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논단] 포스트 콜로니얼을 위한 제언.. ‘친일과 반일의 문화인류학’
[기획논단] 포스트 콜로니얼을 위한 제언.. ‘친일과 반일의 문화인류학’
  • 길도형 도서출판 장수하늘소 대표
  • 승인 2020.11.1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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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감정을 앞세운 문 정부의 대일 외교는 그 자체로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고립을 자초하고 있을 뿐이다. / 연합
반일감정을 앞세운 문 정부의 대일 외교는 그 자체로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고립을 자초하고 있을 뿐이다. / 연합

워드프로세서가 지속적으로 버전 업을 해오는 동안 어지간한 맞춤법의 경우는 입력자의 오류를 자동으로 바로잡아 줄 뿐만 아니라 잘못된 문장에는 점선 밑줄을 표시해 입력자로 하여금 문장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등 성능이 상당히 개선되어 왔음을 실감한다.

그런데 오류가 분명 아님에도 입력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동 수정되어 작성되는 특정 단어가 있다. ‘일제시대’가 ‘일제강점기’로 자동 변환되는 경우를 두고 하는 얘기다. 한글 워드프로세서나 MS-워드를 이용해서 일제 식민지기와 관련한 글을 작성해 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겪는 현상이다.

포스트 콜로니얼을 거부하는 반일 민족주의

일제시대는 시대 구분의 개념으로서 어떤 의미 단위도 배제된 객관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일제 식민지기를 이해하고 접근하는 데 있어 객관적 거리를 유지케 하는 유용한 개념이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쓰이기 시작한 ‘일제강점기’라는 말에는 그 시대 자체에 대한 왜곡과 그 시대와는 무관하게 지금을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말과 글을 강제하는 사회적 폭력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일제시대가 강압과 폭력의 시대로 매도당해도 될 만큼 그렇게 무도한 시공간이었을까?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일제시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그 시대로부터 멀어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그 시대를 살아 보지 못했거나 그 시대와 아무 관련이 없는 세대일수록 일제시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심화 확대된다.

당시를 살아본 세대는, 특히 일본이 자기 나라이고 조선총독부를 정부(政府)로 알고 산 세대들의 경험은 지금의 반일감정의 뿌리가 무색할 정도로 당시의 생활과 사회 분위기에 긍정적이다. 그 시대를 산 세대들이 ‘그래도 그 시절은 살만했어’ 하는 말은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만이 아닌, 성실과 노력의 보상이 보장되는 사회였음을 의미한다.

청춘 남녀들이 성공의 기회를 찾아 도시로 갔고 일자리를 찾았다. 도시는 청춘 남녀들을 포용했고 일자리를 제공했다. 일제 식민지기는 그런 시대였다.

일제시대에 대한 그런 부정적이고 왜곡된 이해에 대해 국내에서 문제 제기가 있기 훨씬 앞서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실증적 연구로써 그 시대를 조명해 온 학자가 있다. 재일 문화인류학자 최길성 교수가 그다. 1938년(호적상으로는 1940년) 양주 (지금의 동두천)에서 태어난 최 교수는 일제시대의 풍경을 어렴풋이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6·25전쟁 시기 고향 동네를 중심으로 벌어진 전쟁의 실상을 어린 눈으로 직접 목격 관찰했다.

1963년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최 교수는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대위 전역한 뒤, 70년을 전후로 문화공보부 문화재전문위원으로 재직하며 1차 거문도 답사연구를 주도한다. 1972년 일본 유학 후, 1985년 쓰쿠바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 계명대 일본학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에서의 일본학 연구와 교육의 한계를 절감하고, 80년대 중반 다시 일본으로 유학했다가 1991년 일본 중부대학의 교수로 임명 재직하게 된다.

최길성 교수는 한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전반에 걸친 식민지 연구를 통해 식민지와 제국주의가 특정하고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당대의 인류사적 보편 현상이자 시대정신임을 이야기한다. 식민의 경험은 독립 이후 해당국들의 국가 정체성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전반에 걸친 연속성 속에서 독립과 함께 ‘포스트 콜로니얼(post colonial)’이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게 된다.

거기서 예외적인 한 나라가 다름 아닌 한국이다. 한국의 고도성장과 번영의 배경에는 일제시대의 유산과 일본이라는 이웃이 있었다. 그럼에도 오늘날 갈수록 극심해지는 한국 사회의 반일감정과 그에 바탕한 민족주의는 심각한 퇴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길성 교수와 저서 '친일과 반일의 문화인류학' 타임라인 발행
최길성 교수와 저서 '친일과 반일의 문화인류학' 타임라인 발행

일제 유산과 친일 반석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

<친일과 반일의 문화인류학>은 한국인의 반일감정의 기원과 그 성격에 대해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고찰, 분석한 에세이집이다. 식민지기를 겪은 또 다른 국가 또는 사회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일제 식민지기에 대한 한국인들의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이해와 통설에 이의를 제기한다.

