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길] ‘대북전단살포금지법’에 부쳐
[미래길] ‘대북전단살포금지법’에 부쳐
  • 이정훈 미래한국 편집고문, 전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 승인 2020.12.30 09: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크리스 스미스 미 하원의원은 북한인권 차원에서 한국의 대북전단살포금지법 등과 관련한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경고했다.
크리스 스미스 미 하원의원은 북한인권 차원에서 한국의 대북전단살포금지법 등과 관련한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경고했다.

12월 14일 야당과 북한인권단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더불어민주당이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국회에서 강행 처리하면서 국제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세계적인 한반도 전문가로 손꼽히는 영국 리즈대의 아이단 포스터 카터 박사는 이 법안의 통과를 두고 “수치스러운 날”(a shameful day)이라고까지 했다. 국제사회가 극도의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대북전단살포금지법으로 통용되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핵심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전단 살포 및 대북 확성기 방송이 금지된다는 것이다. 이 법안을 위반했을 경우 따르는 처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다.

전단 살포와 관련된 법률 정비 및 법안 발의가 지난 6월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한 김여정의 한마디로 시작됐다고 해서 야당은 이 법안을 “김여정 하명법”이라고 부른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조공으로 대한민국 입법을 갖다 바친 것”이나 다름없다고까지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제3국에서의 전단 살포도 금지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국민 보호’ 주장은 명분을 잃게 된다.
 

이정훈  미래한국 편집고문, 전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이정훈 미래한국 편집고문, 전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반면, 국제사회의 반응은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데서 비롯된다. 뿐만 아니라 북한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외부 정보 유입의 한 수단이 끊기는 점도 국제사회를 자극하고 있다.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비판 여론이 쇄도하고 있는 이유이다.

정보 유입과 관련 미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를 역임한 로버타 코헨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북한 사회의 변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도력을 강화하고 북한 주민들의 고립을 강화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바깥 세상에 대한 북한 주민의 알 권리가 침해된다는 뜻이다.

해외에서 한반도 전문가, 국제인권단체, 유엔 및 국제기구 전.현직 임원 등이 예외 없이 이번 법안에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 중요한 이유는 내년 1월 출범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가치를 기반한 동맹국 협력체계에서 자칫 잘못하면 한국이 배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위원장도 전단지 금지법과 같은 조치들이 “미국의 신행정부 정책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영국 의회에서 밝힌 바 있다.

크리스 스미스 미 하원의원은 본인이 공동의장으로 있는 ‘톰 랜토스(Tom Lantos) 인권위원회’에서 한국의 대북전단살포금지법 등과 관련한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경고했다. 조 바이든 당선인의 측근인 크리스 쿤스 민주당 상원의원 역시 ‘표현의 자유’ 침해와 ‘북한 인권’ 악화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는 북한의 독재 지도자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 트럼프 대통령을 꾸준히 비판해 온 인물이다. 시나 그레이텐스 텍사스 오스틴대 교수는 “문재인 정권이 이번 조치가 남한의 가장 큰 자산인 민주주의를 얼마나 해치는 일인지 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바이든이 추진하는 가치 기반 파트너십을 추구할 수 있는 한국의 능력도 손상시킬 것”이라고 했다.

시민단체들도 마찬가지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개정안을 비판하면서 “한국 정부가 자국민들이 기본적 인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것보다 북한의 김정은을 기쁘게 하는 데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비난했고 휴먼라이츠재단(HRF)의 토르 할보르센 대표는 유엔 등 국제사회에 한국 정부를 제소해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북한인권주간을 매년 개최하는 수전 솔티 디펜스포럼재단 대표는 주미 한국대사관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대북전단 살포를 공격하지 말고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대북전단살포금지법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취해온 대북 인권정책을 두고 참고 참던 인내심이 폭발한 것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유엔 총회에서 2년 연속 북한인권 결의 공동 제안국 참여 거부, 국제법을 무시한 북한 선원 2명 강제 북송, 국내 북한인권단체들에 대한 사무조사 등 일련의 조치들은 국제사회의 반응을 어김없이 불러 일으켰다.

전단 금지법이 결국 도화선에 불을 붙인 셈이다. 우리 정부가 일류 보편적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 아니면 우리 민족끼리 같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돼도 괜찮은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