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포로수용소` 유적公園, 入口에 金日成·李承晩 초상화 나란히
`거제포로수용소` 유적公園, 入口에 金日成·李承晩 초상화 나란히
  • 미래한국
  • 승인 2006.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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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 ‘포로수용소’인가? “어, 김일성이다.”
“어, 김일성이다.”거제도 신현읍 고성리에 조성된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입구에 들어선 관람객 세 사람 중 한 사람꼴로 하는 말이다. 6·25 전쟁 당시 인민군, 중공군 포로를 수용했던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전쟁의 축소판’이라고 불렸다. 반공포로들이 자유를 위해 목숨 건 투쟁을 벌였던 이곳은 현재 포로수용소유적공원으로 개발돼 있다. 그러나 막상 거제시에서 조성한 포로수용소공원은 입구부터 김일성과 이승만의 초상화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관람객들이 전시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김일성·이승만의 초상화가 세워진 입구를 지나가게 된다. 왼편에는 김일성, 스탈린, 모택동 등 공산군 측 인물의 초상화가 세워져 있고 오른편에는 이승만, 트루만, 맥아더의 초상화가 있다. 머리 위에는 참전국의 국기가 걸려 있다. 오른쪽에는 유엔기 뒤로 16개 참전국의 국기가, 왼쪽에는 북한의 인공기와 중국, 소련의 국기가 걸려 있다. 태극기는 유엔기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반면 인공기는 6장 걸려 있다.이곳에는 별다른 설명이나 표지판도 없이 초상화 아래 이름을 알리는 팻말이 있을 뿐이다. 한 관람객은 “공산세력과 자본주의 세력의 대결이 있었고, 공산세력이 생각했던 것보다 멋 있고 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군복차림의 김일성, 스탈린, 모택동에 비해, 중절모에 양복을 입은 이승만 대통령이 초라해 보인다”는 관람객도 있었다. 입구를 지나면 주전시관에 해당하는 대형 디오라마관에 들어선다. 포로수용소 전체 조망과 수용소 내부를 파노라마 모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친공포로의 폭동 장면을 재현해 놓은 장면에서는 ‘민족반역자 이승만 때려죽여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포로대립관에서는 수감된 포로들이 “살아남기 위해 친공과 반공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많은 포로들이 생명의 위협에도 불구, 자유를 택했고 반공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점은 간과되고 있다. 포로수용소공원은 2002년 준공되었다. 포로막사와 야전병원, 막사 등 포로수용소의 일부를 재현하고 북한군 남침, 국군의 사수, 대동강 철교 피난행렬, 포로생활관, 포로생포관, 포로대립관, 포로폭동관, 포로설득관 등 테마별로 전시관이 있다. 휴가철을 맞은 8월에는 평일 오후에도 줄을 서서 관람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코스다. 현 정권 들어 근현대사 유적지의 이념편향 지적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04년에는 대한민국을 “민족 반역세력이 주류가 된 나라”라고 표현, 물의를 일으킨 김삼웅 씨의 독립기념관장 인선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김정은 기자 hyciel@<반공포로 석방 역사 담긴 거제도 포로수용소> 1951년 조성된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당시 17만 명의 전쟁포로를 수용하던 곳이었다. 포로들 중 상당수가 반공으로 돌아섰고 친공·반공 간의 대립은 전쟁을 방불케 했다. 친공포로들은 반공포로들을 인민재판으로 살해하는 등 소요를 일으켰고 반공포로들은 ‘대한반공청년단’을 조직하여 맞섰다. 1952년 포로들은 폭동을 일으키고 반공포로 300여 명을 사살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반공포로들이 분산 수용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휴전회담이 진행 중이던 1953년 6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은 반공포로 석방을 결행한다. 2만7,000여 명에 달하는 반공포로 석방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 대통령은 북에 송환되면 생명을 잃을 것이 분명한 반공포로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한편, 미국에 대해서는 외교적 압박카드로 사용, 한미방위조약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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