또한 현대 한국의 건국과 이후 산업화와 고도성장의 밑바탕에는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국리민복의 통치 전략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볍씨 품종 개량과 우량 볍씨 보급 사업, 어업 증진, 각종 산업시설과 인프라 조성 등의 배경을 통해 밝히고 있다.

‘들어가는 말’을 포함 모두 10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식민지기와 근대에 대한 왜곡과 오해, 자기기만으로부터 비롯하는 반일 민족주의의 위선적 실체와 폭력성을 보게 된다. 그 위선과 폭력성은 ‘친일’, ‘친일파’를 끊임없이 가공해 냄으로써 반일 민족주의의 야만적 아이덴티티를 강화해 준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2020년 현재 한일관계는 최악의 상태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늘 그랬듯이 한국인은 그 이유를 과거사를 반성하고 사죄하지 않는 일본, 일본인들의 문제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습관성 거짓말이다. 일본은 1965년 수교협상 과정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천황과 역대 총리, 각료들이 한 공식 사과만 해도 39회에 이른다.

가장 최근인 2015년 8월 14일 아베 신조 총리는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를 통해 과거사를 공식 사죄했다. 물론 그럴 때마다 한국의 집권 세력을 비롯한 정치권과 언론, 시민단체들이 한목소리로 사과의 진정성을 따지고 말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식으로 폄하하고 조롱, 모독하는 식의 언어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이 또한 습관성이다.

그러나 시계바늘을 20년 전으로 돌려 보자. 1998년 국민의정부 등장과 함께 일본 문화가 전면 개방되고, ‘2002 한일월드컵’에 힘입어 한일관계는 예외 없을 정도로 개선됐다.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해졌고, 양국민은 상호 방문과 관광을 즐기며 자유주의 국가들 간의 친선과 우호의 이상적인 모델을 만들어 갔다.

문제는 언제나 그랬듯 한국의 집권 세력과 여야를 망라한 정치권이었다. 한국의 대일 관계는 정권에 따라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한국의 집권 세력에게 일본은 언제나 정략의 유용한 소재거리다. 또한 일제시대는 시간적 거리가 멀어질수록 정치권과 언론, 지식인 집단에 의해 민족적 원한과 피해의식으로 증폭되어 왔다.

언론은 친일 부역의 혐의가 짙을수록 반일감정의 선무당 노릇에 앞장섰다. 단적인 예로 언론이 독도 영유권 문제와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비난하면 정치권은 그에 즉각 응답하며 대중의 반일감정을 선동하는 식이다.
 

조선총독부는 국리민복을 지향했다

<친일과 반일의 문화인류학>에서는 한국인의 반일감정의 기원과 그 위선과 허구, 모순과 기만적 속성을 문화인류학의 관점에서 분석, 비판한다. 안병직, 이영훈 교수 등에 의한 경제사적 접근이 최근 상당히 일반화된 것에 비하면, 문화인류학적 분석과 비판은 저자에 의해 오래 전부터 행해져 왔음에도 여전히 독보적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일관되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수탈과 학정의 일제시대가 아니란 사실이다. 조선을 합병한 일제는 총독부를 내세워 식민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한다. 일제는 식민지 통치를 위해 한국의 법, 제도, 관습, 종교, 문화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역사학, 사회학, 경제학, 고고학, 인류학, 민속학 등 많은 연구자들과 행정가들이 식민지 한국의 토지나 재산 등에 대한 법률뿐 아니라 그와 관계된 한국인의 풍속과 관습 등을 조사 연구했다. 식민지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본의 식민지학은 서구 열강의 그것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그 정책들은 철저하게 일반 대중, 민중을 대상으로 한다. 토지 측량과 정비 사업이 그랬고, 도로와 하천 정비를 통한 생활환경의 개선, 개인과 부락의 위생환경을 개선해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홍보와 지원 정책을 적극 펼쳤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한일합병을 전후한 시기부터의 볍씨 품종 개량과 보급 사업이다. 경술합병으로 한국을 실질 통치하게 된 조선총독부는 본국 정부로부터 막대한 예산과 인력, 기술을 끌어들여 다방면에 걸쳐 개혁과 혁신을 서두른다. 그 중에서도 중점 부문이 볍씨 품종 개량 사업이었다.

기존 조선의 벼 품종은 대가 가늘고 키가 커 풍수해에 취약한데다가 이삭당 낟알 숫자마저 이후 개량, 도입 품종들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오랜 토착종임에도 병충해와 한발, 냉해에 취약했다. 그렇게 생산된 쌀의 절대 몫마저도 양반 지주들의 소작료로 주고 나면, 경작 농민들 몫은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했다.
 

근대를 향해 열린 창, 일제시대

조선총독부는 토지 측량과 경지 정리를 통해 농지 소유관계를 명확히 했다. 특히 지역 사림과 양반, 아전들에 의해 무단 점유된 토지의 소유관계를 정비함과 동시에 황무지를 개간하여 근대적 소작 계약을 통해 농민들에게 경작지를 제공했다.

