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경제학자의 인간 수업.... 300년 경제학 역사에서 찾은 인간에 대한 대답
[서평] 경제학자의 인간 수업.... 300년 경제학 역사에서 찾은 인간에 대한 대답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0.11.0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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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상인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상품을 구매하는 광경이 이제는 옛날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배달로 물건을 주문할 때도 사전에 스마트폰으로 거래를 마치고 배달원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재빠르게 주문한 물건만 전달받는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서비스’가 더 높은 수익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스템과 맞물리면서 세계는 이제 ‘사람이 필요치 않은 경제’로 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경제를 설계하는 경제학자들의 ‘인간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경제학자들이 오랫동안 내세워온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인)’는 자신의 이익을 효율적으로 추구하는 합리적 개인을 의미한다. 완전경쟁의 이론 속에서 가격기구를 매개로 삼아 이루어지는 경제인들의 거래는 굳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형태를 취할 필요가 없다. 수익성이나 효율성에 위반되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마땅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애덤 스미스 이후 지난 300년간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해왔다. 경제학자들 중에서는 합리성보다 비합리성을, 개별적 효율성보다 사회적 필요성을, 경쟁과 이기심보다 협력과 이타성을 강조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이러한 목소리는 오랫동안 무시되었다. 그리고 단 하나의 경제인(경제학)만이 주도한 시장경제(경제학의 제국주의)는 더욱더 사람을 돌보지 않는 냉혹한 질서로 뒤바뀌었다. 《경제학자의 인간 수업》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경제와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틀로서 다양한 경제학자들이 설정한 인간상에 대해 살펴본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인간과 경제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를 그려낸다.

1부에서는 이 책의 주요 개념을 소개하고 전반적인 내용을 개괄하며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의의와 한계란 무엇인지 간단하게 밝힌다. 2부 ‘경제적 인간이 싹트다’에서는 현대적인 경제학 등장 이전에는 경제인을 어떻게 파악했는지 소개한다. 3부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발견하다’에서는 주류경제학자들이 내세운 이익과 효율 중심의 인간형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살핀다. 4부 ‘호모 이코노미쿠스에 맞서다’에서는 유기적 집단 속에서 생활하는 ‘사회적 인간’을 발견한 다양한 흐름들을 정리한다. 5부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우회하다’에서는 행동경제학을 비롯한 최신 경제학 흐름을 살피며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넘어설 대안적 인간형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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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경제학자로 손꼽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물건이나 사람에 매겨진 값(교환가치)보다는 그것의 쓸모(사용가치)를 강조하며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경제인’을 바람직한 인간상으로 여겼다. 반면 현대경제학의 시초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최초로 ‘이기적 인간’을 모델로 삼으며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기틀을 마련했다. 다만 그는 익히 알려진 바와 달리 《도덕감정론》을 통해 ‘이타적 인간’ 또한 제시했다는 점에서 향후 경제학의 역사를 가르는 분기점 역할을 했다.

애덤 스미스 이후 한계효용학파와 신고전학파가 등장하면서 경제인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제번스는 재화로부터 얻는 효용과 비효용을 계산하는 ‘합리적 소비자’를 강조했고, 마셜은 시장경제의 두 가지 축인 수요자와 공급자를 수학적인 모델로 정식화했다. 프리드먼은 개인들이 지니는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며 시장경제를 뒷받침하는 논리로 내세웠고, 베커는 정치ㆍ사회ㆍ문화적인 현상까지 모두 개인의 효율적인 선택으로 환원하여 설명했다. 루카스에 이르러 경제인은 이제 주어진 정보를 완벽하게 활용하여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수준으로까지 진화한다.

자유주의적인 세계관을 지탱하는 중요한 근거였던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그러나 오랫동안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마르크스는 인간 사회 전체가 계급적인 역학관계에 의해 규정된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고립된 개인으로서의 경제인에 대해 명시적으로 반대했다. 그는 수많은 경제인으로 구성된 자본주의 질서가 형식적으로는 동등한 주체들 사이의 자유로운 계약과 거래를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소득의 불평등과 심각한 양극화를 낳으며 인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주장했다.

제도학파 역시 인간의 사회성을 강조하며 시장보다 강력한 기제로 작동하는 다양한 제도나 관습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히 베블런은 사적인 이익 계산을 넘어 끊임없이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비합리적 사회성’을 중요시했다. ‘완벽한 경제인과 무력한 정부’라는 구도를 내세운 신고전학파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 케인스는 인간이 수시로 비합리적이며 시장은 완벽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금융시장에서 일어나는 투기를 억제하고 대량실업과 장기불황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경제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경제학은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지녔던 의미와 한계를 종합하여 보다 일상에 가까우면서도 다채로운 인간상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스털린은 경제성장이나 국민소득보다 ‘행복한 삶’에 중점을 두는 인간을 제시했고, 애커로프는 당장의 이익보다 취향, 성별, 종교, 민족에 따라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구축하려는 인간을 내세웠다. 인도 출신의 경제학자 센은 사회적으로 동등한 능력이 배양되는 조건 위에서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을 주장했고, 파레이스는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난 인간을 제시하며 오늘날 경제위기의 해법으로 기본소득제도를 제안했다. 그밖에도 기존 경제학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없던 다양한 경제학자들의 인간상이 펼쳐진다.

이 책은 단순히 각 경제학자들의 인간관을 비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로부터 비롯된 경제사상 및 개념들을 폭넓게 조망하며 경제와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을 높여준다. 오랫동안 다양한 경제학의 흐름을 연구하고 가르쳐온 저자 홍훈 교수는 복잡해 보이는 경제학자들의 인간에 대한 논의를 하나의 흐름으로 꿰어 알기 쉽게 정리한 뒤 새로운 인간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인간은 개인, 관계, 집단 중 어느 하나의 단위로도 환원될 수 없는 복잡성을 지니면서도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상호 의존적으로 구성된다. 인간은 주류경제학에서 주장하는 ‘완벽한 합리성’과 거리가 멀고 부단히 실수를 저지르며 시장은 불황을 거듭한다.

그렇지만 정책의 보완을 비롯한 ‘처방적 합리성’을 통해 이를 개선시켜 새로운 경제와 사회를 도모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의 삶을 움직이는 근본 동기는 단순한 이익 계산을 넘어 행복, 자유, 윤리 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데 있다. 서구의 경제인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하여 한국인에 대한 성찰로 마치는 이 책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경제 현실에서 ‘사람의 온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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