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히틀러식 對南전략 연구
김정일의 히틀러식 對南전략 연구
  • 미래한국
  • 승인 2006.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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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甲濟 (전 월간조선 대표)
나치의 오스트리아 합병과정을 연구하여 한국赤化전략에 적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黃長燁 선생은 1997년에 한국으로 온 뒤 재미 있는 증언을 하나 했다. 김정일이 히틀러를 숭배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김정일을 비웃었다. "파쇼를 욕하는 사람이 파쇼의 元祖를 좋아한다고?" . "김정일이 왜 히틀러를 숭배할까"하고 생각을 깊게 해보면 웃을 일이 아니라 전율할 일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영국의 유명한 전략가 리델 하트에 따르면 히틀러의 전쟁觀은 군인들과 근본적으로 달랐다고 한다. 히틀러는 볼세비키의 혁명 전술을 연구하여 전쟁에 응용했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전쟁을 군인들의 고유영역으로 보지 않고 선전, 침투, 협박, 교란, 심리전 등 혁명의 기술이 총동원되는 국가총력전으로 파악했다. 하트는 공산혁명의 기술을 전쟁에 적용했다는 점에서 히틀러를 군사적 천재로 보았다. 하트는 배후 교란과 기동전을 2대 무기로 하는 히틀러의 전략이 징기스칸의 몽골 기마군단 전술과 유사하다고도 했다. 히틀러는 공세를 취하기 전에 먼저 敵國의 내부에서 협조자를 구하여 후방 교란을 시킨다. 동조자가 여러 가지 혼란을 조성하여 적국의 저항력을 약화시키게 하고 협조적인 정부까지 구성하도록 한다. 히틀러는 이런 반역 유도를 위해서 뇌물에 의존하지 않았다. 히틀러의 이념에 동조하거나 출세지향적인 자생적인 협조자들을 적국의 지도층 내부에서 확보했다. 이런 환경을 조성한 뒤 결정적 순간이 오면 히틀러는 특공대를 여행객이나 장사꾼으로 가장하여 침투시켰다. 이들은 통신선을 단절하거나 소문을 퍼뜨리고 敵國의 지도적 인물을 암살, 납치한다. 공중침투 부대가 추가로 투입되어 이들과 협력하여 후방을 교란한 뒤 기동부대가 결정타를 날린다. 히틀러는 정면돌파 작전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경멸했다고 한다. 후방 침투와 교란, 그리고 우회 돌파가 그의 특기였다. 하트는 "히틀러의 전쟁은 두 개의 D로 시작되었다. 敵國의 사기를 무너뜨리는 일(Demoralization)과 조직을 교란시키는 일(Disorganization)이 그것이다"라고 썼다(`전략`). 히틀러의 위의 전략은 1938년 오스트리아 합병작전에서 거의 완벽하게 적용되었고, 1940년 프랑스 침공작전에서 상당 부분 성공적으로 적용되었다. 하트가 소개한 히틀러의 `혁명전쟁` 전략은 북한의 對南적화戰略과 90% 이상 일치하고 있다. 1. 김정일의 赤化전략은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 이론에 근거한다. 민족해방론은 美帝의 식민지인 한국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韓美동맹을 해체하거나 결정적으로 약화시키는 것을 당면 목표로 삼는다. 2. 인민민주주의혁명론은 남한내의 친북세력이 인민(민중)을 결집시켜 용공정권을 수립하는 것을 뜻하는데 그 활동에 방해가 되는 국가보안법 철폐를 당면 목표로 삼고 있다. 3. 노무현 정권은 韓美연합사해체工作과 보안법 死文化로써 김정일의 對南적화공작에 결과적으로(또는 의식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4. 김정일은 선전매체를 동원하여, 용공정권을 세우는 데 방해가 되는 한국의 애국진영을 공격하고 있고, 여기에 친북세력과 盧정권이 합세하는 경우가 많다. 남북한 좌파세력이 협조하여 애국인사들을 감금, 납치, 살해하는 단계로까지 진행된다면 이는 김정일의 공세가 임박했음을 의미할 것이다. 5. 용공정권이 남한에서 세워지면 김정일은 이 정권과 연방제赤化통일을 논의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정일은 이런 요구조건을 낼 것이다. "국방장관과 내무장관과 국정원장은 우리가 지명한 사람으로 임명하라"고. 6. 용공정권의 반역을 알아차리고 애국세력이 들고 일어날 것이고 이에 맞서 정권의 후원하에 공산세력이 거리로 나설 것이다. 김정일이 앉힌 내무장관은 경찰을 시켜 애국세력을 탄압하고 좌익을 비호한다. 방송과 언론은 일제히 애국세력을 反통일세력으로 몬다. 물리력과 선전력에서 밀리는 한나라당(그때까지 존재한다면)은 연방제 통일을 하려면 국민투표나 헌법개정을 해야 한다고 나설 것이다. 7. 용공정권이 여론조사에서 유리하게 나오거나 국회에서 절대 다수의석을 차지했다면 국민투표나 헌법개정을 허용하겠지만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반대세력을 침묵시키는 강제조치를 취할 것이다. 1938년 오스트리아 병합의 경우, 히틀러는 침공 협박으로써 국민투표를 추진한 정권을 물러나게 했었다. 8. 남북연방제가 실시되어도 한국군을 접수하지 않으면 혁명은 성공한 것이 아니다. 이때는 구실을 만든다. 예컨대 남한지역정부는 애국세력의 궐기를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북한군을 불러들인다. 국방장관은 국군에 대해서 휴전선에서 4km 물러나 충돌 없이 북한군의 南進을 허용하라고 지시한다. 물론 그 전에 국방부와 3軍의 지휘부는 협조적인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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