아울러 일본에서 한국의 기후 조건과 토양에 맞는 우량 벼 품종을 선별해서 들여와 시험재배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품종 개량에도 적극적이었다. 지주들뿐 아니라 소작인들까지 처음에는 ‘왜놈들 것’이라며 경시, 거부했으나 소작료 감면 등의 인센티브 등에 힘입어 재배한 결과 큰 성과를 거두게 된다. 이렇게 되자 전국 각지의 지주와 농민들이 우량 품종 보급에 앞장서며 1910년대 중반을 넘어설 때쯤에는 쌀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쌀 증산의 결과는 조선에서의 수요를 넘어 산지보다 비싼 값에 식민 본국인 일본에 수출길이 열리게 했다. 농업생산물로 자본을 획득, 축적하게 되고 투자를 통한 산업 기반을 조성하게 되는, 한반도 사람들로서는 역사상 유례없는 새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일제시대는 그렇게 한국인들에게 근대(近代, modern)를 향해 열린 창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패전과 일본인의 귀환으로 근대를 향해 열린 창이 한순간 닫히게 되는 상황을, 저자는 거문도의 사례를 통해 보여 준다.

일제가 물러갔지만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은 식민지의 잔재였고, 신생 독립국 대한민국의 사회 시스템과 인프라는 조선총독부의 유산이었다. 그 잔재와 유산은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가난, 정치적 혼란의 시기를 지나 군사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에 의해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새마을운동, 국민교육헌장과 가정의례준칙 등으로 계승됐다.

다시 말해 한국의 고도성장과 산업화의 토대는 일제시대, 즉 조선총독부 통치기에 태어나 성장하고 근대 교육과 문명의 세례를 받은 세대의 경험과 근대인으로서의 자질이 그 바탕이었음을 조명하고 있는 것도 이 책을 눈여겨봐야 할 이유이다.
 

코스모폴리타니즘의 시민의식으로 현재의 일본과 마주해야!

그렇다면 한국인의 반일감정의 실체는 무엇일까? 식민지 시기가 아무리 부정적이라고 해도 그런 중에도 사람은 살아가기 마련이다. 통치하러 온 조선총독부 관헌이나 식민으로 온 보통 일본인들이나 마찬가지로 식민지의 한국인들과 부대끼며 살았고, 조선의 구습을 타파해야 하는 이면에서는 한국인들의 관습에 자신들을 맞춰 살아가야 하는 생활인들이기도 했다.

이 말은 곧 일제시대라는 시공간 안에서의 한국인들에게 반일감정이 자리 잡아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었고, 있더라도 어디까지나 한국인들끼리의 문제였을 가능성이 컸다. 다시 말해 반일감정이란 것이 있었다면 그 시기에 일본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익을 취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갈등, 경쟁에서 밀려난 자들의 미움과 원한의 감정이 그 단초일 뿐이다.

저자는 또한 한국인의 반일감정이 식민지 시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해방 후 시간이 흐르고 식민지의 경험으로부터 멀어져 갈수록 극심해지는 한국인의 반일 민족주의는 그 자체로 종교적 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 다른 일제 식민지였던 대만과 구 만주국,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영국의 식민지였던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 같은 나라들을 비교문화인류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반일감정이 여타의 식민지 경험 국가 또는 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속성을 갖고 있음을 밝힌다.

그것은 반일 민족주의로 규정되며, 반일 민족주의는 하나의 신앙체계로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유사종교 또는 사이비종교라는 뜻이다. 일제가 조선의 맥을 끊기 위해 풍수상 주요 암봉(岩峰)과 혈맥마다 철주(쇠말뚝)를 박았다는 주장이 단적이다.

이성적 논리 체계가 아니라 무속(샤머니즘)이자 우상 숭배와 금기의 토테미즘이다. 무속과 우상 숭배는 민족적 정체성을 형성해 냈고, 금기와 터부는 끝내 구 조선총독부 건물의 폭파, 해체라는 폭력적 결과로 이어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반세기를 훨씬 넘어 일제 식민지기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 의해 더 극렬해지고 있는 반일감정의 파고이다. 저자는 일본에 대한 우리 안의 콤플렉스를 넘어 개방된 태도로 현재와 미래의 일본과 마주할 것을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권하고 있다.
 

반일 민족주의야말로 매국 행위

‘죽 끓듯 하는 반일 여론을 선동해 등에 업고 대일 외교를 펼치는 것만큼 어리석고 국제관계에서 위험천만한 것도 없다.

반일감정을 앞세운 문재인 정부의 대일 외교는 그 자체로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고립을 자초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자유세계와의 지속적 협력 관계마저 난관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pp.309~310)는 충고는 저자의 진심 어린 조국애의 메시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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