격 포인트이다. 더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건강 문제에 극도로 민감해져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민주당이 가져온 오바마케어의 일부 사례들은 전혀 일반화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험 의원이 13일 첫 질의에서 지적했듯이 오히려 오바마케어의 높은 보험료와 강제성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국민들이 훨씬 더 많은 상황이다.

화이트하우스 민주당 의원은 배럿 후보에게 질문은 하나도 하지 않고 30분 동안 수십 개의 카드보드 시각자료를 활용해 “대기업들이 보수 법관을 세우기 위해 2억5000만 달러의 ‘검은 돈(dark money)’을 쏟아부었다”는 음모론을 펼치기도 했다.

바로 다음 순서로 발언권을 얻은 테드 크루즈 의원은 대기업들이 민주당에 기부한 자금이 그 3배에 달한다고 고발해 민주당을 단숨에 허탈하게 만들었다. 청문회가 진행되면서 점점 다급해진 민주당 의원들은 두 명의 흑인 아이를 포함한 일곱 자녀를 키우며 변호사와 교수 그리고 법관까지 된 배럿 후보를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자, 광신도 집단 회원 등으로 몰아세우는 촌극까지 연출되었다.

“No Hints, No Previews”

청문회에서 민주당이 가장 집요하게 캐물었던 질문들은 역시 배럿 후보의 보수주의적 입장에 대한 것이었다. 동성결혼, 총기소유권 등의 문제들도 긴 시간 다뤄졌지만 가장 많이 주목했던 이슈는 낙태 문제였다. 바로 ‘로 대 웨이드’ 낙태 판결을 뒤집을 것인지에 대한 여부다. 청문회가 열리는 의회 건물 밖에서는 프로라이프 대학생 단체가 #ConfirmAmy (에이미를 인준하라) 라는 팻말을 들고 응원하고 있었고,

한편에는 페미니스트 및 동성애 단체 등이 입구를 가로막다 수십 명이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배럿 후보가 임명된다면 현재 대법원에 프로라이프(친생명, 낙태 반대) 보수 법관이 5명, 그리고 프로초이스(여성선택권, 낙태 찬성) 진보 법관이 4명이 된다. (배럿 후보의 임명으로 대법원의 보수-진보 구성이 6:3이 된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공화당 부시 대통령이 임명한 존 로버츠는 엄격히 따지자면 보수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이슈들에 대해 대법관으로서 어떻게 판결을 내릴 것인가에 대한 집요한 유도 질문에 배럿 후보는 끝까지 의견을 내비치지 않았다. 바로 “향후 대법원 심리가 있을 수 있는 이슈에 대해, 실제 법리 검토가 있기 전 사전 의견을 피력하지 않는다”는 법관 윤리강령에 충실한 것이다.

배럿 후보는 과거 긴즈버그가 세웠던 “No Hints, No Previews, No Forecasts” 라는 ‘긴즈버그 룰(Rule)을 언급하며 자신이 낙태 문제나 동성결혼 등의 재판에서 어떻게 판결하게 될지 절대 힌트를 주지 않았다.

과거 판례의 구속성(stare decisis)에 대해서도 배럿 후보는 엘레나 캐건 대법관(오바마가 임명한 여성 대법관)의 청문회 당시 발언을 인용하며 어떤 판례가 좋고 나쁘다는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로 대 웨이드가 잘못된 판결인지 계속 유지되어야 하는 판결인지도 힌트를 주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로 대 웨이드 판결이 학술적 정의 상 “더 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어 구속성이 확실한 ‘슈퍼판례’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블루멘털 민주당 의원은 배럿 후보가 15년 전 성당 미사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서명했었던 낙태 반대 성명서를 들이밀며 현재 의견을 유도하기도 하고, 교수 시절 썼던 서평의 내용을 가지고 시비를 걸기도 했다. 하지만 배럿 후보는 과거 법관이 아닐 때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했던 때와 지금의 주어진 상황은 다르며 자신에게 법관 윤리강령을 위반하도록 강요하지 않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Glorious ACB”

배럿 후보는 무엇보다 법관은 정책이나 법률에 특정한 의견을 가지고 판단하는 운동가(activist)가 아니라 오직 적혀 있는 헌법과 법률의 본래 의미와 향후 법정에 제출될 증거와 의견들을 바탕으로 중립적인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법철학을 분명히 했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정책부서(policy branches)이지만 사법부는 비정치적이고 수동적(apolitical and reactive)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은 ‘운동권 법관들(activist judges)’을 통해 자신들의 정책 의견을 사법부에 강요하려 하는 민주당의 반헌법적 태세를 꼬집은 것이기도 하다.

여론을 뜨겁게 달군 청문회의 하이라이트는 의외의 질문에서 나왔다. 존 코닌 공화당 의원이 배럿 후보에게 앞에 참고하고 있는 자료가 무엇이냐고 물은 것이다. 배럿 후보가 들어 보여준 종이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메모지였다.

수많은 자료들을 읽어가며 질문하는 민주당 의원들과 달리, 아무런 노트도 하지 않고 수많은 판례들과 의견들을 술술 외워 응대하는 명석한 두뇌와 차분한 여유를 자연스레 드러낸 것이다. 또한 배럿 후보는 20시간이 넘는 긴 질의 시간 동안 한 번도 품위와 기조를 잃지 않고 침착하게 답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로써 배럿 후보는 “Notorious(악명 높은) RGB”라는 별명을 얻었던 긴즈버그 대법관과 대조되는, “Glorious (명예로운) ACB”라는 별명을 굳히게 되었다.

이제 상원 본회의로 넘어간 배럿 대법관 인준 안건은 또다시 민주당의 선거용 촌극에 시달릴 것이다. 민주당은 필리버스터를 시도할 수도 있지만 과거 그들이 발동했던 ‘뉴클리어 옵션’ (기존 절차를 무시하고 투표를 진행하는 방법) 선례가 있기 때문에 공화당은 손쉽게 과반 정족수만으로 투표를 진행할 수 있다. 선거 캠페인과 별개로, 미국의 위대한 헌정주의 역사가 쓰이고 있는 것이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닐 고르서치와 브렛 캐버노 그리고 이번에 임명된 배럿 대법관은 향후 최소 2, 30년 동안 대법원에서 미국 보수주의의 한 축을 감당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11월 재선 여부와 상관없이, 역사는 이 3명의 보수주의자를 대법원에 들여놓은 트럼프 대통령을 ‘성공한 공화당 대통령’으로 기록할 것이다.

조평세

미래한국 편집위원
트루스포럼 연구위원
킹스칼리지런던 종교학과 졸업
킹스칼리지런던 분쟁안보개발학 석사
고려대 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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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2020-10-25 00: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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